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선의 <우아한 가난의 시대>를 읽고
오랜만에 이북으로 완독한 책이다. 제대로 이북을 시작한 건-이북의 시작은 이전 직장의 요구로 이루어졌다- 유럽 여행을 떠날 때였다. 혼자만의 긴 여행에 책 몇 권을 들고 가고 싶었는데, 가방이 이미 15kg은 될 것 같은 무게를 자랑했고 책의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다. 그래서 책을 몇 권 넣어도 무게가 같은 휴대전화에 책을 넣어가기로 결정했고, 여행에서 봐야 할 책들은 물론 보고 싶었던 책들도 저렴한 가격에(종이책 가격보다) 샀다.
웹툰과 웹소설에 단련된 눈은 내 예상과 달리 이북에 쉽게 적응했다. 이북은 묘한 장점이 있었다. 실물 두께를 모르고 책을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600페이지 가까지 되는 프레드릭 배크만의 <베어타운>을 별 거부감 없이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걸 완독하고 나니, 휴대전화로 읽을 수 없는 책은 없겠다 싶었다. 그러다 한동안 다시 종잇장을 넘기는 재미를 잊을 수 없어 종이책을 사모으다가, 자취방 책 창고가 비좁아져서 다시 이북의 세계로 돌아왔다.
탭하여 넘기다 보니 목차나 구성을 종이책 볼 때보다는 오래 보지 않아서 전체 구성을 빨리빨리 넘기게 된 점은 아쉬웠으나, 각 글을 읽는 데에 있어 디지털 기기는 역시 불편하지 않았다. 책장 정리를 빨리 하든, 이북으로 넘어가든 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이북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가난'에 대해 책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어릴 때-라고 해봐야 얼마 전 대출을 받기 전까지- 나는 빚이 생기면 쌀 한 톨 살 돈도 없어지는 줄 알았다. 원금 일시 상환과 분납 상환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그래서 빚이 생기면 가난해지는 줄 알았다. 빚이 생기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그때의 기준으로 본다면 나는 아주 큰 일을 겪고 있는 셈이다. 일자리도 없는 데다가 빚이 얼마인가. 내 빚은 전세방을 구하면서 생긴 것인데, 오히려 이때 나는 소비에서 자유로워졌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돈을 모으기 위해 나는 친척집에 얹혀살았다. 그때는 정말 터무니없이 긍정적이어서 월급을 아끼고 모으면, 열심히 모으기만 하면 독립 자금 정도야 금방 모일 줄 알았다. 불안정한 고용 상황과 여행 욕구 등으로 나의 적금 통장은 쉬이 채워지지 않았고, 예상의 3배에 이르는 기간 동안 친척집에 머물렀다. 그리고 이제 집을 알아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내가 열심히 모은 돈이 집값에 비해 얼마나 적은 돈인지 알게 되었다. 그러고 나니 소비하지 않았던 날들이 아까워졌다.
사실 그때 천 원 더 비싼 메뉴를 먹고 싶었는데.
1200원이 아까워 버스를 타지 않은 날엔 사실 다리가 너무 아팠는데.
돈 아깝다고 했지만 사실 나도 네일아트 받아보고 싶었는데.
몇천 원 더 주고 미용실에 갔으면 지금보다 나았을 텐데.
지금을 미래와 바꿔가며 살았는데, 그래도 모자란 돈이 많다는 건 허망했지만 지금이라도 하고 싶은 걸 해보며 살아도 된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프랜차이즈 카페에 가서 신메뉴를 시켜서 마시고, 난생처음 네일아트도 받아보았다. 그동안 못 받은 대접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우아한 가난의 시대>를 읽으면서, 네일아트를 처음 받던 날의 감정이 다시 생각났다. 아껴서 살았지만 결국 가난과는 붙어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슬펐고, 그럼에도 예뻐진 손톱에 기뻤다.
우아한 가난은 빈곤감이 디폴트인 사회에서 개인이 의연하게 살아갈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 만들어 낸 조어다. 가난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을 따지기 이전에, 이곳에서 누릴 수 있는 각자의 풍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포기할 수 있는 것과 포기할 수 없는 것의 목록을 내 식대로 재배열할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여는 글- 써버리는 삶에 대하여 中)
그날의 나에겐, 예쁜 손톱이 슬픈 마음을 의연하게 달랠 우아함이 아니었을까.
저자 김지선은 여는 글에서 밝혔듯, 가난과 붙어살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자신이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무엇인지 고민하고 쓴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은 가난한 삶이라고도, 풍요로운 삶이라고도 말하기 묘한 지점의 이야기가 적혀 있다. '적당히 가난한' 현대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 같다. 이전과 비교하면 절대적으로 이전 세대보다 나는 부유한 세대의 사람이다. 그러니 적성과 맞는 일을 하고 싶다고 뻐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나는 '적당히 가난한' 상태다.
'적당히 가난한' 상태가 무엇인가 하면, 찢어지게 가난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지만 사치는 부릴 수 없는 상태다. 그래서 나의 불만과 불안이 발설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었다. 굶어죽을 정도는 아니니까. 그런데 <우아한 가난의 시대>를 읽으면서, 나와 함께하는 불안을 쏟아내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대는 이런 가난과 함께하는 시대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어떤 소비를 갖춰야 하는 사람인지 생각해 보게 했다. 하나를 사도 명품을 사서 오래 쓰는 사람인지, 가성비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의미 있는 소비를 추구하는 사람인지. 각 소비에 대한 에피소드가 등장하고, 하나하나를 읽을 때마다 이건 나에게 맞다 아니다를 생각하게 했다. 이로써 진짜 다양한 사람이 사는구나 하는 점도 깨닫게 되었다. 가볍게 읽기 시작했고, 가볍게 끝냈지만, 마음에는 꽤 오래 남아 있을 에세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