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이상하게도, 스타일에 눈이 간다.
미용실에서 울프컷을 하던 날, 와이프가 물었다.
“왜 자꾸 나이에 안 맞는 머리나 옷을 하려고 해?”
그냥 하고 싶었을 뿐인데, 정확한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문득, 아들과 비슷한 머리를 맞추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기억이 소환된다.
2001년, 중학교 1학년.
주안역 앞 '토모토모'라는 미용실은 내가 처음으로 고객 대우를 받았던 곳이었다.
버스를 타고 20분은 가야 했고,
한 달치 용돈을 모아야 겨우 한 번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곳 디자이너는 숯가위를 이용해
머리카락을 한 올 한 올 뽑아내듯 잘랐다.
지금 생각하면 꽤 아팠지만,
그 고통조차 멋있어지기 위한 통과의례처럼 느껴졌다.
그 시절엔 잘생기고 싶다는 욕망이 분명 내 안에 있었다.
누군가의 눈에 띄고 싶고, 멋있어 보이고 싶은 감정.
내 자존감은 완성되지 않았고
그 결핍을 외모와 옷차림으로 채우려 했다.
멋있게 보이면 여러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았고,
그 인정이 곧 나를 증명해줄 것 같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그 감정은 점점 줄어들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 안의 우선순위가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절제도 가능해졌고, 무엇보다
외모로 인정받아야 할 이유가 예전보다 많지 않다고 여겼다.
어쩌면 ‘남자가 그런 데 관심 가지면 유치하다’는
내적 편견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늘 궁핍했던 건 아니지만
그 시절엔 항상 욕망보다 호주머니 사정이 부족했다.
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고,
욕망을 조절할 수 있는 절제도 조금은 갖추게 됐다.
얼마 전, 형이 피부미용 병원을 개원했다.
얼굴에 간단한 시술을 받고 거울을 보는데,
낯설게도 반가운 감정이 올라왔다.
“음… 생각보다 괜찮은데?”
그 말이 정말 오래간만에 마음속에서 흘러나왔다.
그 순간, 예전의 내가 잠깐 돌아왔다.
곧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멋있어지고 싶어한다.
다만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다.
예전엔 누군가의 눈에 괜찮아 보이고 싶었다면,
지금은 내 눈에 괜찮은 내가 되고 싶다.
나는 이제 아버지고,
예전보다 무뎌진 얼굴과 어깨로 살아간다.
하지만 아들과 비슷한 머리스타일을 하고 거울을 볼 때,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조용히 마주 앉아 고개를 끄덕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건 꽤 좋은 감정이었다.
내가 다시 외모에 신경을 쓰는 건
젊음을 되돌리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답게 있고 싶어서다.
잊히지 않고 싶고,
아들에게 멋진 아빠로 남고 싶고,
내가 나를 보며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다.
그 감정을 어쩌면 허영이 아니라
현재의 책임감이라 부르고 싶다.
그리고 그 책임감은, 나를 다시 거울 앞에 세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