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토리니에서의 크리스마스
오랜 여행을 떠나기 전이면, 얇은 노트를 하나 사서 일정표를 붙이고 몇 장을 비워둔 채 여행 노트를 만드는 게 습관이 되었다. 여행 노트를 만들면, 일정 정리가 됨은 물론 내가 여행지 중 어디를 가장 기대하고 있는지, 먹고 싶은 게 뭔지를 떠나기 전에 알게 되어 좋다. 그리고 여행지마다의 하루가 끝날 때, 어떤 일정이 변경되었는지, 그로 감상은 어떻게 변했는지를 기록해두고 나중에도 볼 수 있어서 좋다. 이 습관은 8년여 전, 터키와 그리스를 여행할 때에 생겨났다.
자유여행으로는 처음으로 먼 곳을 떠나는 것이라 준비가 정말 부실했던 여행이었다. 캐리어와 배낭 하나를 뚤레뚤레 메고 공항으로 갔다. 친구가 여행지에서 쓸 노트를 가져왔다고 말하자 그게 부러웠던 나는 공항 안 서점에서 이 노트를 샀다. 싸다고 샀는데, 8년이나 요 모양으로 유지되는 것 보니 내구성 하나는 똑 부러지는 걸 샀던 모양이다.
해가 유난히 쨍쨍했던 어제, 산토리니에서의 하루가 생각났다. 그 생각은 이 노트에서 구체화되고, 지금 이 글로 태어났다.
이스탄불 이야기에서도 나오는데, 이 여행은 "인간은 살면서 한번쯤 페리를 타고 그리스를 갈 일이 있다."는 교수님의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그때 우리는 학기 중이었고, 준비는 더없이 미흡했다. 그러나 이상은은 높았고, 감성도 충만했다. 당시 솔로였던 우리 둘은 한국에서 축 처져 있지 말고 산토리니에 가서 낭만적인 크리스마스를 보내자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 원대한 계획을 실현하느라 인생에서 제일 힘든 12월을 보낼지도 모르고.
소형 비행기에서 내려 도착한 산토리니는 구름으로 우리에게 복선을 암시했다. (정신 바짝 차려!!! 이 친구들아!! 쾅쾅!!) 공항에는 우리를 마중 온 숙소 주인이 있었고, 그는 구름은 잠깐이고 산토리니는 곧 맑아질 것이라고 했다. 여기 있던 며칠간 비가 오지 않았던 걸로 보아 그의 말은 진실이었다. 단지 우리의 여행이 고난이 될 것이란 예측을 하지 못했던 것뿐이다.
낭만적인 크리스마스이브를 기대했지만, 조지(숙소 주인, 펜션 스텔라에 묵었으며 그때도 지금도 유명한 곳 같다)는 우리에게 다른 소식을 전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가게들이 운영 시간을 줄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착하자마자 마트에 가서 부랴부랴 먹을 걸 사왔다. 어째 낭만이 집에서 이루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크리스마스에는 기분을 낸다고 카페를 갔지만, 휴식 시간에 걸려 길바닥에 앉아 있다가 커피 한잔을 겨우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고난은 다음 날 닥칠 일에 비하면 정말 귀여운 일이었다.
운전을 할 줄 몰랐던 탓에 우리는 뚜벅이 여행을 하고 있었다. 산토리니에는 버스조차 많이 다니지 않았다. 전날 도보로 갈 수 있는 피라 마을을 갔고, 그날 우리의 행선지는 숙소에서 거리가 있는 이아 마을이었다. 숙소에 있는 버스 시간표를 보고 시간에 맞춰 나갔지만 버스가 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사진도 찍고 신이 났는데, 30분이 지나도 버스가 오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버스는 우리에게 오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이라면, 숙소에 가서 우리를 태워 줄 수 있냐고 물었을 텐데, 그때는 쓸데없이 쑥스러움이 많았다. 숙소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 먼 길을 가는데, 설마 택시 하나 잡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왜냐면, 이아 마을은 정말 멀었고, 비수기여도 그곳은 유명한 여행지였으니까. 게다가 택시가 많은 한국에서 온 어수룩한 두 명이지 않은가. 머릿속에 가장 긍정적인 행복 회로를 돌려 가며 우리는 걷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택시 회사가 있어서 물었지만, 택시 운행을 하지 않는다든지 렌터카밖에 없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우리는 걸었다. 정말 오래 걸었다.
