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의 기술, 그 이후

동경에서 두려움까지, 내가 본 트럼프의 진짜 얼굴

by 노경문

나는 트럼프를 동경했었다.

그의 책 '거래의 기술'을 읽으며,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말이 아니라 조건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낡은 뉴욕 아파트에서 부랑자 같은 세입자들과 협상하며 건물을 되살리는 그의 이야기는, 멋지고도 현실적이었다.

그가 과거 트위터에 남긴 한 문장은 그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한다.

“나는 거래를 즐기고, 또 아주 잘합니다. 가능한 한 큰 거래를 선호하죠. 그게 내가 하는 일이고, 나는 그 일에 능합니다. 타이거 우즈가 골프의 신이라면, 나는 거래의 신입니다.”

말뿐인 인물은 아니었다.
타이밍과 심리를 읽고, 낡은 건물 안에서도 승부의 판을 짤 줄 아는 사람. 나는 그의 방식에 감탄했고, 어딘가 외롭고도 강한 그 사람을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를 무서워하고 있다.

다시 백악관 테이블에 앉았을 때,

그의 눈엔 신념도, 우정도 없었다.
오직 시간, 지렛대, 정보만 있었다.

그는 동맹을 신뢰가 아닌 서비스로 봤고, 협상은 평화를 위한 장치가 아니라 지배의 수단이 되었다.

한때는 존경이 앞섰다.
하지만 지금은, 그의 방식이 사람들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선명히 보인다.
그리고 그가 상대하는 것이 이제는 '개인'이 아니라 '국가'라는 사실이, 문득 두려워졌다.

지금도 그의 본질이 완전히 바뀌었다고는 보지 않는다.
이해관계에 충실하고, 인간의 사정과 감정을 읽을 줄 아는 사람.
그게 트럼프의 초창기 정치와 1기 재임기의 핵심이었다.

그는 쇼맨이었지만,

동시에 상대의 약점을 감지하고 조율할 줄 아는 전략가였다.
감정에 매몰되지 않았고, 냉정하게 정세를 읽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2016년 대선 이전, 그리고 대통령 1기 상당 기간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그가 어느 순간 달라졌다고 느꼈다. 그 변화는 단지 권력의 무게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치에 들어선 이후, 그는 끊임없는 공격을 받았다.
언론은 그의 말끝을 물어뜯었고, 민주당은 그를 고립시켰으며, 내부에는 언제든 등을 돌릴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다.
그렇게 그는 점점 사람을 믿지 않는 법을 배웠고,

결국엔 신념이라는 무기로 자신을 무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2024년 암살 시도는 그 믿음에 마지막 확신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날 이후, 그는 더 이상 문을 열지 않았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내보이지 않는 채, 방 안의 설계도만 다시 펼쳤다.

이제 그는, 단지 세상을 다시 짜려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세계를 다시 설계하려는 사람처럼 보인다.

더 이상 냉정한 조율자는 아니었다.
말은 단호해졌고, 행동은 직선적으로 바뀌었으며,

무엇보다 ‘신념’이 언어와 표정에 배어들기 시작했다.
마치 오래된 철문이 덜컥 소리를 내며 닫히듯, 그의 말에는 이제 부드러운 여백이 사라지고 있었다.

단순히 협상을 잘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새로운 세계의 틀을 짜려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2기 당선 이후 지금까지, 그의 행보는 그 생각을 행동으로 빠르게 옮기고 있다.

‘위대한 미국의 복귀’는 단지 일자리나 성장률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힘의 질서로의 회귀,

승자와 패자를 명확히 가르는 세계,

외교는 계산이고, 모든 셈에는 승자만이 존재한다는 사고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미치광이, 실수투성이, 혹은 이기적인 독재자로 치부한다. 그러나 그 단순화된 설명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핵심이다.

트럼프는 감정적이지 않다.

오히려 그는 감정을 넘어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이다.
말은 거칠 수 있지만, 그 언어 뒤에는 항상 흐름을 장악하려는 계산이 있다.
실수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실수를 던져 여론의 방향을 시험하는 기획자다.

그를 단순한 파괴자로 보는 순간, 우리는 그가 권력의 구조 자체를 재구성하려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놓치게 된다.

그 변화는 2025년 4월,
베센트 미국 재무장관의 입을 통해, 처음으로 구체적인 현실로 드러났다. 그는 한국과의 경제 협상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한국이 협상 테이블에 적극적으로 나와 신속히 합의를 마무리하고, 이를 성과로 삼아 본국 선거에 활용하려는 의지가 매우 강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처음엔 단순한 외교적 언급으로 들렸지만,
곱씹어보니 그것은 상대 정부의 정당성을 통째로 박탈하는 선언이었고,
더 나아가 다음 협상판을 미국이 원하는 조건으로 짜겠다는 신호였다.

그 순간은 전환점이었다.
트럼프의 변화는 어조나 스타일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이제 상대방을 바꾸는 협상을, 질서를 다시 설계하는 방식으로 실행하고 있었다.

지금의 한국 정부는 과도기적 권한대행 체제 아래에서 어떤 성과라도 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그것조차 다음 정권의 족쇄로 만들기 위해, 노골적으로 공개 압박에 나서고 있다.

이것이 트럼프식 협상의 완성형이다.

지금은 불리한 상대를 최대한 활용하고,
다음 정부엔 제약을 남긴다.

그는 약속 없이 판을 짜며, 모든 흐름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든다.

그에게 협상이란 이기는 것뿐만이 아니다.
구조를 새로 짜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그가 그리는 이 판 위에는 신뢰도, 우정도, 원칙도 없다.

오직 시간, 정보, 힘만이 움직인다.

그 정교함에 감탄은 여전하다.
하지만 기대는 접었다.
그 기대는 함께 미래를 설계하길 바라는 마음이었지만, 지금 그는 오직 자기 방식의 세계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그는 스스로의 신화를 다시 쓰고 있다. 이제 그는 왕도, 쇼맨도 아니다.
마스터 플래너, 방향을 고르는 자, 이 시대의 질서를 다시 그리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은 어디쯤 앉아 있어야 할까.
누군가의 그림자 속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입장을 들고, 온전히 우리의 자리를 지켜낼 것인가.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