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의 전략화

by 노경문

“나는 평생 성실히 일했어요. 영양사로 수십 년 일했고, 단 한 번 세금 한 푼 밀린 적 없어요. 그런데 나라에서는 나한테 십 원 한 푼도 안 줘요. 저 사람들은 줄 서서 구호품 받는데...”

아주머니는 골목 어귀 우연히 마주친 장면 앞에서 열변을 토해냈다. 그 말엔 분노와 오래된 체념이 섞여 있었다.

자꾸 떠오른다. 이 장면엔 지금 시대의 구조적 모순이 담겨 있었다.

우리는 "누가 피해자인가"를 먼저 묻는 사회에 살고 있다.

피해자는 보호받고, 약자는 존중받아야 하며, 차별은 시정되어야 한다.

문제는 그 명제가 면책의 논리로 확장될 때다.

강자에게는 책임을 요구하고, 약자에겐 그 책임을 유예하기 시작했다. 결국, 억울하다는 말이 더 큰 목소리를 얻게 되었고, 책임을 다하는 이들은 증발했다.

강자는 자격을, 약자는 억울함을 증명하면 된다.

실업급여는 원래 실직자의 생계와 재취업을 돕기 위한 제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가능한 한 오래 받는 쪽이 유리한 구조다.

세금은 낭비되고, 일하려는 사람과 고용주 사이엔 단절이 깊어진다.

또한 불법을 유인하는 제도가 되었다. 정규직을 피하고, 미신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보조금 수령자로 남기를 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용주도 구조에 편승하고, 양측은 제도를 훼손한다.

구직활동 캡처 몇 장이면 급여는 이어지고, 양심은 침묵하고 도덕은 사라진다.

나는 실업급여 제도가 재설계되어야 한다고 본다. 지금 상태라면 폐지가 오히려 낫다.

보호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삶의 동력을 약화시키며, 문제를 개인의 나약함으로 위장하게 만든다.

그리고 이 모든 건 포퓰리즘에 이용된다.

비슷한 모순은 군대나 경찰 채용에서도 나타난다.

여성도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것은 옳다.

하지만 체력 기준을 낮추고, 임무는 동일하게 하면서 책임은 다르게 설정된 순간 금이 가기 시작했다.

같은 복장, 같은 총, 같은 작전. 그러나 배려는 특정 집단에게만 주어진다.

이건 평등이 아닌 불균형이고, 조직의 신뢰를 무너뜨린다.

가장 책임감 있는 여성일수록 더 억울해진다.

최근 미군은 트럼프 정부의 결정으로 성별 체력 기준을 폐지했다. 남녀 동일 기준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급진적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엔 부작용이 따른다고 본다. 하지만 이번 조치의 반대 주장은 힘을 얻기 어렵다.

평등을 말하려면, 책임도 함께 말해야 한다는 걸 모두가 체감하고 있다.

지금 사회는 책임보다 억울함이 더 강한 무기가 된 시대다. 피해를 증명하면, 책임은 면제되고, 동정은 독점된다.

그러나 피해는 자산이 아니다.
자산이 되는 순간, 그것은 타인을 조종하는 수단이 되고, 제도의 헛점은 전략이 된다.

우리는 약자를 돕고자 했지만,
이제는 약자임을 증명하려는 체계를 만들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이 문제에 뾰족한 대안이 없다. 실업급여는 폐지되어야 하고, 군대 기준도 상식선에서 바로잡아야 한다고 본다.

누군가는 말한다. 보호는 필요하지 않느냐고.
나는 되묻고 싶다. 책임 없는 보호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느냐고.

우리가 잃어버린 건 제도보다 책임이 존중받던 시대의 공기다.

예전엔 지각에도 얼굴이 붉어졌고, 개근상 하나에도 자부심이 있었다. 실수를 인정하면 신뢰가 쌓였고, 도움엔 미안함이 먼저였다. 그리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이 가장 당당했다.

그건 이상적인 시절이 아니라, 부끄러움과 존중이 공존했던 상식의 분위기였다.

우리는 자유를 요구하면서도 책임은 회피하고, 평등을 말하면서도 기준은 자신에게만 유리하게 맞추길 원한다.

이는 권리는 배웠지만 의무는 가르치지 않은 사회가 만든 결과다.

피해는 손쉬운 권력이 되었고, 전략이 되었다.
제도는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계됐지만, 이젠 그 성격 자체가 자격이 되는 방식이다.
제도는 정교해졌지만 기준은 흐려졌고, 도움은 권리가 되었으며, 책임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다.

우리가 되살려야 하는 건 제도가 아니라, 신뢰와 부끄러움이 함께 작동하던 감각이다.

그것 없이는, 무슨 기준을 다시 세워도 제도는 또다시 전략이 될 뿐이다.

보호는 필요하다. 그러나 책임 없는 보호는 공동체를 병들게 한다.

약자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누가 약자인가를 묻기보다 누가 책임을 지고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정직했던 아주머니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그분은 억울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아무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 말이야말로,
이 시대 진짜 약자의 유일한 증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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