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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Apr 15. 2020

[독서 기록] 어쩌다 보니

임이랑의 <아무튼, 식물>을 읽고





어쩌다 식물을 좋아하게 되었는가

서울 생활을 시작했을 때, 참 많이 외로워했다. 1년은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랬지만, 나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 이미 편안해진 집이 옆에 없다는 것은 일상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외로움을 달래지 못하게 했다. 늘 내 이야기를 전해주던 가족들이 기숙사에는 없었고, 통화하다가도 룸메이트가 들어오면 멋쩍게 손을 들고나가야 했다. 작은 공간이라도 좋으니 마음을 편히 둘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개별로 지급된 책상과 침대, 옷장이 있었지만 사방이 공유된다는 점에서 안정감을 찾지는 못했다. 옷장 문을 닫고 벽장 아래 방에 지내는 해리포터처럼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그때 식물을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 키운 식물은 20살 생일에 선물 받은 선인장이었다. 동그란 구 모양의 선인장은 내가 동아리 합숙으로 일주일 넘게 옆을 비워도 혼자 잘 컸다. 마음이 불안할 때면 그 아이의 뾰족한 가시에 눈을 고정하고 생각을 비웠다. 그것만으로 생각보다 위로가 되었다. 그동안 찾고 있던 나만의 공간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본가에 내려갔을 때, 수경식물로도 키우는 식물을 똑 떼어 가져왔다. 모토가 호텔형 기숙사인 곳이었기에 큰 통창이 있었고 해가 잘 드는 방이었다. 그러다 보니 식물들은 꽤나 쑥쑥 자랐다. 많이 키울 때는 창문 쪽에 서너 개를 놓고 키운 적도 있었다. 거의 매 학기 바뀐 나의 룸메이트들은 처음 방에 와서 당황하는 듯했다. 색이 없는 방에서 너무 초록초록했나?


그때 키우던 식물들 가운데 생을 마감한 아이들이 많다. 길거리에서 사온 식물들은 잘 키우지 못해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중 3천 원짜리 꽃나무는 여전히 잘 자라고 있다. 우리 집이 아닌 본가에서 키우고 있지만 말이다. 보통 선인장이나 다육이 식물 같은 작은 것들을 키웠는데, 그날따라 무슨 마음인지 꽤 큰 보라색 꽃나무를 사왔다. 다른 식물들과 달리 거의 매일 물을 주어야 했는데, 본가에 오래 가 있어야 해서 그걸 쇼핑백에 잘 실어서 서울에서 대전까지 갔다. 엄마는 그걸 들고 온 나에게는 놀라지 않고, 화분에 비해 작은 곳에서 살고 있는 식물에 놀라 했다. 더 크지 못할 것이라며 엄마는 집에 있는 화분으로 분갈이를 했고, 그때 이후 그곳에 자리 잡아 잘 크고 있다. 미묘한 스틸인가 싶다가도 물을 잘 주는 사람 곁에 있으니 여태껏 사는 것이지 하고 있다.


다른 하나는 5년을 키운 선인장이었다. 20살에 처음 선물 받은 그것. 첫 회사 생활에 모니터 뒤에 두고, 혼자 멍 때릴 때 쳐다보면서 위안을 얻기도 했던 것이었다. 계속 화분이 작아져서 몇 번 분갈이를 하였는데, 마지막 분갈이를 이기지 못했다. 서울 생활을 하며 쭉 키워왔던 것이라 그런지 내내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어쩌다 식물 에세이를 읽고 나서

서두가 굉장히 길었다. 잘 키우지는 못하지만 식물을 좋아한다. 하나의 화분을 둠으로 그 자리에서 나만의 자리를 찾게 되는 사람이었다. 반려식물을 키움으로써 누군가를 보살피고 있으니, 나도 책임지는 게 있으니 열심히 살자고 마음먹게 된다. 이 정도면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 싶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아무튼, 식물>을 읽으면서 약간의 지식을 갖고 있으면서 '나는 생각보다 전문적일지도 몰라.'라고 으스댔던 게 부끄러워졌다. 사기 화분과 토분을 비교하고, 물 빠짐도를 비교하고, 햇빛이 드는 정도를 판단하여 식물 등을 두는 모습에서 '이게 전문적인 가드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몇 가지는 알아듣기 어려운 용어들도 있었다. 식물이 체내 물이 많을 경우 체외로 물을 뽑아내어 방울 짓게 하는 것도 용어가 있는지 몰랐다. 


반면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물 주는 것을 잘하게 되는 데에 3년이 걸린다는 말이었다. 겉흙이 마르면 물을 주는 사람도 있고, 공지받은 대로 물을 주다가 식물을 익사시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나는 키워본 식물은 전자로, 초면인 식물은 후자로 키웠다. 후자의 결과도 공지되어 있듯 익사를 많이 시켰다. 지금도 말라가는 식물이 있어서 흠칫 놀랐다. '설마, 너도 익사 중이니?' 싶은 마음이 들어서였다. 


연이어 '열심히 죽이는 삶'의 챕터에서 이야기했던 부분도 많이 공감되었다. 죽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만 마음과 같지 않다. 그래서 내 곁에 있는 식물들이 조금 더 오랜 시간 머물다 떠나가길 바랄 뿐이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열심히 죽이는 사람으로 보이겠지만 말이다. 웃기면서도 슬픈 말이지만 진심이다. 열심히 죽이는 사람이지만 열심히 살아내게 하고 싶은 사람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어쩌다 식물은 유행이 되었나?

식물 키우는 법, 식물 에세이도 잠깐 시류를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식물> 후에 나온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는 팔로우하고 있는 많은 독립서점들의 추천 도서였다. 같은 저자에게서 나온 것도 모르고, 지금은 식물에 대한 책이 유행을 타나 생각했었다. 조금 더 생각하니 답은 쉬웠다. 추천 시기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터진 직후였다. 갑자기 바깥의 일터에서 집 안으로 장소를 옮긴 사람들은 집에서 무언가 하고 싶어 했고, 그것으로 안정을 찾고 싶어 했다. 그건 식물에서 얻을 수 있지, 싶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키우다 보면 힘든 일도 있었을 테고, 식물에서 오는 안정만 얻고 싶은 사람도 있을 수 있었을 테다. 그렇다면 식물 에세이로 안정감을 찾는 게 제일 좋지 않겠는가. 참으로 슬픈 유행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서라도 안정감을 받아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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