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다른 아이를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by 노경문

요즘 들어 승원이를 보면, 나와는 전혀 다른 결이 느껴진다.
나는 어릴 적, 부모님이 손을 놓기 무섭게 세상으로 달려 나가던 아이였다.
새로운 놀이터에 가면 그 공간을 정복하듯 돌아다녔고, 낯선 얼굴들과도 금세 어울렸다.

하지만 승원이는 다르다.
내가 권유하자 클라이밍 벽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반만 올라가 볼래.”
그 말에 작은 손이 떨리듯 첫 번째 돌을 붙잡았다.

처음엔 겁이 나서 이마가 찡그려지더니, 내려올 때는 볼이 붉게 달아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저릿했다.
두려움 속에도 웃음이 피어 있었고, 그것은 내가 잊고 살던 ‘천천히 용감한 얼굴’이었다.

오늘은 의왕 롯데 프리미엄 아울렛 안의 ‘바운싱’ 키즈카페에 갔다.
클라이밍, 수십 개의 트램펄린, 미끄럼틀, 썰매까지.

아이들의 작은 세상 같았다.

나는 여전히 ‘남자는 도전 속에서 자란다’는 말을 완전히 버리지 못했다.
하지만 승원이는 세상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는 먼저 멈춰 서서 공간의 냄새를 맡고, 소리를 듣는다.
어떤 길이 자신에게 맞는지, 잠시 숨을 고르며 판단한다.

나는 그 느림이 답답하면서도, 그 안에서 집중의 온도를 본다.
세상을 밀어붙이며 살아온 내가, 이제 기다림이라는 힘을 배우고 있다.

그곳에서 림보 게임이 열렸다.
아이들이 줄을 서서 통과할 때마다 스티커를 한 장씩 받았다.
스티커 네 장을 모으면 뽑기를 할 수 있었는데, 승원이는 세 장까지만 얻었다.

아쉽게 끝났지만, 그 세 장을 버리지 않았다.
주머니에 넣었다가 꺼내 보고, 손에 쥔 채로 만지작거렸다.
마치 ‘아직 다 끝나지 않았다’는 듯이.

한참 뒤, 림보 게임이 다시 열렸다.
승원이는 망설임 없이 줄을 섰다.
이번엔 네 번째 스티커를 손에 쥐고, 조심스레 뽑기 레버를 당겼다.

정말 작고 말랑한 피규어 하나가 나왔다.
누가 보면 흔하디 흔한, 보잘것없는 장난감이었지만
승원이는 그것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얘 이름은 쫌쫌이야.”
그의 눈빛은 작은 말랑이에 온기를 불어넣는 사람처럼 반짝였다.

나는 그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아이에게 성취란 크고 화려한 상이 아니라,
스스로 해냈다는 감정이 마음에 남는 일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버지로서 나는 여전히 자주 헷갈린다.
내 기준으로 보면 승원이는 겁이 많고, 망설이고, 조심스럽다.
하지만 마음을 낮추고 아이의 속도를 따라가면, 그 안엔 섬세한 결심이 있다.

용기는 무서움을 모르는 게 아니라,
무서움을 품은 채 앞으로 내딛는 발걸음이라는 걸
이 아이가 매일 보여준다.

아버지가 아이를 바르게 이끈다는 건,
내 길 위로 잡아끄는 일이 아니다.
아이의 발에 맞는 속도로 길을 함께 걸으며,
그 길이 너무 어둡지 않게 빛을 비추는 일이다.

빛이 너무 강하면 그림자가 짙어지고,
너무 약하면 발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는 그 중간쯤 어딘가에서,
손전등을 들고 천천히 걸어가면 된다.

밤이 깊어가고, 승원이는 돌아오는 차 안에서
‘쫌쫌이’를 손에 꼭 쥐고 잠들었다.

나는 그 곁에서 생각했다.
이 아이는 언젠가 나와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을 이길 것이다.
그날이 오면, 나는 미소 지을 것이다.

“그래, 그게 네 방식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