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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Oct 07. 2020

[독서 기록] 너에게 고마운 세 가지

정시원의 <엄마와 딸의 코인 노래방 노동기>를 읽고


힘든 날이다. 힘든 날들이었다. 

텀블벅에서 <엄마와 딸의 코인 노래방 노동기>를 보고 구매하고 발송되어 내게 오기까지의 날들은 내게 버겁고 힘들었다. '좋은 때가 올 테니 기다리자'는 위로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추석을 전후로 한동안 아무것도 쓰지 않았고 읽지 않았다. 나에게서 도피했다 돌아온 집 앞에는 <엄마와 딸의 코인 노래방 노동기>가 홀로 나를 맞았다. 아마도 꽤 오래, 혼자, 돌아오지 않는 구매자를 기다렸을 것이다. (분실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넌 내 책일 운명이었구나?)



홀로 기다려준 <엄마와 딸의 코인 노래방 노동기>는 내게 여러 모로 고마운 책이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가 어떻게 운영되었는지 알게 해주었기 때문이 첫 번째 이유고, 작가가 구직 생활을 이겨내는 모습(코노 노동기)에서 힘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 두 번째고, 내가 세상 어딘가에 필요한 존재로 만들어주었다는 게 마지막 이유다.


내게 코인 노래방(이하 코노)은 소중한 장소였다. 몇 안 되는, 나의 분노 분출 장소 및 해피 바이러스 분출 장소였다. 힘들 때도, 좋을 때도 찾았다는 이야기다. 코로나로 잃게 된 코노의 역할 중 무엇이 더 아쉽냐고 하면 '힘들 때 갈 장소'라고 말할 수 있다. 슬프고 눈물 나는데 집에 가기 싫을 때, 이제는 마땅히 갈 곳이 없다. 길거리를 하염없이 걸을 수도 없다. 코로나는 어찌할 방도가 없는 병이기에, 나는 요즘 슬퍼도 집으로 돌아와야만 했고 그게 나를 더 슬프게 했다. 



코노는 울기 좋은 공간이다. 
혼자 가도 이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는다. 
그래서 노래를 틀어놓고 
마음껏 엉엉 울 수 있다. 



'노래라도 실컷 부르고 가렴'의 첫 구절이다. 코노는 슬픔을 감출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을 해주었다. 그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게 하는 코로나가 야속할 뿐이다. 이렇게 마무리하면, 코노에 가서 흐느끼는 사람으로 보일 것 같다. 나는 코노에서 울지 않는다. 차라리 60곡을 모두 부르고 오는 사람 쪽에 가깝다. 그렇게 슬픔을 발산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진 것이다. 


내게 이런 역할을 해주던 곳이 어떻게 유지되어왔는지 보고 나니 숙연해졌다. 표지는 아주 귀여운데, 내용은 코끝을 약간 시리게 했다. 남의 돈 버는 게 쉽지는 않다지만, 정말 험난하게 돈을 버는 모녀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주취자들의 말도 못 할 난리라든가, 미성년자들의 출입 관리라든가, 폭행이라든가 하는 일들이 코인 노래방에서 벌어졌고, 모녀는 그에 맞서 옳은 방법으로 가게를 유지하려고 했다. 이 고난들을 현명하게 처리하고 모녀의 코노가 안정화될 즈음엔,  코로나가 터졌고 가게는 휴업을 결정했다. 이 과정들을 읽으며 '험난하다'는 건 이게 아닐까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가게를, 깨끗하고 멀끔하게 유지한 모든 가게 주인님들께 감사하게 되었다. 내가 좋아했던 가게의 상태 유지는 누군가의 노력임을 깨닫게 해주었다. 



중요한 기회를 내 손으로
망쳤다는 생각과 더불어
나이가 서른을 넘었으니
다시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우울한 생각에
엉엉 울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엄마와 딸의 코인 노래방 노동기>가 도착해서 혼자 나를 기다릴 때, 나는 이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엉엉 울다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상황이 나쁘게만 풀린 건 아닌데, 이상하게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올해 구직을 하면서 들었던 여러 말들이, 겪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씁쓸함을 느꼈다. 삶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들어서 어쩌지 싶었다. 이런 생각을 오래 하고 나서 이 책을 일었다. 서른의 언저리에 있는 다른 사람들도 함께 삶을 견디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이 되었다. 몸을 웅크려말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데, 누군가 등 뒤를 두드려 등을 맞대 쉬자고 해준 것 같았다.


마지막 이유는 함께 온 편지에 있다. 


이 글을 보고 계시는 여러분 덕분에 책이 나올 수 있게 됐습니다.
100명이 아닌, 1,000명이 이 책을 봐주실 테고요.


요즘 밥값 못한다는 생각을 진짜 많이 했다. 그런데 만 원을 후원해서, 이 책이 900명에게 더 전달될 기회를 만들었다는 데에서 뭉클했다.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얼마 만에 들어보나 싶기도 했다. 어느 개울에 작은 돌다리 역할 하나 했다는 게, 그래서 이런 말을 듣는다는 게 참 행복했고 감사했다.




텀블벅 종료 이후 부천 독립서점 '오키로북스'에서 <엄마와 딸의 코인 노래방 노동기>를 판매하고 있습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구매 링크를 눌러서 구경하세요! 좋아서 하는 안내이며, 책방과는 어떤 연관도 없습니다. (연관 생기고 싶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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