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다
오랫동안 스스로를 생각하는 사람이라 여겨왔다.
쉽게 단정하지 않고,
판단을 유예하되 회피하지 않는 태도는 일상 깊숙이 스며 있었다.
누군가를 섣불리 옳다거나 그르다 말하지 않으려 했고,
그 사람이 처한 구조와 맥락을 이해하려 애썼다.
질문은 날카로운 칼이 아니라,
조심스레 다가서는 발걸음이었다.
나에게 중요한 건 무엇이 맞느냐보다,
어떻게 거기에 이르렀느냐였다.
그래서 자주 스스로를 흔들었다.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 안에 머물며
자신을 해체하고 다시 조립했다.
흔들림은 불안이 아니라,
진실에 가까워지는 움직임이었다.
#낯선 동경
한동안 깊은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모든 면에서 나와 대조적인 존재였다.
사유보다 본능,
조율보다 선언,
질문보다 주장.
말과 행동은 늘 과했고,
타인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는 뻔뻔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런데도 경외에 가까운 감정을 품었다.
나는
언어를 가설처럼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확신하기보다 열어두었고,
밀어붙이기보다 일단 삼켰다.
그래서였을까.
고립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태도와 고집은
낯설고도 강렬하게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가 가진 '일관성'에 주목했다.
말로는 거짓을 섞더라도,
그 신념 안에는 분명한 논리와 구조가 있었다.
그것이 옳든 그르든,
끝까지 밀어붙이는 힘이 있었다.
"말은 흔들려도, 믿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 태도는 시간이 지나도 떠오르곤 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
생각해보면,
나는 오래전부터
자신과 다른 방식으로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사람을 원했던 것 같다.
대화를 통해 더 깊어지고 싶었지만,
많은 이들은 나의 집요함을 피로해했다.
이기고 싶었던 게 아니라,
더 알고 싶었던 것뿐인데.
하지만 상대는 논쟁으로 받아들였다.
트럼프는 달랐다.
이해하지는 않았지만,
도망치지도 않았다.
방식은 거칠고,
때로는 과도한 폭력처럼 느껴졌지만,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거울 속 모습과의 조우
이제는 안다.
그를 동경했던 건 정치적 메시지 때문도,
판단이 옳았기 때문도 아니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와 부딪히며 거칠게 살아낸 사람에게서,
나는 내 안의 어떤 결핍을 본 것이다.
나는 여전히 흔들린다.
조심스럽고,
질문을 품고,
생각이 생각을 밀어내는 방식으로 살아간다.
다르지만,
이제는 그 다름을 낯설게 여기지 않는다.
트럼프는 나의 반대편에 서 있었지만,
동시에 멀리서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그 거울을 통해
나는 내 모습을 더 정확하게 본다.
그리고 그 다름을 통해
스스로의 자리를 더 선명히 다진다.
#흔들리며 버티는 나의 자리
여전히 흔들린다.
트럼프처럼 선을 굵게 긋지는 못하지만,
나 역시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견디고 살아간다.
완강함이 아니어도,
조심스러운 걸음으로도,
충분히 끝까지 남을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
그것은 거칠게 버티는 것도,
묵묵히 서 있는 것도 아닌,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내 방식으로 세계와 부딪히고,
내 방식으로 끝까지 살아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