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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Apr 10. 2020

[독서 기록]  돈가스 뒤의 풍경

이로의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를 읽고






한마디에 귀가 쫑긋거린단 말이죠?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


서문에 저자 이로가 적은 말처럼,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을 시작했지만 돈가스보단 다른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돈가스 이야기를 하는 건지 잡담을 하는 건지 모르는 채 글이 하나씩 끝났다. 한 곳 한 곳의 돈가스집에 대한 소개를 담고 있는 글을 읽는데 다른 이야기가 끼어들면 불쾌할 법도 한데,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흥미로워서 무언가 끼어들어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 옛날 <1박 2일>이 호황일 때, 낮잠을 자게 시키고 출연진 옆에서 

"그래서 그 사람이 뭐라고 했냐면요."

라고 해서 드는 잠을 달아나게 한 말과 같았다. '돈가스 맛'에 대한 평가에 집중해야지 하고 읽다가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는 것이었다. 도쿄의 유명한 돈가스집 마이센 이야기를 듣다가 쟁반이 주는 공간의 효과에 푹 빠져 읽었다. 1인분 식사를 담아주는 쟁반을 공간으로 생각하는 저자의 의견을 읽으며 마이센이 스윽 지워졌다. 1인분의 공간을 침범당하지 않는 수단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내가 생각하는 1명의 공간은 얼마 정도일까 생각했다. 첫 에피소드부터 내 의지와 다르게 읽혀서 긴장했다. 작가가 흥미로운 이야기꾼인 것 같은데 감당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책의 성향을 이야기하듯 '이 집의 돈가스는 이런 특성이 있는데요.'라는 말들이 나오지만, 그것보다 저자의 인생에 관한 말이 더 기억에 남는 것 보면 처음에 읽는 1인분의 공간에 대한 글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에피소드 이렇게 엮는데 말이 된단 말이죠?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몇 가지가 있다. 먼저, 소개할 것은 신후지 본점에 관한 에피소드에서 이야기한 것들이다. 경험의 전환이 어떻게 이렇게 급격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놀라 했던 편이었다. 돈가스집을 어떻게 갈까에서 시작하여 과거 이야기, 춤 이야기, 돈가스 맛 이야기 등을 이야기하는데, 아무 연관 없어 보이는 이것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놀랐다. 

그중 소개할 이야기 하나는 중학교 때 괴롭힘을 당한 것에 대함이다.


제 팔이 너무 가늘고 얇다고 시비를 걸다가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팔이 유독 더 바깥쪽으로 꺾인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팔꿈치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돌아가는 거죠. 세 명 중에 늘 대장 노릇을 하던 녀석이 "얼마나 꺾이는지 보자"라고 했습니다. 그러곤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아직까지 상처로 남아 있는 말은 어디 얼마나 꺾이는지 알아보자는 제안이 아니라 곧 이어진 "부러질 것 같으면 말해" 쪽이었습니다. 혹시라도 부러지면 제때 말하지 않은 제 탓이라는 말처럼 들렸거든요.     (68쪽)

 

돈가스 이야기를 하는데 이런 이야기까지 필요한가 싶었지만, 흡인력이 있어서 돈가스를 스윽 뒤로 미루어두었다. 요즘 '무언가를 못한 것은 너의 탓'이라는 이야기를 생각할 일이 많아서일지는 모르지만, 이 이야기를 읽고 충격이 컸다. 나를 잘못하려는 사람이 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 그 잔인함이 훅 끼쳐서 그다음에 무슨 이야기가 오려고 이러나 싶었다. 졸지에 가벼운 돈가스 에세이를 읽으려다가 말의 잔혹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 이야기를 마치고 돈가스집에 간 이야기가 나오고, 돈가스 나오길 기다리며 저자는 또 이런 생각을 했다고 적었다. 그 이야기는 앞에서 소개한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다.


