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이었다. 서점에 갈 일이 있었다. 비장한 마음으로, 오늘은 꼭 시집 한 권을 사오리라 다짐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시집을 골랐던 터라, 내가 읽을 시집을 직접 고르기란 쉽지 않았다. 어떤 것에 중점을 두어야 할지 고민되었다. 친구에게 시집을 선물할 때처럼, 유명한 시인을 사야 할까, 한번 접해본 시인의 것을 살까. 여러 가지를 고민하다가, 어려운 문제일수록 단순히 결정하자는 마음으로 제일 마음에 드는 제목의 시집을 사기로 했다.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어' 그날, 어쩌면 요즘, 내가 가장 끌리는 주제인 '어쩌다 어른'을 보고 이 시집을 골랐다. 결과를 먼저 이야기하자면, 제목과 내용을 몇 줄 보고 샀으면 더 취향에 맞았을 것 같다. 취향과 꼭 맞지는 않았지만, 이 제목은 오래된 클리셰지만 그날도 날 끌어당기는 문구였다.
서른이 넘었으니, 어디서 어리다 취급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느낌이다. 어쩌다 나도 모르는 새 어른이 되어버린 걸까, 그 생각은 성인이 된 이후 늘 갖는 생각이었다. 그 마음은 내게서도 다른 이에게도 자주 드는 생각이었다. (친구, 언니,오빠 들에게도 듣는 이야기다) 이 오래된 클리셰가 제목이어서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취향과 맞지 않는 부분은 내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엔 어려운 것들이 많았다. 각주에 설명되어 있는, 어떤 책을 보고 참고했다는 내용들을 잘 몰라서 감명이 오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이해하기에 쉬운 글을 좋아해서다. 궁구하고 고민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느껴질 시집이다. 알아볼 게 많은 시집이다. 조금 더, 덜 졸릴 때 읽었으면, 이것들을 찾아보면서 읽었으면 마음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여러 시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시는 <풍경>이었다. 그중에서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풍경이 되는 일은 아름답다
이상한 유언을 쓰다가/부끄러워 살고 싶어질 때
라는 두 문구가 가장 기억이 남았다. 첫 문장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하는 누군가가 생각나서였다. 한 사람의 칭찬이 삶을 유지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문장이었다. 두 번째 문장은 '삶'이 이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오늘은 정말 부끄러웠다가도, 내일이 되면 잊히는 창피함. 어제는 유언을 쓸 만큼 힘들었지만, 내일은 그 행동이 부끄러워 살고 싶어지는 것. 비논리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삶 같고, 그 삶을 이 문장이 잘 표현했단 생각에 좋았다.
시간이 좀 흐른 뒤 다시 읽어보고 싶은 시집이다. 아무도 모르게 어른이 되었듯, 아무도 모르게 이해의 폭이 넓어질 수도 있는 일이어서. 그렇게 다시 이해해보고 싶은 시집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