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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Apr 22. 2020

[독서 기록] 수분기 없는 기록

김혜진의 <자정 무렵>(제13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작품을 다 읽고 나서 나도 모르게 '그래서 뭐 어쩌자고?'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나도 답 없이 살고 있는 마당에 남을 탓할 것이야 아니지만, 너는 왜 그러는 걸까 싶었다. 답이 없어 보였다. '나'의 집에 얹혀살면서도 친구 유리의 새 사무실에는 비싼 냉장고를 사주려고 하는 행동, 얹혀 있는 '나'의 집에 '너'의 후배들을 데려와 재우며 아량을 부리는 태도, '너'의 지인들에게 '나'를 배려하지 않고 하는 말. 


'너'의 모든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와 너가 '파트너'라는 개념으로 엮인, 한 커플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지인에게 으스대기 위해 연인을 무시하는 태도가 이해되지 않았다. 이런 게 사랑이라면 사랑을 하지 않는 편이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싶을 정도였다. 어쩌면 작품 속 '나'도 그런 마음을 내심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와 함께하는 동안 내가 포기한 것들, 앞으로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가늠해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은 알 수도 없는 그런 일들을 각오해야 한다면, 뭔가를 무릅써야 한다면 그건 너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내일은. 주말에는. 너와의 관계를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건지도 모른다.


<자정 무렵>은 읽는 내내 신경이 긁히는 느낌이었다. 너무도 어여삐 키우던 나의 화분이 죽어가 어쩔 수 없이 말라가고 있는 형태를 지켜봐야만 하는 것 같았다. '나'와 '너'가 가꾸어가던 사랑이 말라버린 식물처럼 수분기 없음을 지켜본 기분이었다. 누군가의 애정이 식는 걸 바라보는 건, 그것만으로도 나의 수분기를 앗아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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