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편지에서 시작된 글

쓰는 이유, 다시 읽는 기쁨

by 노경문

사람들은 내가 꾸준히 글을 쓴다고 하면 놀란다.


대부분은 ‘써야지’ 다짐하다 멈추거나, 몇 번 시도하다 포기하는 일이 글쓰기니까.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계속 쓰고 있다.


어릴 적 우리 집에는 늘 펜과 종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글보다 나와 형에게 편지를 더 많이 쓰셨다.
시험을 잘 본 날에도, 다투고 돌아온 날에도,
심지어 작은 잔소리까지 편지로 쓰셨다.


아버지는 보통 일찍 출근하셨다.
아침에 눈을 뜨면 식탁 위나 내 책상 위에
살포시 놓여 있는 봉투가 있었다.
잉크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종이,
깔끔한 글씨로 적힌 나의 이름,
그걸 펼쳐 읽는 순간이면
아버지가 이미 출근한 빈 거실이 괜히 따뜻해졌다.


“오늘 하루도 잘 해낼 거라 믿는다.”
“너는 충분히 괜찮은 아이니까 걱정하지 마라.”


짧은 두 줄이었지만, 그 말들은 하루 종일 나를 지탱해 주었다.
나는 그 편지들 덕분에 아버지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했고,
그때부터 글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마음을 전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이라는 걸 배웠다.

부모님은 한동안 글을 꽤 쓰셨다.
수업 자료나 학급일지, 교내 소식지에 싣는 글 같은 것뿐 아니라 생활 속의 작은 감상도 자주 적으셨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글을 놓으셨다.
학생도, 학부모도, 동료도 사라지자
글을 써야 할 이유도 함께 사라진 듯했다.
그 자리는 소소한 운동 같은 취미생활과 동네 산책, 텃밭 가꾸기로 채워졌다.

나는 그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나는 문학이나 철학과 가까운 삶을 사는 사람이 아니다.
매출 정산표를 들여다보고, 가맹 점주님들의 전화를 받으며 하루를 보내는 사람이다.
그래서일까, 내가 꾸준히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
주변 사람들에게 더 의외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글쓰기를 시작한 가장 큰 이유는 아들 승원이었다.
아직 너무 어리지만, 언젠가 그가 읽어주길 바라며
아빠가 전하고 싶은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새 백 편이 넘는 글이 쌓였다.
가끔은 내 글을 다시 읽는다.
‘아, 이런 글도 썼었구나.’
어떤 글은 의외의 주제라서 내가 놀라고,
어떤 글은 시간이 지나 다시 읽으니 더 재미있다.
어떤 글은 그때의 나를 불러내
지금의 나와 대화를 나누게 한다.
그 순간은 마치 아버지가 남긴 편지를 다시 펼쳐 보는 것 같다.
내가 쓴 글인데도 나를 위로하고, 나를 다독인다.

몇 달 전에는 브런치에 작가로 등록됐다.

승인 메일을 열자 작은 설렘이 손끝까지 번졌다.
짧은 문장 하나였지만, 그 몇 초 동안
그동안 내가 쓴 글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갔다.
‘작가’라는 단어가 내겐 조금 무겁지만,
동시에 내가 계속 써야 할 이유를 새겨주는 이름이었다.
SNS에 일기처럼 흘려보내던 글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한 줄이라도 더 다듬어 쓰고 싶어진다.
그게 참 고맙다.

내 삶에서 글쓰기가 중심은 아니지만,
이 작은 통로 덕분에 나는 계속 나를 돌아보고,
누군가에게 건네고,
그리고 다시 내 글을 읽으며 배운다.
언젠가 이 글들이 승원에게 닿아
그가 힘든 날 다시 꺼내 읽으며 웃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나는 다시 쓴다.
오늘의 나도 내일의 나에게
작은 편지봉투 하나를 남겨 두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