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의 자부심

by 노경문

샤오미가 O1이라는 플래그십 스마트폰을 내놨다.

성능이 너무 뛰어나 모두가 놀랐다.

중국산 전기차 SU7 Ultra는 뉘르부르크링에서 1등 랩타임을 찍었다.

실적이나 마케팅이 아닌, 말 그대로 기술력의 증명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기사보다도 그 아래에 달린 댓글들이었다.


“중국에게 뒤처졌다고 느낀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다.
자부심의 균열, 그리고 그 안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현실감각의 고백이었다.

우리는 늘 중국을 아래로 봐왔다.
짝퉁, 복제, 조악, 미개.
그 고정된 이미지 속에서 안심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조롱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걸
우리 스스로 가장 먼저 체감하고 있다.


"한국에 살지 않았다면 중국폰을 썼을 것 같다"는 댓글이 이상하게 진심처럼 느껴지는 이유다.


무시에서 선택으로, 조롱에서 비교로.
우리는 지금, 어떤 경계 위에 서 있다.

기술 선도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오래전부터 동남아에서는 비보, 오포, 샤오미가 삼성보다 더 많이 쓰였다.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라 기대하지 않았지만,
요즘 보면 오히려 도전적이고, 실험적이고, 빠르다.


로봇, 전기차, 반도체, 배터리.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우리는 주춤한다.
언제부턴가 선두를 따라잡는 것에 익숙해졌고,
심지어 뒤처진다는 감각조차 무뎌졌다.

이쯤 되면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진짜 우물 안 개구리는,
밖을 모르는 자가 아니라,
밖을 안다고 착각하며
우물의 물맛이 최고라고 믿는 사람이다.

국뽕은, 그 착각의 다른 이름이다.

산업 뉴스만 봐도 그렇다.
변화의 단서를 포착하거나 전환을 유도하는 기사는 드물고,
결과만 나열하는 보도(실적, 파산),
감정적 클릭을 유도하는 기사(흥분, 불안),
혹은 소비지향의 투자유도형 기사(지금 사야 할 종목)만 가득하다.
산업을 말하면서도, 산업을 생각하게 하진 않는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방향은 없다.
관심은 생기지만, 판단은 흐려진다.
스크롤을 멈추지 못하면서도, 아무것도 기억에 남지 않는다.

한국의 언론은 단지 정보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산업’을 감정과 소비의 언어로 포장해 끊임없이 재가공한다.


이렇게 가공된 뉴스는 대중의 흥미는 붙잡지만,
통찰과 구조에 대한 감각은 마비시킨다.
결국 뉴스는 대중을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머물게 하고,
더 깊이 들어가는 질문은 애초에 허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알고리즘은 이 쏠림을 더욱 강화한다.
중간은 사라지고,
양 극단의 정보만이 추천되고 소비된다.
자극적인 헤드라인, 분노 유도형 댓글,
그리고 부추겨진 투자 기대감.
그 속에서 대중은 점점 더
‘생각하는 소비자’가 아닌,
반응하는 소비자가 되어간다.

이건 단순한 관심 부족이 아니다.
뉴스를 빠르게 소비하고, 감정을 자극받고, 클릭으로 반응하도록 설계된
콘텐츠 산업의 구조적인 기획물이다.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관심을 좇는 것이 아니라,
더 오래 머물게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중간을 제거하고 극단을 증폭시킨다.
정제되지 않은 분노와, 과장된 기회, 조작된 위기감이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그 결과, 우리는 현실을 통찰할 여유도 없이
‘지금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건 망했나 아닌가’만을 반복하며 살게 된다.

우물 밖을 상상할 기회조차 사라진다.

산업을 자주 본다고 해서 산업을 아는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너무 늦게 깨닫는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이다.

중국의 최우수 인재는 공대를 나와 화웨이, 알리바바 같은 기업을 만든다.
한국의 최우수 인재는 의대를 나와 피부과를 차리고 보험을 빼먹는다.


중국의 중간급 인재는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월화수목금금금으로 갈려가며 경쟁한다.
한국의 중간급 인재는 공기업이나 대기업에 들어가,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고, 성과금 없다고 투쟁한다.

중국은 인구가 한국의 20배다.
우리는 반대로 해도 버거운 싸움에서,
이렇게 나태해져버렸다.

정해진 미래라는 말이
이토록 피부로 와닿은 적이 있었던가.

“우리도 잘하고 있어.”
“그래도 중국보단 낫지.”


이런 자부심은 생각보다 강력하고,
생각보다 위험하다.

자부심은 질문을 막고,
변화를 더디게 하며,
실패를 부정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렇게,
천천히 나라를 망친다.

진짜 위기는 위기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데 있다.
진짜 우물 안 개구리는
세상이 바뀌었다는 사실조차 감지하지 못한 채
“우물은 여전히 안전하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지금 우리의 자부심은,
깊이가 아니라 두께다.
겹겹이 두껍게 쌓여 있지만,
그 바닥은 점점 얕아지고 있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