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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Aug 31. 2020

[감상 기록] 걷다 보면 무엇이 나오나요?

- 영화 <걷기왕>을 보고 나서


오랜만에 영화를 한 편 보았다. 코로나 때문이 아니라 원래 영화를 자주 보지 않는 편이다. 그럼에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오늘은 꼭 영화 한 편을 골라서 봐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선정 기준은 '슬프지 않을 것', '너무 자극적이지 않을 것'이었다. 요즘 영화 중에 이 두 개를 빼면 몇 개를 남을까 싶지만, 그래도 이 그물 사이에 영화가 한 편 걸러졌다.


심은경 주연의 <걷기왕>이었다.


경보하는 심은경을 티저로 본 기억이 났다. 코로나로 발도 묶인 지금, 누군가가 나 대신 걷는다는 느낌으로 영화를 보자 싶은 마음에 선택했다.

 

영화는 생각보다 웃기지 않았고, 예상보다 깊은 내용을 담았다고 느껴졌다. 그리고 요새 내가 고르는 콘텐츠들의 소재나 주제가 겹치고, 내 고민이 무언지는 명확히 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여러 대사 중에

"선배가 하면 죽어라 노력하는 것이고, 내가 하면 무모한 것이냐."

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누군가의 노력을 쉽게 폄하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탓일까. 나도 모르게 나의 노력은 숭고하고, 다른 이의 노력은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해왔던 게 있어서 찔리는 것일까. 어쩌면 죽어도 인정하지 않는 나의 노력이 반발하여 내 마음을 찔러댄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에 남는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 말로 느낀 점은 '누구의 노력이든 인정하자'는 것이었다.


영화를 끝까지 보고 다시 하나 생각한 건 '노력한 사람이 어떤 이유에서든 포기한다고 하면 잔소리하지 말자'는 것이다. 오래 해왔던 걸 포기하면, 그 사람에게 너무 많은 위로와 너무 많은 조언이 들린다. 포기까지 오는 과정도 고단했을 텐데, 이 말들이 어째 그 사람을 더 고단하게 하는 느낌이다.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나서 이렇게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나의 노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영화에서 경보 연습에 열심히여서 코피가 나는 만복(심은경)에서 짝꿍은 "너 경보 좋아서 하는 거 아니잖아."라고 말한다. 만복은 자신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데, 짝꿍에게 노력은 물론 열정까지 부정당한 듯하여 벌컥 화를 낸다. 그런데 영화를 끝까지 다 보고 나서, 그녀의 이야기가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복의 경보가 마치 나의 노력처럼 느껴졌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알고 있는 걸까 싶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았지만 즐겁다기보다는 고민이 많아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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