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처제에게 전화가 왔다.
뉴발란스에서 인기 키즈 신발 재고가 리오픈된다는 소식이었다.
오픈런으로도 구하기 어려운 모델이라며,
한 명당 한 켤레밖에 구매할 수 없다고 했다.
TV에 나온 연예인이 자식의 신발을 사기 위해
매장 앞에 줄을 서서 겨우 구했다는 이야기가
입소문을 타고, 바이럴이 되었다.
아내와 나는 각자의 핸드폰에 뉴발란스 전용 앱을 설치하고,
곧바로 회원가입까지 마쳤다.
단 1분 만에 품절된다고 해서,
신용카드도 미리 등록했다.
우리는 어느새 이 전투에 뛰어든 셈이었다.
그리고 오전 10시.
접속은 먹통.
대기번호 390번.
숫자가 줄어들수록 희망도 부풀었지만,
결국 또 오류. 새로고침. 또 대기. 또 오류.
짜증이 밀려왔다.
나는 늘 일정기간 생각하고 판단해 결정하는 편이다.
그 구조가 일상에서 흐트러질 때면,
불편과 스트레스를 크게 느낀다.
물건을 살 때도 충동구매는 드물다.
그런데 지금, 무엇에 끌려다니고 있는 걸까?
코로나 이후, 이런 방식은 더 정교해졌다.
이젠 예약하지 않으면 접근조차 어렵다.
샤넬은 백화점에 들어가려면 줄을 서야 하고,
들어가도 원하는 제품을 만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에르메스는 신분증을 확인하며,
누적 구매 이력이 없으면 인기 제품은 아예 보여주지도 않는다.
내부적으로 고객을 등급화한 시스템이 작동한다.
롤렉스는 매장에 가도 시계를 살 수 없다.
구경은 가능하지만,
구매를 위한 방문은 매달 말일,
온라인 예약을 통해서만 이뤄진다.
이제 매장은 쇼룸일 뿐이다.
이 방식은 처음엔 소수의 고급 브랜드에서만 시행됐지만,
지금은 중저가 브랜드부터 유명 맛집까지
모조리 따라 하기 시작했다.
희소성은 원래 공급보다 수요가 많을 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법이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인위적으로 설계된 불편을 견뎌낸 사람만이
가치를 얻는 구조.
소비자에게는 ‘누림의 기쁨’이 아닌,
‘피로를 감수해야 얻을 수 있는 만족’을 판다.
나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인기 있는 제품은 당연히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희소성을,
브랜드가 설계한 놀이판 안에 가두고,
불편함과 갈증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낸다.
시스템은 치밀하게 설계돼 있다.
그들은 소비자에게
‘선택’이 아닌 ‘반사적인 반응’을 유도한다.
“놓치면 안 돼”라는 조급함,
“남들은 가졌는데 나는 못 가졌다”는 결핍감,
그 심리를 마케팅의 도구로 쓴다.
이건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다.
심리 조작에 가깝고,
소비자의 자율성을 침식시키는 구조다.
사유와 비교, 선택이라는 인간의 기본권이 무뎌질 때,
우리는 소비자가 아닌 참가자가 된다.
이미 누군가 설계해 놓은 게임 안의 플레이어로.
그리고 그에 따른 부작용은 분명하다.
되팔이.
프리미엄을 붙여 되파는 사람들.
사재기.
그리고 나처럼,
한순간 휘둘렸다가 뒤늦게 정신이 드는 사람들.
이건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다.
의도된 혼란이고,
자각을 마비시키는 구조다.
사유는 멈추고,
반응만 남는다.
나는 오늘 한 가지 작은 다짐을 했다.
감정의 낭비, 시간의 낭비, 돈의 낭비를 멈추겠다.
유행을 좇는 소비,
바이럴에 편승한 브랜드,
그 문화의 추종자가 되지 않겠다.
끓던 물은 결국 식는다.
겨울 바깥에 내놓은 주전자처럼,
바이럴도 금세 식는다.
진짜 고급은 기다림이 아니라,
불필요한 증명을 요구하지 않는다.
사람들도 언젠가는 멈춰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왜 이걸 원했는가?”
더 이상 끌려가지 않기로 했다.
세상이 던진 미끼에 반사적으로 반응하는 대신,
멈춰 서서 묻는 사람.
그런 내가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