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거기 있을 줄은 몰랐다

by 노경문

하루는 틱톡을 보다 우연히 라이브에 들어가게 되었다.
호기심이었다. 뭘 그리 많이들 본다는 걸까.
그런데 멈추질 못했다. 놀라워서가 아니다.
너무 이상해서 그랬다.

몇 개, 혹은 수십 개의 라이브가 동시에 열려 있었다.
누군가는 노래를 부르고, 누군가는 멍하니 앉아 있었고,
대부분은 ‘합방’이라고 불리는 방식으로 후원 대결을 하고 있었다.

별풍선, 하트, 순위라는 말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창.
자극적이지도 않고, 감동적이지도 않은데,
그저 어색한 텐션과 어설픈 경쟁이 이어졌다.

이상했다.
그런데 그 라이브엔 수백, 수천 명이 붙어 있었다.

그날 나는,

내가 꽤 오래전부터 호감을 갖고 있었던
한 연예인의 틱톡 라이브를 보게 됐다.

전성기가 지난 지는 꽤 되었지만,
좋은 감정이 남아 조용히 응원하고 싶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사람도 하루 종일 합방 라이브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은 후원 대결.
“지금 한 번만 눌러주세요!”를 반복하며
상대 크리에이터와 라이벌 구도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 순간, 현타가 왔다.
지나친 실망은 때론 조롱보다 적막하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앱을 껐다.

왜 그런 방식으로 살아남아야 했을까.
왜 저런 콘텐츠에 사람들이 돈을 쓰는 걸까.
왜 나는 그걸 보고 이렇게까지 허무한 걸까.

그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틱톡 라이브는 단순한 플랫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그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감정이 거래되는 시장의 축소판이다.

틱톡 라이브는 ‘보여주기’보다

‘지켜보다가 휘말리는’ 구조다.


영상은 세로고, 말은 가깝고, 대결은 단순하다.
한 번 보고 스와이프 한 번으로 지나칠 수 있을 만큼 가볍지만,
실시간 순위와 후원, 채팅창의 과열된 반응은
도박처럼 뇌를 자극한다.

하지만 그 안엔 감정이 없다.
갑자기 큰 후원이 터진다.
하늘에 돈이 뿌려지는 극적인 장면은 있지만,
진짜 감동은 없다.
기억은 남지 않고, 자극만 흐른다.

틱톡 라이브의 진입장벽은 없다.
그저 스마트폰을 들고 말을 시작하면 된다.
그 안에서 수많은 이들이 오늘도 ‘방송’이라는 걸 한다.

자신의 삶, 감정, 일상, 외모, 재능, 성을
하루 단위로 쪼개 팔고, 후원을 유도한다.

그들은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소진하는 구조 속에 있다.
라이브를 끄면 웃지 않아도 되는 얼굴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내일은 뭘 보여줘야 돈이 될까,
그걸 고민해야 한다.

나는 이런 생태계를 비판하고 싶었다.
‘저급하다’, ‘비정상적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그것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고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알고 있다.
수요가 있기에 공급이 생기고,
무너지는 구조는 늘 가장 먼저 사람부터 부순다는 것을.
그 안에 있는 사람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게 오래가지 못할 거라는 걸.
그럼에도 오늘은 또 켜야 한다는 걸.

이제는 묻고 싶다.
이 속도와 자극의 구조 속에서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무엇일까.

누군가의 눈빛에 머무는 감정,
진짜 이야기가 쌓여가는 시간,
의미 없는 듯 말하다가 문득 뭉클해지는 순간.
그런 콘텐츠는 사라진 걸까,
아니면 아직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는 걸까.

내가 브런치에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아마도 여기에 아직 그런 감정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당분간 나는 틱톡 라이브를 보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곳에서 누군가 살아남기 위해
오늘도 웃고 있을 것을 안다.

그걸 비난하고 싶진 않다.
다만, 그렇게 소진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방식이 있기를 바란다.

누군가는 지금도 열심히 말하고 있다.
나를 봐달라고, 지금만 눌러달라고.
그 말이 ‘도와줘’처럼 들리는 순간,
나는 조용히 창을 닫았다.

아무 말 없이.
아무 감정 없이.
그저 말없이,
생각 하나가 조용히 가라앉았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