샤이니의 춤은 '사진'이라는 가사에서 손가락으로 프레임을 만든다든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부분에서는 귀를 막는다든가 하며 가사를 직접 표현합니다. 그들도 그 방식이 다소 구식이라는 걸 알겠죠. 그런데 팔짱을 낀 채 펄쩍 뛰어오더니("Oh i'm curious yeah") 팔을 풀어 프레임을 만든 뒤("사진 속") 손가락을 곧게 뻗어 관객을 가리키는데("네가") 그 연결이 강력해서 가사를 그대로 표현하든 말든 상관이 없습니다. 상관이 없어집니다. 그런 순간을 좋아합니다. 일반적인 편견에 기대거나 말거나 자신들의 힘으로 밀어붙여 새로운 판단의 세계로 들어가는 때요.   (76쪽)


그러고 '진부함'과 진부함을 바꿔 '나의 문장'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으며 돈가스 먹으며 이런 생각의 전개 정도는 가능해야 작가를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내게는 센세이션한 의견 전환이었는데, B세트가 도착하자마자 저자는 이 생각을 접고 신후지 본점의 B세트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게 뭐지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놀랐고 글 한 편을 이렇게 엮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새로운 구성을 어려워하는 내게선 나올 수 없는 글이겠지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센세이션, 센세이션, 그 말 그대로였다.



기억나는 게 있단 말이죠.

양식 요시카미 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이 에피소드의 이야기는 선입견으로 이어졌다. 저자의 선입견은 '메뉴가 많은 곳은 맛이 없다'는 것이었다. 저자의 선입견이자 다른 사람들에게도 있을 선입견이다. 김밥천국의 메뉴가 많기에, 많은 메뉴를 냉동식으로 공급받기 때문에 김밥천국은 맛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김밥천국도 김밥천국 나름이다. 김밥천국들 사이에도 맛의 차이가 있다. 저자가 메뉴가 많아도 맛있을 수 있다는, 선입견을 깬 요시카미에 대해 글을 적은 편이었다.


'메뉴가 많은 곳은 맛이 없다'는 기준이 허물어졌습니다. 한 가지 요리에 집중해 평생을 보낸 장인도 있겠지만 열 명의 요리사가 서로 회전하며 주방을 지키고 있는 모든 요리를 평균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소집단도 있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예외란 얼마든지 더 있겠군요.    (164쪽)


'그렇게 예외란 얼마든지 더 있겠군요.' 

이 문장이 기억 속에 가장 깊게 남을 것이다. 나는 나도 알고, 다른 사람들도 알 만큼 고집(또는 아집까지 올라가기도 하는 성질)이 세다. 그래서 선입견이 박히면 그것도 오래 간직하는 편이다. 어려운 회사 사정을 목격하고, 융통성이 없는 태도로 좌절되고, 직장인에서 백수라는 변화가 생기면서 유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내가 바뀌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깨지는데, 거기서 내 고집을 지키는 게 무슨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상황에 따라 생각을 바꾸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유연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이 누군가에게 폐가 되거나 아니면 범법적 행동으로 발전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바뀌지 않는 생각 중 많은 것들이 선입견이었을 것 같다.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던 생각들 중 뿌리 박힌 것들이 많은데, 그걸 지키는 고집은 더 이상 필요 없구나란 걸 느끼게 되었다. 내가 예외여도 상관없다.

 

나는 어디선가 예외이고 싶지 않았다. 보편적이고 보통인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런데 이미 나는 예외였을 수도 있다. 보통이려고 노력했다는 것은 내 생각이었으므로, 누군가에게 나는 굉장히 특이한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보통이기 위해 노력했던 건 의미 없는 일이 아니었을까 싶어졌다. 하고 싶은 걸 참아가면서 보통이려고 할 필요가 있는 일은 아니었다 싶었다.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를 읽으며 가장 잘 얻은 생각이 바로 이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가스 이야기를 한다고 들었는데 말이죠

<아무튼 시리즈>를 읽을 때면, 이렇게 소소한 것들로도 이야기가 되는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작은 것에 집중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집중하게 되었다.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도 '돈가스'라는 작은 것에 집중한 이야기라고 예측하고 읽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읽다 보니 돈가스에서 시작하여 우주까지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지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은 마음이었다. 예상과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다 보니 이는 이대로 좋다는 생각도 들었다. 누군가 한 점에 집중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한 점 뒤로 보이는 풍경도 그려야 하지 않겠는가. 


<어떤 돈가스 가게에 갔는데 말이죠>를 소개한다면, 돈가스 이야기를 하지만 돈가스 뒤 풍경이 보이는 이야기라고 소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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