깡총깡총, 다시시작

by 노경문

달리는 차 안에서 승원이와 동화뮤지컬을 들었다.

토끼와 자라 이야기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토끼는 간을 집에 두고 왔다며 자라를 놀리고,

깡총깡총 숲으로 사라졌다.

자라는 물가에 앉아 허탈히 파도를 바라보았다.


이야기는 거기서 났지만, 내 상상은 거기서 시작됐다.


자라는 다시 숲을 오르고,

토끼는 다시 주변을 경계하며,

둘은 언젠가는 다시 만날 것이다.

그리고 그날, 숲과 바다는 그 만남을 지켜볼 것이다.



토끼는 달빛 아래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이 기적 같았지만,

기적은 오래가지 않았다.

풀잎에서 이슬이 주르륵 흘러내리고,

숲에서는 벌레 소리가 풀풀풀 이어졌다.

토끼는 귀를 기울였다. 숲이 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숲:

“살아라, 작은 것아.

내 그늘이 너를 숨기리라.

그러나 기억하라.

여기는 숲이다. 너는 늘 깨어 있어야 한다.”


토끼는 눈을 감고 풀잎 냄새를 깊게 들이마셨다.

숨이 조금 가라앉자 다시 풀을 뜯었다.


한편 자라는 물가에 앉아 있었다.

밤바람이 물결 위를 스쳤고,

잔잔한 파도가 등껍질을 어루만졌다.


바다:

“돌아오라, 나의 자식아.

깊은 곳으로 내려와라.

나의 어둠은 너를 기다린다.

용왕의 숨결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자라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바다로 몸을 던졌다.


며칠 뒤 자라는 또 숲으로 올라왔다.

풀숲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다가

이번에는 어린 토끼를 붙잡고 말을 걸었다.



자라:

“나는 도구다.

멈추지 않는다.

죽음만이 나를 멈출 수 있다.”


그날 밤 용궁은 고요했고,

바다 밑에서는 소금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용왕의 병세는 잠시 나아졌다.

자라는 상을 받았지만,

깊은 바닷길을 헤엄치며 중얼거렸다.



바다:

“잘했다.

그러나 기억하라.

나의 갈증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숲의 토끼들도 점점 달라졌다.

밤이 되면 모닥불이 타오르고

연기가 풀잎 냄새와 섞여 숲에 퍼졌다.


토끼:

“우리는 도망치지 않는다.

우리는 숲이다.

숲은 우리를 버리지 않는다.”


숲:

“나는 너희 발자국을 기억한다.

자라가 오면 바람을 일으키리라.

나뭇잎이 흔들리고, 풀씨가 흩날리리라.”



계절이 바뀌었다.

숲에는 새 풀 냄새가 퍼졌고,

바다는 더 깊어졌다.

밤마다 파도 소리가 더 묵직해졌다.


어느 날, 자라는 다시 숲으로 올라왔다.

숲은 이미 깨어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가 갑자기 멎었다.

숲이 귀를 기울였다.

풀숲 너머에서 토끼들이 숨죽이고 있었다.


그때 한 마리의 토끼가 앞으로 나섰다.

달빛이 그의 하얀 털에 내려앉았다.


토끼:

“나는 두렵지 않다.

숲은 나와 함께 있다.”


자라:

“바다는 나를 부른다.

나는 멈추지 않는다.”


숲:

“작은 것아, 뿌리 깊이 서라.

네 울음은 오늘 밤 별빛에 닿으리라.”


바다:

“무거운 등을 져라, 나의 자식아.

오늘 밤, 너는 다시 시험받으리라.”



토끼 (속으로):

“나는 지킨다.

하지만 아직 떨린다.

오늘 내가 물러나면...

아이들이 사라진다.”


자라 (속으로):

“나는 간다.

무겁다. 그러나 멈출 수 없다.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는 한...

나는 다시 숲으로 올라온다.”



숲과 바다가 동시에 숨을 멈췄다.

달빛이 강물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두 생명은 오랫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아무도 이기지 않았고, 아무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나 둘 다 살아 있었다.

각자의 이유로, 각자의 방식으로,

끝까지 살아내고 있었다.



숲과 바다(동시에):

“우리는 보았다.

우리는 기억한다.

우리는 다시 본다.

숲의 발자국, 바다의 물결,

오늘의 결심, 내일의 싸움.

삶은 멈추지 않는다.

이야기는 계속된다.”



나는 이 상상을 좋아했다.

토끼와 자라, 숲과 바다가 만들어내는

이 끝없는 긴장과 호흡 속에서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살아 있는 한, 그들은 다시 만나고,

다시 싸우고, 다시 살아낼 것이다.


그리고 묻는다.

오늘 당신의 숲은 누구였고, 당신의 바다는 어디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