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자비에 관세음보살냠
엄마와 함께 속리산으로 드라이브를 떠났다. 평지를 사랑하는 여행자로서 속리'산'에 갔지만 등산은 일절 하지 않았다. 속리산 테마파크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스카이바이크를 탔다. 오후 일정으로 말티재 전망대에 갈까 법주사에 갈까 고민하다가 저녁으로 산채비빔밥을 먹기 위해 법주사로 향했다. 가을 산은 어스름이 내려앉고 있었다.
세조길을 따라 걷다 마주한 사찰의 저녁은 템플스테이 참가자들과 스님들의 범종 타종 의식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젊은 스님이 땀을 흘리며 힘차게 북을 두드리는 광경을 보고 있자니, 웅장한 진동이 심장까지 전달되었다. 마음이 절로 경건해지며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처님의 자비로움을 온몸으로 흡수한 채, 우리는 속리산 여행의 마침표를 찍으러 산채비빔밥 거리로 향했다.
자신이 제일 맛있는 식당이라며 경쟁하듯 화려한 간판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산채비빔밥 거리라 그런가. 메뉴가 산채비빔밥이랑 더덕구이밖에 안 파네.”
나물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의 눈치를 살피며 엄마가 말했다.
“된장찌개나 해장국 먹지 뭐. 여기 해장국 파네. 여기서 먹자.”
그렇게 들어간 식당에서 엄마는 ‘대추 약고추장 비빔밥’을. 나는 ‘능이해장국’을 주문했다. 산채정식이나 전골 메뉴도 있었지만 간단한 식사로 골랐다.
“버섯은 1능이 2송이라고 했어. 1등 버섯이 능이버섯이야.”
버섯을 먹을 때마다 엄마가 어김없이 하는 말이었다. 1능이2송이.
과연 1등 버섯을 드디어 먹어본다며 맞장구쳤다. 잠시 후 반찬이 나왔다.
도토리 향이 살아있는 묵무침, 꽈리고추 된장무침, 슴슴하게 볶은 멸치볶음, 아삭한 열무김치, 콩고기까지. 무려 13가지. 그중에서도 압권은 노루궁뎅이버섯을 데쳐 기름장에 낸 것과 생인삼 두 뿌리였다.
“여기 반찬 너무 잘 나온다. 나 노루궁뎅이 버섯 처음 먹어봐.”
보슬보슬하고 연약한 노루궁뎅이 버섯을 기름장에 찍어 입으로 가져갔다. 혀끝에 닿는 몽글몽글한 촉감 뒤로 숲의 정령을 삼킨 듯한 버섯 향이 밀려왔다. 엄마 역시 작지만 귀한 인삼의 잎과 뿌리를 조심스레 아껴 먹으며 보은의 인심에 감동했다.
반찬만 먹어봐도 그 식당의 운명을 점칠 수 있는 법. 아니나 다를까, 능이해장국은 버섯 세계 1등 다운 풍미를 자랑했다. 시원한 국물 속에 배어든 능이 특유의 짙은 향은 속을 달래주는 동시에 정신을 맑게 깨웠다. 달큰한 대추 향이 감도는 대추 약고추장 비빔밥까지, 우리는 식탁 위에 차려진 부처님의 자비를 만끽하고 있었다.
식사를 반쯤 비웠을 때 홀에서 서빙하시는 사장님과 주방에 있는 요리의 대화가 들렸다. 절대 엿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주방과 가까운 자리에 앉은 탓에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렸다.
“1번 룸에 반찬이 안 나왔는데?”
“아까 다 나갔어요.”
사장님은 잠시 홀을 둘러보는 듯 말이 없었다.
“잘못 나갔나 보네. 다시 준비해 줘.”
식당 안엔 1번 룸의 가족 손님과 우리뿐이었다. 그 순간, 엄마와 나의 시선이 교차했다. 엄마는 앞니로 잘라 야금야금 먹던 인삼을 크게 베어 먹었고, 나는 남은 노루궁뎅이를 몽땅 입안으로 숨겼다. 사장님이 내온 음식을 다시 뺏어갈 리 만무했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증거 인멸에 착수했다.
"어쩐지, 해장국에 인삼은 좀 과하다 싶었어."
엄마가 삼 냄새를 풍기며 소곤거렸다.
타종 의식을 보며 경건해졌던 마음은 간데없고, 잘못 찾아온 행운을 놓치지 않으려는 두 모녀의 순발력만 어색하게 자리했다. 부처님의 자비가 계산 착오를 통해 산채비빔밥 거리까지 뻗친 덕분에, 우리의 저녁은 평소보다 조금 더 알싸하고 조금 더 쫄깃한 비밀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