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는 읽지 않은 상태로 사흘째였다.
그 사이 나는 이미 약속을 세 번쯤 다시 정리했다. 날짜를 옮길지, 장소를 바꿀지, 아니면 내가 먼저 말을 꺼낼지.
답장이 오지 않는 동안에도 머릿속에서는 일정이 계속 수정됐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메시지는 그대로였고, 사흘 뒤에는 내가 먼저 그 대화를 지웠다. 지우는 데는 몇 초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전까지 흘려보낸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어릴 적 어머니는 “밥 한번 먹자”는 말을 쉽게 하지 않았다. 그 말을 꺼내는 순간, 이미 약속의 절반은 실행된 거라고 믿는 사람이었다. 전화를 끊고 나면 식당부터 찾았다. 비 오는 날이면 이동이 편한 곳을, 더운 날이면 에어컨이 잘 나오는 곳을 골랐다.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보며 자랐다. 말이란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던지는 게 아니라, 감당하는 것이라고.
지금도 나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이미 많은 걸 써버린다. 상대는 아직 결정하지 않았는데, 먼저 준비한다. 시간을 비워두고, 머릿속에서 여러 경우의 수를 돌린다. 그러다 아무 말 없이 사라지는 쪽은 늘 상대였고, 남아 있는 쪽은 언제나 나였다. 처음에는 화가 났고, 그다음에는 실망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냥 피곤해졌다.
한동안 나는 그런 피로를 숨기기 위해 더 많은 사람을 만났다. 연결을 늘리면 무뎌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연락처는 늘었고, 이름을 기억해야 할 사람도 많아졌다. 대신 생각할 시간은 줄어들었다. 대화는 많아졌지만, 끝나고 나면 남는 게 없었다. 집에 돌아와 조용해지면, 오히려 더 큰 공허가 밀려왔다.
어느 날 문득, 아무 약속도 없는 저녁이 생겼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책상 앞에 앉았다. 숫자를 정리하고, 메모를 다시 읽고, 흐름을 그려봤다. 그날 밤은 오래 잤다. 이상하게도 죄책감보다 안도감이 먼저 왔다. 그때 알았다. 내가 흉내 내려했던 방식은 끝내 내 것이 될 수 없다는 걸.
그 이후로 나는 말을 아끼기 시작했다. 대신, 말해야 할 순간에는 숨기지 않았다. 듣기 좋은 방향보다, 지금 위치를 먼저 말했다. 어떤 선택이 유리한 지보다, 어떤 선택이 틀어졌는지를 먼저 짚었다. 그 말들 때문에 멀어진 사람도 있었다. 고맙다는 말 대신 침묵을 남기고 떠난 사람도 있었다. 그때마다 관계는 줄었고, 설명할 기회도 사라졌다.
대신 남은 것들이 있다.
내 말을 전부 믿지는 않되, 자기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사람들. 한 번은 방향을 틀고, 한 번은 멈추고, 한 번은 아예 접었다. 결과가 늘 같지는 않았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선택의 책임을 나에게 넘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잘된 일도, 잘못된 일도 각자의 몫으로 가져갔다.
요즘 나는 먼저 다가가지 않는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도 않다. 제자리에 선다. 멀리서 보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분명히 보이는 위치. 그 자리에 서는 대가로 나는 몇 가지를 잃었다. 오해받을 기회, 가볍게 좋아 보일 가능성, 관계를 늘릴 수 있었던 선택들. 그 비용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나는 다시 조용한 쪽을 택한다. 속도는 느리고, 사람은 적다. 대신 방향을 자주 확인할 수 있다. 껍질 안으로 들어간다고 해서 세상과 단절되는 건 아니다. 다만, 아무 말이나 흘려보내지 않겠다는 선택에 가깝다.
달팽이는 빠르지 않다.
그래서 지나온 자리에 남긴 흔적을, 스스로도 끝까지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