걷다 보니 인도가 사라졌다. 차도를 지나가는 차조차 드물었다. 가끔 지나가는 차들은 우리를 향해 조롱인지도 모를 클락션을 울렸다. 한두 번 놀랐지만 나중에는 놀랄 겨를도 없었다. 혹시 몰라 가방에 싸간, 도넛과 음료수를 먹어가며 우리는 걷고 또 걸었다.
그때 우리는 오래 걸을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다음 학기 졸업을 앞두고 있었고, 친구는 휴학을 앞두고 있었다. 우리는 대학교에서의 3년을 마치고 이곳으로 온 것이었다. 각자 새로운 곳으로 떠날 것이고, 그전 마지막으로 함께할 여행이라는 생각으로 이 먼 곳으로 왔다. 행복했던 상상과 달리 여행은 고되었다. 그 가장 큰 고난을 11km를 걷는 것으로 맞이했다.
처음에는 이 불행에 화도 났다. 어떻게 떠나온 곳인데 이럴 수 있나, 일이 이렇게 꼬여도 되나. 몇 킬로미터쯤 걸었을까, 다리도 아파오고 얼굴을 감싸는 해는 뜨겁고 생각은 사라졌다. 길 위에 놓였으니 걸여야지, 생각했다. 그렇게 중반쯤 걸었을 때는 돌아갈 수도 없어서 걸을 수밖에 없었다. 함께 걷는 사람은 친구밖에 없었다. 우리는 한참 이야기를 했다. 그동안 우리의 대학 생활에 대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것 보니 그때의 고민은 이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어버린 듯하지만, 그때 우리는 그것들이 정말 무거웠다. 그걸 오랜 시간 나누었다. 발이 불타는 고난의 길 위에서 우리는 마음을 괴롭히던 고난을 태우고 왔다. 몇 시간쯤 걸었을까 'Welcome to Oia'가 보였다.
걸어온 보람이 있을 만큼, 이곳은 예뻤다. 돈을 많이 벌어서 그때는 여기에 숙소를 잡고 바다 구경을 하자는 약속을 할 정도로 예뻤다. 여기서 고난이 끝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보람은 잠깐이고 고난이 다시 닥쳤다. 우리에겐 숙소로 돌아갈 교통수단이 없었다. 주차장에 즐비한 택시 기사에게 우리를 태워다 줄 수 있냐고 물었지만, 여기에 온 택시들은 모두 주인이 있는 예약 택시라는 답변만을 받았다. 게다가 그날은 우리가 이 섬을 떠나는 날이어서 올 때보다 빠르게 돌아가야 했다. 하지만 체력도 의욕도 없었다. 낭만만을 가지고 온 우리는 로밍도 되지 않은 휴대폰만 가지고 있어서 숙소에 SOS를 청하지도 못했다. 그래서 다시 '걷기'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래도 신이 있었는지, 우리는 걷다가 택시를 만났다. 만났다기보다 마주쳤다. 어느 집 앞에 택시가 정차했고, 우리는 그 차가 떠날까 봐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택시 기사님이 흠칫 놀란 듯했으나 다행히 예약된 게 없어서 우리를 숙소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먼 거리를 걸었던 게 굉장히 뿌듯했던지 나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 택시 기사님께 "저희 이아 마을까지 걸어갔다 오는 길이에요!"라고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택시 기사님은 정말 놀랐던지 "울랄라!"라고 말했다. (걷기의 고난에서 우리를 탈출시켜준 택시 기사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이날의 여정은 힘겨웠다. 몇 시간 뒤 우리는 야간 페리에서 로비 의자에 앉아 쪽잠을 청했는데도 꿀잠을 잘 만큼 피곤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전히 선명하게 추억된다. 버텨낼 때는 너무도 힘든 날들이 살아 있으면 언젠가는 추억이 된다는 증거 같은 날이다. 쨍쨍한 햇빛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간을 견디고 있는 날이기에 이날이 떠오른 것 같다. 11km를 걸어갔던 긍정의 마음으로, 오늘도 살아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