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민 신청 사유 : 오사카 타코야끼

マヨネーズ いっぱい ください.

by 경미로움

기쁜 일이 있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친구가 있고,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마음의 밑바닥을 꺼내어 하소연하게 되는 친구가 있다. 그리고 속이 허한 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을 때는 단연코 유리가 떠올랐다. 그녀와의 식사는 늘 푸짐했고 만족스러웠다. 맛있는 한 끼를 위해 기꺼이 돈과 시간을 지불하는 점이 꼭 닮은 우리였다.


"8월에 콘서트 보러 일본 가는데, 같이 갈래?"

"일본 여름은 지옥이라던데…."


망설였지만 유리가 틈틈이 보내온 '유혹의 리스트' 앞에 무너졌다.

유리

- 마침 디즈니랜드가 100주년이래. 이런 우.연.이.!!! OMG
- K-POP 나오는 클럽이 일본에서 인기래
- 일본 편의점에서 파는 푸딩이 그렇게 맛있대. 저녁마다 편의점 주전부리 싹쓸이, 콜?
- 도쿄에서 공연 보고 오사카로 넘어가자. 진짜 맛있는 타코야끼집 알아.


“그래. 가자! 8월의 일본, 가즈아!!!!!”

결국 나는 유황불 같은 여름 더위 속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린 도쿄에 도착하자마자 일본 3대 돈가스 가게 중 한 곳에 들러 식사했다.


“왐마, 입에 넣자마자 고기가 사라지는데? 혼또니 오시이이이네!”

“풍미 무슨 일이야. 샐러드 소스마저 예술이야. 스고이”


식당의 분위기, 장인의 면모가 엿보이는 주방장, 돈가스 한 점, 미소 장국 한 입 마다 우린 평론가라도 되는 양 굴었다. 음식 취향이 잘 맞는 친구와 여행할 때 재밌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심도 깊은 '미식 토론'이 가능하다는 것.


먹는 행위를 즐기지 않고, 소식하는 친구들과는 이러한 식도락을 즐길 수 없다. ‘알약 하나에 배부르고 영양을 채워주는 약이 개발되면 좋겠어. 먹는 게 너무 귀찮아’라는 기겁할 명언을 남긴 친구, 혜주와의 에피소드가 떠오른다.


친구 결혼식 하객으로 함께한 적이 있었다. 뷔페에서 구워준 스테이크의 부드러움이 예술이었다. 소스에 과일을 넣고 직접 만들었는지 육향과 어울림이 끝내주는 조합이었다. 방금 구운 미디엄 레어 스테이크 한 조각을 잘라 혜주의 접시에 덜어주었다.


“스테이크 먹어봐. 장난 아니야. 완전 대박 대박.”


테이블에 앉은 친구들 모두 호들갑을 떨며 혜주의 반응을 기다렸다.


“음~ 스테이크가...”

“어때? 맛있지?”

“따뜻하네.”


갓 구운 미디엄 웰던 스테이크를 수제 소스에 찍어 먹었는데 소감이 ‘따뜻하다고?’ 스테이크의 미덕이 고작 온도라니. 그런 면에서 유리는 내 최고의 미식 파트너였다.




다음 날 아침, 타마고야끼를 먹기 위해 도쿄츠키지 시장으로 향했다.

타마고야끼란 일본식 계란말이다. 계란물을 철판에 굽고, 구워지는 계란말이에 계란물을 계속 추가해서 도톰하고 네모지게 만든다. 굳이 일본까지 와서 먹어야 하는 음식인가 싶지만, 한국에서 일본식 계란초밥을 먹어보고 반해 버킷리스트에 ‘일본 명인이 해주는 타마고야끼 먹기’를 적기까지 한 나였다. 츠키지시장에 들어서 어떤 가게가 명인의 가게인가 검색하려고 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가게 앞에 길게 늘어선 사람들. 대여섯 명의 직원이 바쁘게 계란말이를 굽고 자르고 포장하는 가게.


[야마초 타마고야끼]


탐욕스럽게 타마고야끼 두 개를 사 들고 음미했다. 한국 계란말이와는 다르게 달달했다. 카스텔라의 은은한 단맛이 떠올랐다. 거기에 퐁신퐁신한 계란의 식감, 마치 계란 구름에 앉아 있는 것처럼 황홀했다.


“오직 타마고야끼를 먹기 위해서 일본 여행 또 올 것 같아.”


나의 결연한 다짐에 유리가 천재적인 제안을 해왔다.


“옆 가게에서 파는 타마고야끼도 사서 비교해 보자.”


줄이 늘어서 있지 않아 주인아저씨가 가게 앞에서 호객하는 옆 가게서 타마고야끼 한 개를 샀다.


