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버스데이 걸>을 읽고
오랜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을 하나 읽고 싶었다. 장서 목록 중에 <버스데이 걸>이 있었다. 서점에서 눈을 사로잡았던 그 표지에 끌려 이번에 빌릴 책 중 하나로 <버스데이 걸>을 택했다. 책이 얇은 줄은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얇은지는 몰라서 조금 놀랐다. 두 번째로 놀랐던 점은 카트 멘시크의 일러스트였는데, 사실 나는 이 책에 그림이 실려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짧은 이야기지만, 기억에 또렷이 남는 문장이 있다.
인간이란 어떤 것을 원하든, 어디까지 가든,
자신 이외의 존재는 될 수 없는 것이구나, 라는 것.
이야기는 짧지만, 이 책은 이 한 문장으로 가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게는 그렇게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자신감이 낮은 편이고, 남을 많이 부러워만 했었다. 그런데 어차피 나는 남이 될 수 없으니, 늘 허기짐을 느꼈다. 이 문장은 내게 그렇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남을 쳐다보지 말고 나에게 집중해서, 좀 더 나은 '나'를 만들며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자신 이외의 존재가 될 수 없다'는 부분이 가장 와닿았다. 내가 운동을 해서 좀 더 건강해진다 해서 타인이 되진 않을 것이다. 조금 더 건강한 내가 될 뿐이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스무 살의 선물로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이야기에도 꽤 소박한 소원을 빌었던 모양인지, 소원을 말하라고 한 사람이 그녀에게 그 나이대치고 작은 걸 원한다고 말한다. 그때, 주인공이 미인이 된다 해도 미인이 된 나를 감당할 자신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을 한다. 패기가 없다고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이 모습이 주인공이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으로 보였다. '나'라는 사람에 살을 붙이고 싶은 것이지, '남'이 되고 싶지 않다는 건 자신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느껴졌다. 이런 자신에 대한 애정을 닮아봐야지 생각했다.
얇은 편인데도 양장으로 제작되어 신기했는데, 판형을 조금 달리하여 동화책 같은 느낌을 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검색을 해보니 양에 비해 가격대가 높다는 평가들이 꽤 있었고, 나는 여러 저작권사와 엮여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추측만 해보았다. 개인적으로는 내용이 짧으니, 좀 더 작고 귀여운 판형으로 갔으면 독자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