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시장이 있다면 어디든 가, 그게 해외일지라도

대만 야시장 투어

by 경미로움

인생이란 결국 '자신의 취향을 정교하게 깎아 나가는 여정'이 아닐까.


산보단 바다, 물고기보단 육고기, 무계획보단 철저한 사전 조사. 한정된 경비라면 좋은 숙소보다 한 끼의 성찬에 투자하고, 평범한 식당보다는 줄을 서더라도 혀끝을 울리는 맛집을 고집한다. 그렇게 시행착오를 거치며 발견한 나의 여행 취향은 명확하게 '식도락'으로 수렴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단연 '야시장'이다.


선선해진 밤공기 속에 시끌벅적하게 피어오르는 음식 냄새, 한 손에 무언가를 들고 '다음은 뭘 먹을까' 고민하는 그 찰나가 나에겐 가장 확실한 행복의 조각이다.




아는 중화권 회화라곤 '니하오, 씨예씨예, 니취팔러마'가 전부였지만, 대만으로 떠난 이유는 오직 야시장 때문이었다. 비행기 안에서 비장의 생존 언어들을 복기했다.


하오츠(맛있어요)
워스한궈러(나는 한국인입니다)
뿌야오 샹차이(고수는 빼주세요)



대만에서 첫 밤, 숙소 근처 린지양 야시장에 방문했다. 기대했던 우유튀김을 샀다. 튀기면 지우개도 맛있다던데 고소한 우유를 튀기면 얼마나 맛있을까. 무엇보다 액체인 우유를 어떻게 튀겼을까. 설레는 마음을 안고 받아 든 우유튀김은 튀김옷을 입은 아이보리색 메로나 같은 모양새였다. 우유보단 연유에 가까운 맛에 느끼하고 물컹한 식감이 몹시 당혹스러웠다. 마뜩잖은 표정으로 우유튀김을 먹고 ‘아는 맛’으로 입을 헹궈야겠다 싶어 근처 닭꼬치 상점에 들러 주문했다.


“니하오. This one please."


손가락으로 닭꼬치를 가르키며 말했다.


“Where are you from?”


사장님은 숯불에 닭꼬치를 올리며 물어왔고, 한국에서 왔다 답했다. ‘그럴 줄 알았다’며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가며 내게 무어라 말씀하셨지만 도통 알아들을 수 없었다. 비장의 카드인 파파고를 열어 번역했다.


일전에 한국으로 여행 가서 닭꼬치를 사 먹었는데 굉장히 비싸게 팔더라는 이야기였다. 소통되지 않는 소통을 하는 동안 주문한 닭꼬치가 나왔다.


“하오츠. 하오츠!”를 연발하며 엄지를 치켜세워드렸다. 우유튀김의 느끼함을 닭꼬치의 짭쪼름한 맛으로 씻고, 치즈감자를 주문했다. 잘 익은 통감자 안에 원하는 토핑을 얹어 먹는 방식인데 어떤 토핑인지 읽을 수 없었다.


“니하오. This one, Topping is Your choice. please."


언어는 기세라고 했다. 문법이 틀리고 발음이 이상해도 눈빛과 엄지 하나면 얼추 통한다.


치즈감자는 입안에서 비보잉 대회가 열린 듯한 풍미를 선사했다. 옥수수가 톡톡 터지고 감자가 포슬포슬 춤추는 와중에, 치즈라는 압도적인 우승자가 모든 맛을 평정했다. 과연 치즈를 넣었을 때 맛없는 음식이 있을까. 없다. 절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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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밤, 라오허제 야시장에서는 지파이에 도전했다. 넓게 편 닭고기를 초벌로 튀겨 간장 양념에 재운 뒤 구워주는 음식인데, 내 앞에서 먼저 받아 든 한국인의 한마디가 모든 걸 요약했다.


"교촌 간장치킨이 훨씬 낫다."


...맞는 말이었다. 염지가 안 돼 속살은 심심하고 겉에만 양념이 묻어 있었다. 그래도 크기만큼은 압도적이라 배는 찼다. 옆 상점에서 쭈꾸미 타코야끼를 추가로 샀다. 쭈꾸미 한 마리가 통째로 한 알에 들어가 있어서 씹는 맛이 굉장히 좋았다. 타코가 안 들어갔는데 타코야끼라고 불러도 되는 건지 모르겠지만, 맛있으면 그걸로 되었다.



