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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Jan 30. 2021

[독서 기록] 뒤돌아보지 말아요, 지금을 살아요

김민철의 <모든 요일의 기록> 중에서

오랜만에 받은 책 선물이었다. 친구는 전에도 내게 책을 선물한 적이 있었다. 이번 책은 몇 년이 지난 친구가 골라준, 나를 위한 책이었다.

읽을 마음을 생각하고 골라준 게 아닐까 싶었다. 읽는 내내 불편함이 없었다. 모든 요일의 기록이었지만, 거슬리는 글이 없었다. 마치 '편안한 날'의 기록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잘 지내길 바란 친구의 안부 인사가 닿은 느낌이었다.


*카피라이터로서의 삶에 대하여

'카피라이터'로 사는 저자가 '글 쓰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잘 드러나 있었다. 여러 기록 중에서 업무에 대한 기록이 인상 깊었다. 어쩌다 글을 쓰게 되어 힘들어하는 모습에, 그러면서도 꾸준히 해나가는 모습에 눈이 절로 갔다.
카피를 쓰면서 겪는 힘듦에 대한 글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아래 글이 수록된 부분이었다.


"이번 카피는 <한밤의 아이들> 같았으면 좋겠어."
그 말을 듣는 순간 생각났다. 내 책꽂이에 얌전하게, 아주 얌전하게 꽂혀 있던 그 책들이. 그러니까 사놓고 한 페이지도 펼쳐보지 않은 그 책들이.
-< 읽지 않은 책으로 카피 쓰는 법> 중에서


여기서 배우 한예리의 이야기도 생각났다. 한국무용을 전공할 때, 몸짓을 디렉팅하는 지도자님들의 말이 너무 모호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내게 <한밤의 아이들>같이 쓰라는 이야기는 뜬구름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저자는 이 이야기를 듣고 책을 펼쳐보았고, 무용수는 그 디렉팅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이게 일반인과 직업인의 차이인가 싶으면서도, '그걸 어떻게 하란 거야?'라는 생각에 약간 웃음이 났다. 어떤 직업인이든, 직업인으로 사는 건 힘든 일이구나 싶어서였다.


*두 사람에 대하여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그려보는 저자는 유쾌함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유쾌함은 단단한 내면에서 나온다고 생각될 만큼 단단한 속을 품은 사람으로 보였다.


60살이 된 내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았다. 고요한 얼굴이고 싶었다. 세상의 어떤 풍파도 감히 박살 낼 수 없는 깊고 따뜻한 얼굴이면 좋겠다 싶었다.
-<시간의 색깔> 중에서


저자는 전에 단단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60에도 고민은 있으리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녀는 이미 단단하고 좋은 어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도 감동을 주기도 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도 누군가 그녀처럼 살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녀의 엄마 역시 참 좋은 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모범생으로 클 딸이라도, 방목하여 키우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그걸 실현했다는 데에서 그렇다. 열 살짜리가 학원을 원하는 만큼 다니는 데에 대해 뭐라고 하지 않았고, '학원 빠질까?' 물어보는 딸에게 "결정은 네가 하는 거야."라고 말할 정도로 딸을 존중해주었다. 그런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나는 검은 건반이니까. 아무리 해도 그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거니까.
지쳐버린 어느 날 그 깨달음을 홈페이지에 써뒀다. 써놓고 나니 왠지 유쾌해졌다.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냥 내가 그렇게 생겨 먹은 걸. 그리고 그냥 잊어버렸다. 엄마가 내 홈페이지에 수시로 들락거린다는 사실도 잊어버린다.
다음 날 평소처럼 출근하고 있는 내게 엄마가 문자를 보내왔다. 검은 건반 딸에게 피아노 선생님인 엄마가 문자를 보내왔다.
'검은 건반으로만 치는 쇼팽의 <흑건>은 너무 화려하고 멋진 곡이야. 파이팅!'
-<그냥 그렇게 태어나는 것> 중에서


검은 건반이라는 딸에게 이런 문자를 보낼 수 있는 엄마는 참 멋져 보였다, 어른이라는 건, 이런 사람에게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싶었다. 그리고 이런 성향을 저자 역시 잘 물려받아서, 잘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좋은 글을 쓸 것이라는 기대가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잘살자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었다. 성공한 삶을 살자는 건 아니다. 나를 상처 내지 말고, 예뻐해 주면서 살자는 의미다. 아픈 부분은 쓸어주고, 힘들어하면 토닥여주면서 살아야지 싶었다. <모든 요일의 기록>를 읽으니 왠지 그런 마음이 들었다.

언젠가 갈 프랑스에서의 행복 대신 지금 여기서의 행복을 추구하겠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도 지금 여기서 행복해지고 싶어졌다.

모두가 이 말을 생각했으면 좋겠다.
"지금, 여기서 행복할 것"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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