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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Jun 23. 2020

[독서기록] 스타트업자의 일

김상천의 <스타트업 하고 앉아있네>를 읽고


잠깐 스타트업에 다녔다. 이전에도 중소기업에서 일했지만 '스타트업'에서 일한다는 건, 또 다른 영역의 업무였다. 업무 자율권이 주어진다는 건 그만큼의 책임도 따른다는 것이었고, 자유도가 높은 것은 대표도 많은 것을 모른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스타트업 하고 앉아있네>를 집어든 것은 내가 스타트업에 적응하지 못한 것인지, 그 스타트업 대표가 경영을 잘 못한 것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정답은 둘 다였다. 나는 스타트업의 생계를 잘 이해하지 못하고 들어갔고, 대표도 계획적인 운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스타트업을 경영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지식을 최소한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실천은 다음 문제다). 그리고 스타트업에 들어가려는 사람이라면, 자유로운 회사를 다니는 만큼 자유를 뺏겨야 한다는 걸 꼭 인지해야만 한다. 이 두 가지를 이 책을 읽으면서 깨달았다.


디자인적 면모를 볼 때는, 내용에 비해 가벼운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은 정보성이 짙은 부분들도 있는데, 다소 귀여워 보이는 글꼴과 인포그래픽 디자인을 차용함으로 내용이 가벼워 보이는 불이익이 생긴 것 같다. 접하기 쉽게 하기 위함인지도 모르겠지만, 정보의 신뢰성이 조금 떨어진다는 느낌을 디자인이 더해 주는 것 같았다.

뒤표지 카피에는 '가장 완벽한 스타트업 운영 안내서'라고 적혀 있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기본서보다 교양서에 가까웠다. 카피를 책을 다 읽고 나서야 보았는데, 내용과 착 맞는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야 할 '교양서' 정도였다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먼저 썼지만, 스타트업을 짧게라도 경험해 봤던 사람이라면 공감할 만한 이야기가 많았다. 업무 프로세스를 짜는 것에 대해서는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회사 사람들이 왜 힘들어하고 나가는지 모르는 윗사람들도 읽으면 좋을 것 같다. 특히 외주 부분에 대한 설명이 그러했다.


권도균 선생님은 "외주의 첫 번째 목적은 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했지만, 우리는 첫 번째 목적을 '공부'로 설정했다. 우리에게 공부가 될 프로젝트만 선별해서 받기로 했다.

제품 완성도를 위해 "개발자 한 명당 1.5개 이상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잡지 않도록 한다"는 '1.5 원칙'을 사내 규정으로 두고 이를 지키기 위해 새로운 의뢰가 들어와도 대부분 거절했다.


어딘가의 수주를 받을 때, 이 원칙을 지키는 회사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수익'이 된다면 얼마든지, 지금이 아니면 언제 일이 들어올지 모르니 '되는 대로' 외주를 받는 회사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 나도 있었다. 회사의 운영을 위해 '1.5개'는 어려울지 몰라도, 들어오는 일마다 내게 올 것임을 알게 되면 일은 기쁨이 아니라 공포가 된다. 그러면 자연스레 "일하기 싫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연스레 업무 집중도는 떨어지는 것 같다. 회사의 팀장급 인력들이 이런 프로세스를 이해해주었으면 좋겠다. 왜 사람들이 일이 힘들다며 회사를 떠나는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의욕적이더니… 지금은…"이라고 말하기 전에, 직원들을 얼마나 몰아세웠는지도 자평해 봤으면 좋겠다.


마케팅에 관련된 이야기도 공감이 많이 되었다. 


스타트업의 일에서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모든 스타트업은 다 다르고 각자 필요한 일도 다 다르다. 마케팅도 그렇다. 사람들이 네이버 블로그를 운영한다고, 경쟁사가 페이스북 타깃광고를 한다고 나도 해야 하는 건 아니다. 내가 잘 하는 걸 하는 게 더 좋다. 


따로 마케터가 없어서, PM(Project Manager)들이 각 프로젝트를 직접 홍보해야만 했다. 반드시 해야만 하는 건 아니었으나, 내 프로젝트의 성공을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타깃도, 성격도 규정짓지 않고 시작한 홍보는 효과가 얼마나 있었는지, 얼마의 예산이 필요한지도 모른 채 진행되다가 종료되었다. 이런 부분을 읽고 나서, 조금 더 계획적으로 했으면 덜 힘들었을 것 같다.


연재 게시물을 올리는 일을 했었는데, 계획을 세우지 않고 일단 올리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힘들었던 적도 많았다. 자투리 시간을 애용하라고 했지만, 한동안 이걸 만드는 데에 별도의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마케터로의 역량이 부족했던 직원이었다.

그럼에도 SNS에서 댓글을 달며 돌아다녔더니, 몇몇 SNS 친구들이 내가 회사의 '마케터'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다른 직무로 들어와서 마케터냐는 말을 들어서, 그때는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니, 충격받지 말고 조금 더 공부하고 일했으면 나도 편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럴 때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만큼, 이 책은 스타트업의 마케팅 방법에 대해 정리를 잘해 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다 보니 스타트업 마케터가 되었다면, <스타트업 하고 앉아있네>를 적극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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