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으로 배우는 균형

by 노경문

여름의 끝자락, 9월 초의 공기는 여전히 눅눅했다. 아파트 단지 안을 한 바퀴 돌기만 해도 등이 땀으로 젖었다.

승원이는 보조바퀴를 뗀 14인치 자전거에 앉아 있었다.

두 눈은 커졌고, 핸들을 잡은 손끝과 패달에 올린 두 발은 잔뜩 긴장해 있었다. 입술을 꾹 깨물고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내 귓가에까지 들렸다.

나는 허리를 굽혀 한 손으로는 핸들을, 다른 손으로는 아이의 등을 잡았다. 자전거에 발이 걸리지 않게 옆으로 비켜 뛰며 함께 달렸다.


바퀴가 바닥의 보도블럭을 밟을 때마다 우두두두 소리가 나고, 단지 안 가로수의 그림자가 길게 흔들렸다. 축축한 여름 공기가 달리며 마른 입안 속으로 섞여 목구멍으로 들어왔다.

20분쯤 지나자 허리가 욱신거렸고,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 셔츠를 적셨다. 효율을 따지는 내 성격에 이쯤 되니 뒷목이 달아올랐다.
잡아주면 균형을 잡지 못한 채 한참 가다가 멈추고, 놓아주면 금세 넘어지고 울음이 터졌다.

“아빠, 절대 놓으면 안돼! 어~ 어~ 으악!”

숨이 가쁜 내 귀에 승원이의 목소리가 울렸다.

순간 아이의 눈동자가 흔들리며 나를 한 번 쳐다봤다.

잠시 망설였다.

그냥 넘어지게 둘까. 그래야 빨리 배울 텐데.

그러나 넘어지는 순간의 눈물과 상처를 감당해야 하는 건 결국 나였다.

부모라는 자리는 늘 그렇다.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잡아주면서도, 넘어질 순간을 대비해 손을 뻗어야 하는 자리.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세상 모든 일은 고통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헬스장에서 무게를 올릴 때, 근육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오히려 성장의 신호라는 것을 나는 배웠다. 사업을 일으키기 위해 잠을 줄였고, 마음에 드는 글을 쓰기 위해서도 수십 번 지우고 다시 써야 했다.

언제나 고통은 성장의 징표였다.

자전거를 잡아주는 이 시간은 내 고통과 아이의 고통이 겹쳐 있는 시간이다.

나는 허리와 다리가 아프고, 아이는 넘어질까 두렵다. 그러나 바로 이 과정을 통과해야만 승원이는 균형을 배운다. 그리고 안다. 언젠가 반드시 손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말한다. 자녀 교육의 궁극은 아이를 스스로 독립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그 말의 의미를 오늘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결국 나는 아이의 넘어짐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넘어지는 순간의 울음과 아픔을 함께 견디고 위로하면서.

그리고 언젠가, 다시 허리를 펴고 손을 놓는 순간이 올 것이다.
승원이가 스스로 페달을 밟아 바람을 가르고 달려 나가는 그 뒷모습을 보게 되면
오늘 흘린 땀과 고통의 이유를
그날 스친 바람과 함께
비로소 이해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