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의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을 읽고
대학생일 시절, 주변에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5명 중 3명은 준비해 봤다 할 정도로 공무원 준비생들이 많았다. 짧게는 1년, 길게는 5년을 공무원 시험에 바친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을 보면서 가장 궁금했던 게 있다.
저렇게 오래 준비했는데,
공무원이 적성에 안 맞으면 어쩌지?
이 의문은 취업이 어려운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할지라도 나는 할 수 없겠다는 길로 들어서게 한 문장이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는 '하고 싶은 업무'가 뚜렷했던 사람인지라, 일단 시험 준비를 돌입한 친구들이 신기하기도 했고 걱정되기도 했다. 공무원이 된 지인들은 지방으로 발령 난 경우가 많아서, 졸업 이후 거의 보지 못한다. 그래서 이 의문에 대한 답은 듣지 못했다.
허밍버드에서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 리뷰어를 제안했을 때, 이 제안을 받아들인 건 그때의 질문이 다시 떠올라서였다. 오랜 기간 준비한 공무원이 된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고,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을까. 그 답을 책은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절대 튀지 마! 여기선 그래야 살아남아!' 공직 초기, 스스로 바로 서지 못했던 혼란의 시기에 나 자신에게 수없이 다짐했던 말이다. 처음 느낀 공무원 조직은 참으로 낯선 것이었다. 일터에서 만난 동료와 선배 그리고 상사들이 의미 없이 툭툭 던지는 말들. 그 속엔 진심 어린 '걱정'도 있었지만, '뼈'도 있었고 '경고'도 있었다.
"그런 옷은 어디서 사는 거야?"
"너무 적극적으로 하지 마. 뭘 그렇게까지 해."
"그러다 다쳐, 적당히 해."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을 읽으며 가장 많이 생각한 건 '공무원'도 회사원과 다름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공직에 있다 보면 회사원들보다 좀 더 보수적 환경에 놓일 기회가 많고, 그러다 보니 다른 직장인들보다 조금 더 제한되는 게 많을 수는 있다. 하지만 위의 글을 볼 때, 저 말은 공무원이 아니어도 들어봄직한 말이었다. 내가 다녔던 회사 중 한 곳에서도 이런 말들이 많았다. 의욕적일수록 일만 물어오는 골칫덩이 취급을 받았다. 그렇다 보니 의욕적인 팀장 아래 있었던 나도 골칫덩이 취급을 받았고, 그게 반복되니 나 역시 '적당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의 경험과 겹쳐서 더욱 공무원도 다를 바 없는 회사원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제목과 달리 일과 나 사이에서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책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회의에서 미리 보고하지 않고, 검증되지 않고, 확인받지 않은 새로운 사업이나 아이디어를 내뱉은 대가치고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심지어 '쟤 너무 나댄다''지가 뭔데 상사들 건너뛰고 맘대로 얘길 해' 등 조직에서 실무자들이 위로 층층 겹겹 상사들을 모셔 놓고 하는 회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지 않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슬프지만 그렇다.
이 역시 공무원 회의만의 일이겠는가. 의견을 내놓으라고 하면 합죽이가 되는 건 어떤 회사의 회의든 비슷할 것이다. 회사를 경험해본 누군가라면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처음에 생각했던 '공무원만의 일'보다 큰 범위를 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직 생활을 해보지 않은 내게도 잘 읽히는 에세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업무 때문에,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고민이라면 답을 받을 만한 내용들이 많았다.
그렇다고 공무원들의 특이성에 대한 이야기가 배제된 건 아니다. 비상근무와 투표 때 근무 상황은 공무원들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10년간 근무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을 꼽으라면 바로 '비상근무'다. 작년 연말 송년행사 때 발표된 내부 직원 대상 설문조사가 있었다. 설문에 응답한 직원들이 가장 힘들다고 느낀 부분도 눈, 비, 태풍 등 천재지변과 각종 비상사태와 같은 다양한 '비상근무' 상황에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는 때가 많다는 것이었다.
지방에서 공무원을 하는 선배들은, 주말 결혼식을 '비상근무'로 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에는 모든 게 핑계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내용을 읽고 나니 언제 불려 갈지 몰랐던 그들의 상황이 이해되어 미안해졌다. 산불 경계나 호우주의다 하여 언제든 불려 가는 공무원들에게 대한 감사함도 느껴졌다. 주말의 자유가 소중한 직장인이었기에 더욱 대단하다고 느꼈다. 주말도 휴가에도 불려 갈 수 있다는 건 엄청난 스트레스인데, 그걸 감당하고 일하다니! 내겐 슈퍼 히어로 저리 가라였다.
또 다른 건으로 올해 4월 투표 이야기가 있었다. 이건 정말 공무원으로 일한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닐까 생각한다. 다른 때보다 더욱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던 투표를 위해 준비하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생했을 그들에게 늦었지만 감사를 표한다.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은 공무원의 생활을 알고 싶은 사람에게, 회사의 일로 고민하고 있는 직장들에게 공감될 만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책이다. 마치 팀에서 10년 넘게 일한 팀장님이 나를 탕비실로 데려가 믹스커피를 한잔 뽑아주고 이야기를 해주는 것처럼 따뜻한 마음이 드는 에세이였다. 그래서 회사 일로 고민 중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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