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과 썰물의 법칙

관계의 구조와 지배의 전략에 대하여

by 노경문

인간관계는 장기판이다.
상대가 누구든, 돌이 흑이든 백이든 결국 남는 건 위치다.

인간관계를 말할 때, 우리는 자주 감정의 언어를 쓴다.

따뜻한 사람, 차가운 사람, 정이 많은 사람, 냉정한 사람.

그러나 나는 그런 형용사로 관계를 해석하지 않는다. 사람의 인성이나 성향보다는, 관계가 만들어지는 구조 자체에 더 관심이 많다.

나는 인간관계를 두 가지 시각에서 본다.

하나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비교우위 혹은 지배우위 이론이다.

전자는 말 그대로, 내가 무엇을 주었는가, 그리고 무엇을 받을 수 있는가의 관점이다. 흔히 말하는 거래적 관계다.

감정까지도 일종의 자산이며, 관심이나 친절은 투자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도, 내가 얻고 싶은 무언가가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다.

내가 말하는 ‘이득’은 단지 돈 같은 1차원적인 것뿐만이 아니다.
감정적 안정, 인정, 자기 성장, 심지어 귀한 침묵도 이득이다.
인간관계는 늘 거래이되, 그 단위가 감정일 수도 있다는 걸 인지해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 더 중요한 건 두 번째다.

비교우위, 혹은 지배우위의 이론. 인간관계에서는 단순한 주고받음보다, 누가 관계의 중심에 있는가, 누가 필요한 존재인가, 그 흐름이 훨씬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여기서 말하는 ‘갑’은 갑질의 갑이 아니다.
관계에서의 주도권, 혹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의 위치를 뜻한다.
감정적으로 위에 있는 게 아니라, 구조적으로 핵심에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 단어를 꺼리지만, 나는 오히려 그 단어 속에서 관계의 본질적인 긴장감을 본다.




나는 가능하면 언제나 갑의 위치에 서 있으려 한다



그것은 결코 고압적이라는 뜻이 아니다. 목소리를 높인다거나, 차갑게 말한다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그런 태도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오히려 정반대다.

상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무언의 분위기를 만드는 것. 내가 가진 정보, 가치, 영향력을 조용히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관계의 공기를 설계하는 기술이다. 내가 관계의 흐름을 조율하고, 상대가 스스로 나의 필요를 인식하게 만드는 구조. 이것이야말로 지배우위의 핵심이다.

누군가는 선한 영향력을 펼치고도 바보 취급을 받는다.
또 다른 누군가는 말을 아끼고도 존경을 받는다.
그 차이는 카리스마다. 그리고 그 카리스마는 연습과 전략, 실전의 축적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관계의 정답은 ‘손해 보지 않는 선’이다



살면서 깨달은 게 있다.
인간관계에서 손해를 보면 기억에 남고, 이득을 보면 관계가 남는다.


손해를 본 관계는 결국 상처로 남는다. 그 순간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인 것 같지만, 시간이 지나면 씁쓸함만 남는다. 반대로 내가 조금이라도 얻은 관계는 나를 성장시켰고, 오히려 오래 남았다.


관계란 결국 서로가 얻을 게 있을 때만 유지된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일반론적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관점에만 존재할 뿐이다.

법은 선한 사람을 지키는 게 아니라, 증거를 가진 사람을 지킨다. 관계 역시 그렇다. 마음이 아니라, 위치가 결과를 만든다.

그러나 모든 관계가 ‘설계’에 응답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는 인간관계론은 대부분의 경우에 잘 작동한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이 논리에 수긍하는 건 아니다.

관계라는 건 결국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가끔은 애초에 득실이 애매하거나, 사람 자체가 결이 맞지 않는 경우.
혹은 상대도 나와 같은 구조적 전략을 가진 경우도 있다.

전자는 과감히 패스하는 것이 내 원칙이다.
인생은 짧고, 에너지는 유한하다.
득이 없거나, 실이 더 크다면 그 관계는 버린다.
타협하지 않는다. 무의미한 인연을 붙잡느라 내 집중력을 낭비하지 않는다. 감정적 미련도 없다. 그냥 조용히 접는다.

물론 그 선택이 늘 옳은 건 아니다.
어떤 인연은 드물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보석처럼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그런 확률에 인생을 맡길 순 없다. 지금의 판단을 기준 삼을 뿐이다.

하지만 후자는 조금 다르다.
상대도 나처럼 전략적인 사람이라면, 기싸움이 생긴다.
그럴 땐 감정의 접착력이 필요하다. 조율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부러 작은 기복을 만든다. 때로는 져주고, 때로는 이기고.
정서적으로 거리를 좁히고, 전략적 거리에서는 살짝 물러난다.
이런 관계는 시간이 지나면 ‘경쟁자’가 아니라 ‘동류’가 된다.
서로를 경계하다가, 어느 순간 서로를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관계에도 통제가 아니라 조율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
그때는 자존심보다 온도를 조절하는 기술이 더 중요하다.




병원은 인력을 갈아 넣는 시스템이다



얼마 전 형은 밤늦게 카톡을 보냈다. 직원 한 명이 그날 병원을 나갔다는 말과 함께.
개업한 지 네 달이 되었는데, 직원들과의 갈등이 끊이지 않아 초기 멤버들이 전원 교체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노동법적인 문제로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선배 자영업자로서 겪었던 경험도 있고, 사실대로 말했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사장이 갑이 아니라는 점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문제가 생긴 순간, 사업주는 을이 된다.
노동자는 보호받고, 사용자는 책임을 진다.
그것이 현행 법의 전제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과 정의를 명분으로 근로감독 인력을 대폭 늘릴 계획이다. 일부는 이를 과잉규제라고 보지만, 구조는 이미 ‘사업주 리스크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감독관의 호칭은 ‘노동경찰’로 바뀔 가능성까지 논의 중이다.

법은 명확하다. 사업자는 감정보다 문서로 증명해야 한다.
불만은 설득이 아니라 절차로 방어해야 한다.
착한 사람이 살아남는 구조가 아니라, 준비된 사람이 덜 다치는 구조다.

병원은 전형적인 인력 중심 구조다.

시스템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으로 돌아간다.

단 한 명의 데스크, 한 명의 간호사, 한 명의 실장. 그들의 태도 하나로 병원의 전체 이미지가 결정된다. 하지만 바로 그 사람들이, 법적으로는 가장 강하게 보호받는 존재들이다.
구조적으로 병원은 리스크를 내부에 품고 운영되는 시스템인 셈이다.

나는 깊이 알진 못하지만, 하나는 알겠다.
직원에게 위법 소지가 있는 ‘결정’은 절대 맡기면 안 된다.
‘좋게 좋게 넘어가는 방식’은 나중에 법적 리스크가 되어 돌아온다.
내가 인간관계에서 깨달은 그 원칙을 사업에도 똑같이 적용해야 한다.




남는 관계는 결국, 감정이 아니라 구조 위에 세워진다



병원도 인간관계고, 인간관계도 결국 구조다.
나는 누군가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관계 자체는 열정이나 진심만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한다고 해서 잘 굴러가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나에게 유리하게 설계하려는 태도,
그 위에 서 있는 무언의 전략,
그 안에서 내 자아를 무너지지 않게 지키는 훈련,
그것이 내가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방식이다.

관계는 밀물처럼 다가오고, 썰물처럼 사라진다.
발자국은 지워지지만, 내가 바라보던 방향만은 기억된다.
그 방향이 결국 나를 만든다.

화, 목, 토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