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판의 주인인가

by 노경문

2025년 4월.
미국은 수입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강제 부과한다.

한국의 대표 SUV 펠리세이드 역시 이 영향권 안에 있다. 미국 현지 소비자가 체감하게 될 차량 가격은 이제 원화로 9천만원 쯤 된다고 한다.

언론은 말한다.

“미국 소비자들이 관세로 인한 물가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많은 이들이 “트럼프는 미쳤다.”라고 반응한다.

그런데, 진짜 피해자는 누구일까?

우리는 이 장면을 다시 읽어야 한다.

나는 묻고싶다.

"미국인이 불쌍한가, 아니면 강대국의 질서 설계에 휘둘리는 자가 불쌍한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단순히 상대국을 압박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 내 일자리와 생산기지를 되찾아오기 위한 판짜기,

즉 '전략적 인플레이션'이다.

가격이 일부러 오르도록 유도하고,

그 불편을 감수할 만한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동시에 제공하며,

결국 세계적 기업들이 미국 내 생산으로 방향을 틀게 만든다.

트럼프는 처음부터 계산하고 있었다.

'차라리 미국 땅에서 만들게 하자.
그래서 일자리를 만들고, 제조업을 다시 불러들이자.'

물가는 당장은 오른다.
하지만 고용이 살아나고, 공급망이 미국 중심으로 재편되면 장기적 이득은 미국 몫이다.

이것이 전략적 인플레이션이다.
불편을 설계하고, 통제하며, 장기 목표를 실현해가는 방식.

트럼프의 핵심 지지층은
제조업 붕괴로 일자리를 잃은 중산층 이하 백인 노동자들이다.


러스트벨트,

과거 산업의 중심지였지만 지금은 쇠락한 도시들.
그들은 중국산 제품과 글로벌화로 인해 직장을 잃었고,
절망 속에서 트럼프를 선택했다.

트럼프는 약속했다.
"당신들의 일자리를 되찾아오겠다."
그리고 지금 그 약속을 관세와 인플레이션을 통해 빠르게 실행하고 있다.

결국 이 모든 정책은

'트럼프스러운 방식'으로 '내 편'을 위한 재편이자,
정치적 충성 기반을 다지는 전략이기도 하다.

대한민국은 이 그림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현대그룹은 미국에 공장을 더 짓는다.
국내 고용은 줄어들고, 산업 생태계는 약화된다.
정부는 반도체법과 IRA에 대응하느라 뒤따라가기 바쁘다.

우리는 이 질서를 설계한 적이 한번도 없다.
누군가 설계한 질서 안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정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왜 전략적 인플레이션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그 본질을 국민에게 설명하지 않는가?

왜 정치와 제도는 여전히 느리고, 기업은 규제에 발이 묶여 있는가?

이 모든 질문의 핵심에는 '설계의 주도권'이 있다.

미국은 비싸진 펠리세이드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괜찮아, 어차피 우리 안에서 만들게 될 테니까."

진짜로 우려해야 할 건,
판을 짜지도 못하면서 늘 남의 판에 줄서야 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아닐까.

트럼프의 정책을 단순히 미쳤다고 치부하는 건 쉽다.
허나, 그가 만든 불편은 계산된 것이다.

계산된 불편은 전략이다.

이제는 그 전략을 읽을 차례다.
그리고 스스로 판을 설계할 시간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첫째, 정쟁이 아닌 정치적 통합을 통해 국가 전략에 힘을 실어야 한다.


둘째, 기업이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규제를 과감히 정비하고 속도를 맞춰야 한다.


셋째, 전략 산업과 글로벌 대응 기업에는 파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외교는 감정이 아닌 실리로 운영되어야 한다.

남의 질서에 대응하는 나라에서,

이제는 스스로 질서를 제안하는 나라로.

공급망을 주도하고, 기술을 선도하며,

산업의 중심에 설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더는 누군가 설계한 길을 걷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가 질서를 만들고, 다른 나라가 따라오게 해야 한다.

그런데 과연... 가능할까.

늘 누군가를 뒤따라가며 적응하는데 익숙한 이 시스템 속에서,

스스로 판을 바꾸자고

말할 용기와 여유는 과연 남아 있을까.

전략은 이미 시작됐다.
우리는 여전히,

누군가의 설계 안에서 헤매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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