바다 최상위 포식자의 식탁
종종 그런 생각을 한다. 나는 전생에 넓은 바다를 무법천지로 누비던 최상위 포식자가 아니었을까. 그것도 생선을 너무 많이 잡아먹어 해산물이라면 지긋지긋해진 포식자.
“다음 생에는 바다 생물 말고 육지 생물을 먹으리. 끄아악.”
단명하는 순간 남긴 그 처절한 유언이 나비효과가 되어, 해산물이라면 질색하게 된 현생으로 태어난 나.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할 정도로 해산물 특유의 식감과 비린 냄새가 싫다. 하지만 입맛과는 별개로 바다 여행과 수영을 좋아한다. 그래서 혼자 하는 바다 여행에선 늘 해산물을 즐기지 못한다. 유일하게 조금이나마 먹는 해산물이 새우, 꽃게, 오징어, 문어 정도였는데 최근에 갑각류 알레르기가 생겨 버렸다. 아무래도 전생에 넓은 바다를 누비는 최상위 포식자가 맞는 것 같다. 그것도 희생된 바다 생물에게 깊은 원한을 사버린 포식자.
지독한 편식쟁이지만, 여러 사람과의 여행에서까지 내 취향을 휘두르는 몰상식한 동행이 되고 싶진 않다. 여행 동호회 친구들과 경주로 1박 2일을 떠났을 때도 그랬다. 열두 명 중 회를 거부하는 이는 나뿐이었고, 그들은 '경주 여행의 꽃'이라며 설레는 얼굴로 회쌈밥집으로 향했다. 가자미회와 각종 채소를 초장에 버무려 해초에 싸 먹는 음식이라니. 상 위에 수북이 쌓인 가자미회를 보며 사람들은 감탄의 신음을 흘렸다.
"이거 먹으러 경주 오는 거지. 자, 기가 막히게 버무려 볼게요."
맞은편의 승기가 마치 성스러운 의식을 집행하듯 초장을 뿌리고 젓가락을 휘저었다.
"다시마를 한 장 척 깔고, 그 위에 무침을 듬뿍 올려서 한입에...
음, 바로 이 맛이야!"
모두가 신선한 바다의 정취에 취해갈 때, 나도 기왕 온 거 '문화 체험'이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다시마 위에 회무침 한 점을 올렸다. 입에 넣는 순간,
"음, 이 맛은…!!"
다시마는 비린 맛을 농축해 놓은 듯했고, 가자미회는 기분 나쁘게 물컹거렸다. 본능적으로 비린 맛을 씻어내려 옆에 둔 미역국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사장님의 후한 인심에 국물보다 미역이 옴팡지게 많았다. 나는 거대한 미역 숲을 숟가락으로 헤치며 간신히 맑은 국물만 찾아내 식사를 이어갔다.
"경미 누나가 회를 안 먹어서 우리 테이블은 완전 노 났네!"
승기가 싱글벙글 행복한 표정으로 가자미회를 한 움큼씩 입으로 밀어 넣었다.
"그래, 내 몫까지 다 먹어주렴. 장하다, 승기 잘 먹는다."
결국 반찬으로 나온 콩자반 몇 알과 무침 속 양배추 조각, 그리고 미역국 국물만으로 비싼 식사를 마쳤다. 숙소에 들어가 옷을 갈아입는데, 배 위에 빨간 반점이 피어 있었다. 해산물을 먹으면 열에 일곱 번은 찾아오는 불청객, 두드러기였다. 고작 회 한두 점 맛본 게 전부인데 바다의 신은 이토록 엄격했다.
역시 나는 전생에 바다를 떨게 했던 포식자가 맞나 보다.
부디 다음 생에는 이름 모를 벌레로 태어나 채식주의자가 되지 않도록, 이번 생에는 육식을 적당히 취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