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는 정의가 아니라 힘으로 움직인다.”
위대한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겐소의 말처럼,
국제관계의 본질은 힘의 논리다.
선과 악, 정의와 불의는 아름답지만, 현실에선 기준이 되지 않는다.
국가는 감정을 갖지 않는다.
오직 자국의 생존과 이익을 따를 뿐이다.
외교는 타협이 아니라 생존의 기술이다.
강대국은 힘을 휘두르고,
약한 나라는 때로 그 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는 오랜 역사와 전쟁,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국제 질서가 말해준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서방과 협력하려다 2014년 크림반도 병합, 2022년 전면 침공을 겪었다.
국제법과 조약이 있었지만, 강대국의 이익 앞에 무력했다.
미국과 유럽은 무기를 줬지만, 대신 싸워주진 않았다.
결국 자유를 향한 열망은 너무 큰 대가를 치르게 했다.
대만은 줄타기 외교로 생존을 모색해왔다.
중국과 경제적으로 밀접하고, 안보는 미국에 의존한다. 그러나 미중 갈등이 격화되며 이제 “입장을 명확히 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최근 TSMC가 중국으로의 우회 납품으로 미국 상무부로부터 벌금을 통보받은 사건은 그 줄타기의 한계를 보여준다. 미국은 안보와 기술 우위를 지키기 위해 동맹 기업에게도 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줬다.
북한은 가장 극단적인 현실주의 모델이다.
미국이나 중국에 의존하지 않고, 핵을 보유하며 자력갱생을 외친다.
억지력으로 체제는 지켰지만, 국제 고립과 인권 탄압이라는 대가를 치렀다. 살 수는 있어도 사람답게 살기 어려운 곳이다.
이란도 자립을 택했다.
미국과 맺은 핵합의가 일방적으로 파기되자, 독자 노선으로 돌아섰다.
석유와 지정학, 종교적 단합이라는 무기로 버티고 있지만, 국민은 고물가와 제한된 자유 속에 불편을 감내해야 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떤 길을 택해야 할까?
한반도는 수많은 침략을 겪어온 땅이다.
고려는 거란과 몽골, 조선은 명과 청 사이에서 생존했고, 20세기엔 일본에 병합되었다. 해방 후엔 미국과 소련의 분할 속에 전쟁을 치렀다.
우리는 단 한 번도 강대국의 질서 밖에 있었던 적이 없다.
지금 한국은 다시 세계 갈등의 중심에 있다.
미중 무역전쟁은 관세를 넘은 기술·군사·외교·문화의 총체적 충돌이다.
우리는 반도체, 배터리 등 공급망 핵심에 있으나,
최대 수출국은 중국이고,안보는 미국에 의존한다.
세계가 양분되는 구조의 중심에 서 있지만, 누구에게도 완전히 기대기 어려운 ‘고립된 섬’ 같은 상태다.
이 선택은 현실적 계산이기도 하지만,
결국 ‘가치’의 문제다.
오늘날 전쟁은 총과 탱크가 아니라 반도체, AI, 배터리, 데이터로 벌어진다.
이를 '기술 지정학'이라 부른다.
그리고 이 기술을 가진 주체는 반드시 국가가 아닐 수도 있다.
초국적 기업들이 외교·안보·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 지정학’의 시대가 왔다.
대만의 TSMC는 웬만한 국가보다 큰 전략적 가치를 지녔다.
삼성전자, 하이닉스, 현대차 같은 기업들도 이제는 한국의 생존 축이다.
국가는 더 이상 기업을 보호하는 수준을 넘어, 그들이 세계에서 기술과 시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한국은 더 깊이 미국 주도의 기술·법치·시장 질서에 편입되어야 한다.
그곳만이 기술 주권을 실현할 수 있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자본과 기술, 생각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어야만 우리 기업들이 살아남고, 대한민국도 지탱된다.
이제는 군대가 아닌, 기업과 기술, 정보가 국경을 지키는 시대다.
기술 지정학과 기업 지정학이 맞물린 이 시점에 우리는 단순히 ‘어느 나라의 편’이 아니라,
‘어떤 문명과 생태계’를 선택할지 고민해야 한다.
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가장 소중한 가치로 여긴다.
표현의 자유, 재산권, 법 앞의 평등, 권력에 대한 견제, 언론의 자유와 민주주의.
이 모든 것이 내가 지키고 싶은 삶의 기준이며,
지난 100년간 자유주의 진영이 어렵게 지켜온 체계다.
물론 미국도 완벽하진 않다.
때로 피로하고, 자기 이익을 앞세운다.
하지만 그들은 제도를 통해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는 나라다.
대통령이 누구든, 시민의 권리는 침해당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권력을 견제하고, 국민이 감시한다.
이런 제도를 가진 나라만이 진짜 선진국이며, 인간다운 삶을 지킬 수 있다.
우리는 이제, 어느 편에 설지를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와 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단지 현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지키고 싶은 삶의 방식에 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