셋째 날, 낮에 ‘딘타이펑’이라는 식당에 방문했다. ‘크고 풍요로운 솥’이라는 뜻처럼 다양한 중국식 만두인 샤오룽바오를 파는 곳인데, 무려 본점이란다. 1인 식객의 슬픈 점은 여러 가지 음식을 시키고 다양한 맛을 볼 수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언제 또 글로벌 식당 본점을 또 오겠는가. 우육면, 게살 샤오룽바오, 통새우 샤오마이를 주문했다.


전날 지우펀에서 샤오룽바오를 난생처음 먹었는데, 한국식 만두처럼 한입 베어 물었다가 깜짝 놀랐다. 뜨거운 육즙이 턱을 타고 줄줄 흘러버린 것이다. 딘타이펑에선 ‘샤오룽바오쯤이야 매일 먹는 대만 사람’인 양 자연스럽게 게살 샤오룽바오 하나를 움푹한 숟가락에 올렸다. 젓가락으로 옆구리를 슬쩍 찢어 육즙이 흘러나오게 했다. 식초1 간장3 비율의 생강 초간장을 만들어 샤오룽바오에 얹어 먹었다. 생강 초간장이 육즙의 느끼함을 잡아주고 고기의 풍미를 배가 시켰다. 육즙을 질질 흘리며 먹지 않고 우아하게 게살 샤오룽바오와 통새우 샤오마이를 먹을 즈음 우육면이 서빙되었다. 슬슬 배가 찼는데 커다란 그릇에 기름진 국물을 보니까 ‘괜히 많이 시켰나’ 부담스러웠다. 기왕 시킨 것 맛이나 보고 가자 싶어 국물, 면, 고기를 순서대로 입에 넣었다.


오! 사골육수처럼 깊고 진하며 매콤하다!

오오! 일본식 생면처럼 탱탱하고 부드럽다!

오오오오오오오오!! 물에 빠진 소고기가 어쩜 이리 부드럽지!!


어릴 적 보았던 애니메이션 <요리왕 비룡>에서 비룡의 음식을 맛본 심사 위원이 된 듯 머릿속에서 섬광이 일었다. 수저 가득 국물, 면, 고기를 얹어 입에 넣었다. 하마터면 일어나서 손뼉 치며 ‘하오츠 하오츠’를 외칠 뻔했다. 배가 터질 것 같았지만 세 메뉴를 말끔히 클리어하고 딘타이펑을 나섰다.


1인 3메뉴의 여파는 굉장했다. 종일 쇼핑하고, 걷고, 밤이 돼서 ‘스린 야시장’에 도착했지만 배가 안 꺼졌다. 대만 최대 규모의 야시장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스린야시장은 넓었다. 맛있는 음식도 많았고 구경할 것도 넘쳐났다. 한참 동안 구경하고 뭐라도 맛보자는 마음에 ‘감자볼’을 샀다. 약간의 치즈가 들어있는 동그란 감자 반죽을 튀긴 후 치즈 맛 시즈닝을 묻혀 플라스틱 컵에 담아주었다. 서서 먹자니 오가는 사람이 많아 츠청궁이라는 근처 사찰 계단에 앉아 감자볼을 먹었다. 츠청궁을 등지고 앉아 야시장을 바라보니 저마다 이 밤을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북적이는 인파를 한 발짝 떨어져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혼자구나. 나 혼자. 대만에 왔구나.”


입 밖으로 내니 혼자임이 더욱 실감 났다. 평소였다면 외로워서 일부러 사람들 속에 스며들려고 노력했을 텐데, 오히려 고독이 여유롭고 편했다. 길바닥에 앉아 감자볼을 먹는 내가 대견하다고까지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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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밤, 닝샤 야시장에서 나는 진공청소기처럼 음식을 빨아들였다.

튀긴 밀가루 반죽에 계란과 매운 소스를 얹은 총요우빙, 오꼬노미야끼, 큐브스테이크까지. 배가 남산만 해졌을 때 운명처럼 '땅콩 아이스크림'을 만났다. 얇은 전병 위에 커다란 땅콩엿을 대패로 갈아 올리고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돌돌 만 그것. 대만 여행 중 유일하게 두 번 사 먹은 음식이었다. 땅콩엿과 대패 세트가 판다면 사가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니하오
씨예씨예
하오츠
뿌야오샹차이

짧은 회화 외엔 어떤 말도 내뱉지 않은 4박 5일이었다. 입이란 오로지 먹기 위해 존재하듯, 나는 부지런히 씹고 삼키며 나의 취향을 확인했다. 타지에서의 고독을 식욕으로 치환했던 나의 첫 해외 야시장 투어는 그렇게 기름지고 달콤하게 마무리되었다.


5야시장 지우펀.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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