“확실히 맛집이랑 차이가 있네.”

“그러게. 여기 건 겉에만 단맛이 나네. 희한하다.”


두 집의 맛 차이에 대해 신랄하게 비교했다. 그리고 야마초 타마고야끼에서 모둠 맛을 포장해 숙소로 돌아왔다. (여담이지만 기본 맛이 가장 맛있었다)


점심으로 쿠바샌드위치를 먹고 서로의 일정을 위해 콘서트장, 하라주쿠로 각자 향했다. 저녁때 다시 만나 숙소 근처 편의점에서 맛있는 음식을 사왔다. 많이 걸어 다리가 퉁퉁 부었기에 침대 헤드에 발을 올리고 입을 오물거리며 각자의 하루가 어땠는지 브리핑했다. 그리고 3일에 걸쳐 도쿄 디즈니랜드, 디즈니씨, 지브리파크를 걸었다. 먹고 걷고, 또 먹고 걷는 도쿄 일정을 마무리하고 오사카행 버스에 올랐다.




오사카는 타코야끼의 성지였다. 한국에선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타코야끼 트럭을 위해 항상 현금을 지니고 다닐 정도로 타코야끼를 사랑하는 나였다. 일본 여행을 계획하며 타코야끼의 고향, 오사카에선 꼭 1일 1타코야끼를 하겠노라 다짐했던 터였다.


처음 먹은 타코야끼는 길거리에서 파는 ‘타코센’으로 짭짤한 전병 사이에 타코야끼 두 알이 들어있었다. 전병과 소스가 어찌나 짜던지. 첫 시도에 만족스러울 리 없지. 오사카는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도톤보리에서 유람선 타기 전에 먹은 타코야끼 역시 한국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맛이었다.


우메다공원에 다녀온 후엔 직접 타코야끼를 만들수 있는 ‘타코노테츠’라는 가게에 방문했다. 직원이 뭐라 뭐라 설명해 주었지만 잘 알아듣진 못했다. 조리법을 알려주고 매운맛을 원하면 추가하라며 빨간 재료가 담긴 통을 주었다.


“안 그래도 맵고 칼칼한 게 당겼는데 잘됐다. 매운 타코야끼를 만들겠어!”


유리가 호기롭게 듬뿍 넣었다. 생강 타코야끼가 완성되었다.


스킬이 없는 탓이었을까. 황금비율을 못 맞춘 탓이었을까. 여하튼 타코노테츠의 타코야끼 맛은 그저 그랬다.


다음 날, 유리가 인생 맛집이라며 ‘하나다코’라는 가게로 안내했다. 우메다역 뒷골목을 걷다가 백화점을 가로지르고 상점을 구불구불 여럿 지나쳐 겨우 도착했다. 8월 일본의 한 낮 더위는 타코야끼고 나발이고 빙수나 먹었음 싶었다. 땀범벅이 되어 도착한 ‘하나다코’는 식당이라고 보기엔 민망한 자태를 보이고 있었다. 급식실에서 급식을 배급받듯 주르륵 줄지어 서서 주문하고 받아서 그 자리에 그대로 선 채로 먹는. 서서갈비 아니고 서서타코야끼였다.


유리의 추천으로 오리지널 맛과 네기마요(파 마요네즈)를 주문했다. 타코야끼에 웬 파? 어리둥절했지만 진짜 맛있다는 말에 믿고 주문을 맡겼다.


“마요네즈 이빠이 쿠다사이.”


능숙하게 주문한 유리의 모습에 네기마요가 더욱 궁금해졌다. 잠시 후 받아 든 네기마요는 얇게 썬 파가 수북하게 올라와 있었다. 물론 마요네즈도 이빠이 뿌려져 있었다.


4네기마요.png


마요네즈의 고소함을 머금은 아삭한 파. 겉은 바삭하고 속은 폭신한 타코야끼. 무더위를 해치고 올만한 이민 PICK이었다. 뜨거운 타코야끼와 차가운 파가 어우러지는 풍미가 굉장했다. 기본적으로 타코야끼의 맛이 굉장히 좋았다. 독특한 반죽 레시피가 있는 건지, 굽는 스킬이 좋은 건지, 살면서 먹어본 타코야끼 중에 으뜸으로 맛이 좋았다.


“오직 네기마요 타코야끼를 위해 일본에 이민 올 것 같아.”


한국에 돌아와 타코야끼를 사먹을 때면 단연코 유리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유리와 함께한 오사카의 맛을 흉내 내진 못했다. 이민을 갈 상황이 안 되기에 언젠가 오사카에 여행을 가게 된다면 하나다코에서 능숙하게 말해야겠다.


“마요네즈, 이빠이 쿠다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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