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구멍을 여물어라 : 통영 우짜

우동과 짜장의 불협화음 이중주

by 경미로움


"누구 하나라도 먼저 결혼하면 다같이 여행 가긴 힘들 거야."

서른을 코앞에 둔 시점, 나는 친구 윤정과 미영에게 습관처럼 말하곤 했다.


그 막연한 불안감이 도화선이 되어 우리는 통영 여행을 떠났다. 대전에서 버스를 갈아타며 꼬박 다섯 시간. 아침 7시 반에 평택을 떠난 우리는 정오가 되어서야 통영 땅을 밟았다.


허기진 배를 달래줄 첫 제물은 충무김밥이었다. 빤히 아는 맛이라 생각했지만, 통영의 그것은 차원이 달랐다. 투박하게 썰린 섞박지와 매콤한 오징어무침. 그리고 김에 무슨 짓을 했는지 밥알에 찰싹 달라붙은 그 쫀쫀한 식감은 오직 통영에서만 허락된 행복이었다. 충무김밥에 아이스크림까지 야무지게 해치운 뒤에야 본격적인 유람이 시작됐다. 한려수도케이블카, 미륵산, 동피랑 골목까지. 볼 게 어찌나 많은지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걷고 또 걸었다.


강행군에 지친 우리가 저녁 메뉴를 고민할 때, 윤정과 미영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통영 오면 '우짜'는 꼭 먹어보고 싶었어."


우짜. 우동과 짜장이 합쳐진 음식이라.

짜장인데 통통한 우동면을 쓴다는 건가. 아니면 짬짜면처럼 반으로 나뉜 그릇에 우동과 짜장이 각각 나오는 건가. 실물을 보기 전까진 감히 어떻게 생긴 음식인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우짜 두 개와 빼떼기죽 하나를 주문하고 가게를 둘러보았다. 약간 끈적한 테이블과 묘하게 촌스런 벽지에서 오래된 분식집의 면모가 느껴졌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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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뜬금없는 이야기를 하자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는 화려한 새들의 긴 꽁지로 장식한 모자가 유행했다고 한다. 유행이 그러하듯 1절, 2절, 3절에선 쉬이 그치지 않았다. 점점 새를 통째로 박제해서 새 모양 그대로 장식하기까지 이르렀다. 모자와 새. 언뜻 어울리는 듯하다. 하지만 새가 통째로 모자에 올라가 있는 건 기괴하다고 느낄 조합이었다.


우짜의 첫인상이 딱 그랬다.


완성된 우동 위로 짜장 소스가 툭 올라앉은 비주얼. 우짜를 처음 시도한 사람은 왜 그랬을까. 왜 우동에서 멈추지 못하고 굳이 짜장을 박제해 올렸을까. 우동 국물의 맑은 표면 위로 짜장의 기름이 스르륵 번지는 풍경을 보며 깊은 의구심이 들었다.


사장님 조언대로 짜장을 우동 국물에 잘 섞었다. 우짜를 호로록 입에 넣었다. '우동에 짜장을 섞은 맛'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윤정과 눈이 마주쳤다. 묘한 실소가 터져 나왔다. 미영이 시킨 빼떼기죽도 오묘하긴 마찬가지였다. 고구마말랭이의 향이 슬쩍 스치면서도 단팥죽만큼 달지는 않은, 맛의 경계선 어딘가에 걸쳐 있는 맛. 맛있다고도, 맛없다고도 딱 잘라 말하기 애매하고 오묘했다.




오묘한 저녁 식사를 마친 우리는 6인용 도미토리 룸이 있는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왔다. 경기도를 떠난 지 12시간 만에 수평으로 몸을 뉘었다. 이층 침대의 아래 칸엔 미영과 내가, 미영의 머리 위엔 윤정이 자리를 잡았다. 푹신한 이불에서 긴장이 풀리자, 몸의 구멍들도 함께 경계를 풀었다.


뿡~


내 괄약근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빵!


윤정이 기다렸다는 듯 화답했다.


뽕, 빠앙, 부룩, 뿌아앙, 빡, 뽀오오오오옹.


우짜를 섭취한 두 사람의 이중주는 마치 우동과 짜장이 섞이던 그릇 속의 아우성 같았다. 아니, 어쩌면 우짜는 처음부터 쌍두협곡의 이중주를 위한 음식이었던 게 아닐까.


"아, 좀! 적당히 해!"


벽 쪽으로 돌아누운 미영의 날 선 외침이 합주의 마침표를 찍었다. 나는 윤정과 눈이 마주쳤다. 콧구멍이 벌렁. 우린 민망한 듯 입술을 오므렸다. 덩달아 똥꼬도 여물었다. 꽈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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