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 릴스를 무작위로 넘기다 보면 비슷한 장면이 끝없이 이어진다.
아.아 대신 샴페인을 들고, 브랜드 로고가 보이는 뒷좌석 가죽시트에 몸을 기댄 채 찍은 짧은 영상.
명품 쇼핑백으로 가득한 집 거실,
“나는 가난했지만 지금은 이렇게 성공했다”는 진부한 이야기. 그리고 이어지는 온라인 판매.
처음엔 우연이라 생각했지만, 곧 깨달았다.
그것은 하나의 매뉴얼이었다. 마치 누군가가 “성공하려면 이렇게 연출하라”고 알려준 듯한, 복제된 장면들.
나는 거기서 등을 돌린다.
돈과 성공을 자랑하는 사람을 돕고 싶지 않다.
내 마음은 언제나 어렵고 성실한 쪽으로 향한다.
그러나 세상은 달랐다.
허세를 부리는 사람들 곁에는 팔로워가 몰렸고, 그들의 물건은 실제로 팔려 나가는 것 같다.
같은 화면을 보면서 나는 불편을 느꼈지만, 많은 이들은 그곳에서 희망을 읽었다.
바로 그 차이가 나를 붙잡는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이해하려면, 사람들의 심리 속을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화려한 삶을 빌려 사는 대리만족은 달콤하다.
동조는 남들과 함께 있다는 안도감을 주고, 희망의 고리는 언젠가 나도 그럴 거라는 위안을 건넨다.
명품과 고급차는 상징의 힘으로 권위를 덧씌우고,
‘나와 같은 출신이 성공했다’는 이야기는 동일시의 착각을 낳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회피의 본능은 잠시라도 현실을 잊게 한다.
이 모든 것은 매혹적이지만, 결국은 족쇄다.
그런 방식으로 소비하면 성공을 해도 만족은 없다.
더 큰 허세만이 다음 목표가 되고, 겉은 화려해도 속은 텅 빈다.
나는 반대편에 서 있다.
정직과 신뢰, 오래 버티는 힘을 믿어왔다.
내 영업 방식은 언제나 본질을 중시했고, 장기적인 관계를 쌓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회의감이 스며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았고, 속여서 잘 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정직=성공”이라는 공식은 더 이상 나를 안심시키지 않았다.
얼마 전 누군가 한 분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사장님, 솔직히 본사가 정직하게 운영한다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정직하다고 장사가 다 잘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 순간 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본질을 붙잡고 싶었지만, 그 말은 정곡을 찔렀다.
정직은 내 무기라 믿었는데, 사실은 방패에 불과했다. 나를 지켜주지만, 전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크게 흔들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그 한마디가 귓가에 맴돌았다.
마치 내가 수년간 쌓아온 신념이 얇은 종이처럼 구겨지는 듯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유통의 가장 밑바닥, 소매의 끝자락에 서 있다.
물건을 만들지도, 조달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판매하는 자리.
부가가치는 위로 갈수록 커진다.
의사나 변호사처럼 전문 지식으로 가치를 만들 순 없지만, 내가 오를 수 있는 길은 분명히 있다고 믿는다.
브랜드를 세우고, 생산을 배우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제빵학원에 등록했다. 내일부터 실기수업을 시작한다.
준비된 계획이라기보다, 오히려 갑작스러운 결단이었다.
빵을 배우겠다는 선택은 충동 같지만, 사실은 오래 쌓인 회의 끝에 나온 자연스러운 방향이었다.
정직이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정직은 무너지지 않게 해주는 기반이다.
허세는 번쩍이며 사라지지만, 정직은 느리게 뿌리를 내린다.
내일 처음 만질 반죽이, 어쩌면 내 사업의 새로운 형태일지도 모른다.
그 빵이 부풀어 오르는 만큼, 나의 방식도 달라질 것이다.
나는 이제 빵을 굽는 손으로, 내 방식의 진실을 다시 반죽해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