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채로 죽어간 핑크빛 비명
주이와는 일곱 살, 코를 찔찔 흘리던 시절에 만난 동네 소꿉친구였다. 유년 시절의 일기장마다 '가장 친한 친구' 첫 줄에는 늘 서로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주이는 시에서 가장 좋은 고등학교를 나와 서울의 명문대에 진학했다. 우리 삶의 궤적은 서서히 벌어지며 각기 다른 길로 흘러갔다. 성인이 되어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로 남게 되어도 서운하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의 동심이자, 같은 추억을 공유한 단단한 뿌리였으니까.
내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스물두 살의 여름휴가, 주이와 부산으로 향했다. 첫 친구와 떠난 첫 여행. 평생 서해만 바다인 줄 알고 살았던 우리에게 해운대는 압도적으로 광활했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과 금방이라도 파도 속으로 쏟아질 듯 옹기종기 매달린 달맞이 고개의 주택들. 생경한 풍경과 여행의 설렘이 우리를 붕 띄워놓았다.
해변을 걸으며 우리는 해운대만큼이나 넓은 추억을 꺼내놓았다.
일요일 아침 디즈니 만화 동산이 끝나면 주이네 집으로 달려가던 가벼운 발걸음, 빨간 샐비어꽃을 따서 단물을 쪽 빨아먹던 봄날, 주이가 다니던 영어 학원 선생님의 꼼지락대던 회색 발가락 양말까지. 한참 웃고 떠들다 보니 허기가 밀려왔다.
저녁 메뉴를 고민하던 찰나, 부산에 가면 꼭 꼼장어를 먹으라던 회사 실장님의 조언이 스쳤다. 해운대 시장 골목은 꼼장어 굽는 연기로 자욱했다. 드르륵, 플라스틱 의자를 끌어 부루스타가 놓인 파란 원형 테이블 앞에 앉았다.
"느그들 꼼장어 처음 묵어보제? 그럼 양념으로 무라."
여행객티가 역력했는지 사장님은 단번에 초심자 메뉴를 점지해 주셨다.
사장님이 불판에 불을 올리고 떠난 후 우린 가게가 허름하다느니, 사장님 사투리가 강하다느니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후 호일에 담긴 꼼장어가 나왔다. 고등어나 장어구이처럼 노릇하게 구워진 비주얼을 떠올린 기대가 무색했다. 껍질이 벗겨져 핏기를 머금고 꿈틀꿈틀 살아 움직이는 토막 난 분홍색 꼼장어. 뜨거운 불판 위 호일에서 양념과 스스로 버무려지며 뜨거움에 아우성치는 소리에 우린 입을 다물었다. 호일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토막 시체의 비명만 테이블을 채웠다.
“양념이라 금방 탄다. 얼른 무라”
사색이 된 우리의 얼굴을 뒤로 한 채 사장님은 불을 줄이고 무심히 떠났다.
젓가락을 어색하게 들고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가 고백했다.
“사실... 나 해산물 별로 안 좋아해”
“...나도”
주이는 하얀 얼굴이 더 하얗게 질린 채 답했다.
생선을 안 좋아하지만 꼼장어를 먹자고 제안한 이유는 단순했다. 유명하다니까.
부산까지 왔는데 내가 생선을 싫어한다고 말하면 날 배려해서 여행 내내 해산물은 못 먹을 테니 일부러 말하지 않은 터였다. 주이 역시 나를 배려해서 말하지 않았던 것까진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냥 술이나 마시자.”
젓가락을 내려두고 사장님을 향해 외쳤다.
“여기 참이슬 후레쉬 한 병 주세요.”
“여는 참이슬 읎다. 씨원 무라. 씨원”
소주잔 두 개와 처음 보는 소주가 한 병 나왔다. 얼마나 시원하기에 이름까지 C1인가. 빨갛게 버무려진 꼼장어 토막 사체를 사이에 두고 술잔을 부딪쳤다. 참이슬에 익숙해진 탓일까, 산 채로 죽어간 꼼장어에 입맛이 떨어졌기 때문이었을까. 술맛마저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우린 술 한 잔에 채소 몇 점을 집어먹고 저녁 식사를 마쳤다.
“와 다 남겼노? 아깝구로.”
사장님의 물음에 어색하게 웃으며 가게를 나섰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먹고 싶은 음식을 나열했다.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달려간 곳은 닭갈비 골목이었다. 철판 위에서 익어가는 닭갈비는 산 채로 꿈틀거리지도, 스스로를 양념에 버무리지도 않았다. 참이슬 후레쉬를 곁들이며 여행 중 가장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부산 여행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훈을 남겼다. 첫째, 내륙 사람은 내륙의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 둘째, 아무리 오래된 친구 사이도 말하지 않으면 서로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여행은 타인의 낯선 면모를 발견하게 하는 동시에, 나 자신조차 몰랐던 취향을 확인하게 한다.
주이와 나는 그 후로 또다시 다른 궤적을 그리며 각자의 길을 걸어갔다. 가끔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되었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서로가 서로의 가장 빛나던 동심이었고, 생경했던 부산의 추억을 한 조각씩 나누어 가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