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결혼생활에서 늘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다.
특히 두 명의 ‘리더’가 한 지붕 아래 사는 집안에서, 감정에 휘둘리지 않으려 애쓰는 것은 나만의 생존 전략이자 고도의 통제였다. 불필요한 충돌은 피하는 것이 성숙이라고 믿었다. 문제를 키우기보다는 넘기는 쪽을 택했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유지되는 평화가 있다고 여겼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모든 계산은 관계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 아니라
내가 나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연출이었다.
결혼은 생각보다 많은 장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별한 사건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저녁들,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되었을 이야기들, 말끝에서 삼킨 문장들이 쌓여 하나의 생활이 된다.
어느 날 밤, 미지근한 국을 떠먹던 식탁 위에서 공기가 조금 어긋난 적이 있었다. 아내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은 채 무언가를 기대한 눈빛으로 나를 봤고, 나는 그 눈빛을 정확히 읽고도 시계를 보며 모른 척했다.
피곤하다는 말로 방어벽을 세웠다. 리모컨을 쥔 채 아내의 시선이 닿지 않는 허공에 눈을 고정하며, 그녀가 던지려던 말을 공중에서 부서뜨렸다. 그 판단은 깔끔했고, 그래서 더 쉽게 선택됐다. 하지만 그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건 상황이 정리된 게 아니라, 내가 기어이 물러난 결과였다.
나는 합리적이라고 믿고 있었지만, 그게 편의였다. 갈등을 정리한 것이 아니라, 감당해야 할 몫을 조용히 피한 것. 상대의 마음을 배려했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나 자신의 불편을 철저히 보호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결혼생활은 서로의 책임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책임이 흐릿해지기 쉬운 자리다.
누가 먼저 잘못했는지보다, 누가 먼저 침묵했는지가 더 중요해지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종종 그 침묵을 선택했고, 그 선택들로 지금의 거리감을 내가 공들여 쌓아 올렸다는 것도 이제는 부인하기 어렵다.
현관에 놓인, 하루치의 고단함을 묻히고 돌아온 해진 구두를 보며 나는 내 할 일을 다 했다고 자위했다. 하지만 밖에서의 제구실이 안에서의 회피를 정당화해주지는 않았다.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한 발짝 뒤에 서 있었다. 적극적으로 상처를 주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마주하지도 않았다. 안전한 위치에서 상황을 관찰하며, 나름의 합리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 태도가 성숙인지 회피인지는 오랫동안 구분하지 못했다.
말하지 않았던 순간마다, 나는 관계의 키를 꺾어 아주 조금씩 방향을 틀었다. 그 미세한 변화는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더 쉽게 넘길 수 있었다. 나는 그 방향을 방치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외면한 사람에 더 가까웠다. 몰랐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순간을 기억하고 있다.
결혼생활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여전히 조심스럽다. 단정하고 싶지 않고, 누군가를 평가하고 싶지도 않다. 다만 분명한 건, 내가 합리적이라는 이름으로 선택했던 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가장 쉬운 길이었다는 점이다. 말하지 않아도 괜찮을 거라고, 지나가면 잊힐 거라고 생각하던 그 얼굴은 사실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방향을 정확히 알고 있었을 뿐이다.
오늘 저녁에도 우리는 어김없이 마주 앉는다. 국은 여전히 식어갈 것이고, 우리는 각자의 궤도를 돌 것이다. 다만 이제는 침묵이 결코 평화가 아니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식탁의 서늘한 무게를 온전히 견디며 서로를 응시하는 것. 그것이 내가 선택한, 피할 수 없는 정직한 형벌이자 유일한 구원임을 깨닫는다.
서로가 이 지독한 진리를 깨달은 순간, 거짓말처럼 평화가 찾아왔다. 더는 나를 연출하지 않아도 되고, 상대를 개조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그 폐허 같은 진실 위에서 비로소 진짜 행복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