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비 드링커 : 군산 뼈 해장국

등줄기가 서늘한 히치하이킹

by 경미로움

“남자 친구? 거짓말하는 거 다 알아요.”


룸미러 너머로 나를 매섭게 낚아채던 남자의 눈빛. 군산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하필이면 그 불길한 시선이 될 줄은 몰랐다.




A부터 Z까지 동선을 정밀하게 설계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에게, 지난 통영 여행은 일종의 트라우마였다. 계획할 땐 입을 꾹 닫고 있다가 막상 현장에선 투덜거림을 발사하는 미영과 다시는 여행을 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허나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그해 여름휴가, 미영을 내 여행 궤도 안으로 다시 들여놓는 짓을 또 저질렀다. 군산 여행을 계획한다고 말했더니 미영이 자기도 가고 싶다 했고, 나는 반사적으로 "그럼 같이 가자"고 답해버렸다. 말하고 나서 아차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군산에 도착해 맛집에 줄을 서 짬뽕을 먹고, 초원사진관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근대 박물관에서 더위를 식히며 구경할 때까진 좋았다. 하지만 새벽 기차를 타고 와 몰아친 강행군에 피곤했는지 코피가 났다. 근처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잠시 앉아 쉬었더니 코피는 금방 멎었다. 차라리 코피가 멈추지 않고 조금 더 피곤했더라면 선유도에 가지 않았을 텐데. 그럼 그런 일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다시 돌이켜 보면 그때 흐른 코피가 선유도로 향하는 우릴 저지하는 하늘의 계시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비극의 전조는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시작됐다. 엉뚱한 버스에서 내려 길을 헤매는 동안, 미영은 남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모든 게 내 탓이라는 투로 불만을 늘어놓았다.


내가 네 전용 가이드냐?
탱탱볼 같은 년아!!!!!!!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꾹꾹 눌러 담았다. 황금 같은 휴가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 꼬여버린 배차 간격과 대교 하나를 건너며 시외 요금을 찍어대는 택시 기사까지 가세하자 내 인내심은 임계점에 근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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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사리 도착한 선유도는 신선이 놀다 갔다는 이름의 유래를 납득케 했다. 태양이 머리 꼭대기에서 바다 위로 기울어진 오후 3시의 풍광은 우리를 이 시간에 선유도에 닿게 하기 위한 하늘의 뜻이라 느껴질 만큼 감격스러웠다. 수면 위에 비친 산의 반영과 부서지는 태양이 마치 바다 위에 금가루를 뿌려둔 것 같았다. 드넓은 선유도를 최대한 둘러보기 위해 스쿠터를 빌렸다. 아니나 다를까 나의 짐짝, 나의 책임, 미영은 시운전을 해보곤 혼자 스쿠터를 못 타겠다고 내 등에 매달렸다. 스쿠터를 타고 얼마 못 가 모래사장에서 휘청 넘어질 뻔했고, 또 등 뒤에서 미영의 타박이 들렸지만, 타박 따위 바닷바람에 날려버리고 섬을 내달렸다. 선유도는 일몰이 특히 아름답다는 어떤 블로거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태양이 뉘엿뉘엿 누울수록 감동스러운 경치를 만들어 냈다.


한참 선유도를 만끽한 우리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스쿠터를 반납하고 군산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정류장에 함께 서 있던 중년 부부가 말을 걸었다.


“다음 버스는 40분 있다가 온대요.”


역시 99번 버스는 우리에게 쉬이 자리를 내어줄 마음이 없었다. 또 택시를 타자니 바가지요금이 아까웠고, 선유도에서 40분 더 걷자니 다리가 아파왔다. 그저 빨리 숙소에 들어가 눕고 싶은 마음만 간절했다. 어쩌나 고민하던 중에 하얀색 마티즈가 우리 앞에 섰다.


“군산 시내 가세요? 제가 태워다 드릴게요.”


30대 중반쯤 되는 남자가 말을 걸었다. 엄마가 낯선 사람 차에는 함부로 타지 말라고 했지만 너무 힘들어서 이성적인 판단을 가로막았다. 머뭇대며 미영을 슬쩍 바라보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혼자도 아니고 둘인데 무슨 일이 있겠냐 싶은 안일함으로 뒷문을 열었다.


‘달그락’


뒷좌석 바닥에 소주병과 빈 맥주 캔이 찌그러진 채 나뒹굴고 있었다. 이성은 차에 타지 말라고 말렸지만 내 몸은 저도 모르게 차에 올라탔다. 바닥에 나뒹구는 소주병이 부딪치는 소리, 퀴퀴한 차 냄새. 남자는 룸미러를 통해 우릴 바라보았다.


“군산 시내 가서 술 한잔해요. 제가 살게요.”


하얀 마티즈가 우리 앞에 섰을 때부터 뒤에서 강하게 잡아당기는 느낌이 들었는데, 남자의 눈빛을 보니 목덜미가 서늘해짐을 느꼈다. 더 이상 이 위험신호를 간과해선 안 될 것 같았다.


“아녜요. 저희 시내에서 남자 친구 만나기로 해서요.”


존재하지도 않는 남자 친구를 소환해서 거절했다.


“남자 친구? 거짓말하는 거 다 알아요.”


남자는 룸미러를 통해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 소주병 덜그럭거리는 소리와 꿀꺽 마른침 삼키는 소리만이 차 안을 메웠다. 미영과 눈짓으로 내리자는 신호를 보내고 남자에게 말했다.


“저희 남자 친구가 여기로 데리러 온다고 해서요. 저기 길가에 세워주세요.”


남자는 사냥감을 놓친 하이에나 같은 눈빛으로 노려보다 말없이 길가에 차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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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어지는 마티즈를 보며 비로소 굳었던 숨을 내뱉었다. 버스정류장에 미영과 멍하니 앉아 있었다. 잠시 후

99번 버스를 탔고 선유도 정류장에서 본 중년 부부를 다시 마주쳤다.


“안 보이기에 택시 탄 줄 알았어요. 어떻게 여기서 탔어요?”


어색한 미소로 그들의 궁금증을 외면한 채, 미영과 나는 시내까지 단 한 마디도 섞지 않았다.





숙소 근처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서늘해진 심장을 데워줄 음식이 절실했다. 근처 식당에서 뼈해장국 두 그릇을 주문했다. 식당에 앉아 초췌해진 서로를 바라보다가 웃음이 났다. 조금 전 아찔했던 일을 곱씹었다. 나는 눈짓으로 ‘탈까?’ 물었고, 미영은 ‘타지 말자’ 했단다. 어이없는 수신 오류로 아찔한 경험을 했다.


이윽고 뼈해장국이 나왔다. 죽다 살아나 먹은 식사. 고기를 한 점 떼어 입에 넣고 미영과 눈을 맞췄다. 나는 눈짓으로 ‘맛없지?’ 물었고, 미영은 ‘드럽게 맛없네’하고 답했다. 수신 오류가 있을 수 없는 맛이었다. 평생 처음이었다. 고기를 남긴 게.


씹어도 씹히지 않던 그 질긴 고기의 식감은 군산 선유도에서 겪은 아찔한 공포의 잔상과 묘하게 닮아있었다. 문득문득 떠오른다. 룸미러를 통해 매섭게 노려보던 남자의 눈빛. 그리고 뒷좌석에 나뒹굴던 소주병 부딪히는 소리. ‘달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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