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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May 27. 2020

[독서 기록] 다양한 일상 다반사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일이 년 전, 어느 회사 면접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자신의 전공에 관심을 더 많이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었다. 당시 책은 정말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봤다. 주로 외국소설인 경우가 많았다. 면접에서는 한국 문학에 대한 질문이 나왔고, 한국문학을 잘 모르는 나는 '전공임에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한국문학에 관심을 두어야 하지 않겠냐는 이야기도 덧붙여 들었다.

전공과 무관하게 취업하는 사람도 많은데, 전공과 관련된 일을 시작해서 괜한 말을 들었다는 생각을 물론 했다. 긍정적으로만 받아들이진 않았다. 하지만 수용할 가치가 있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해 처음 수상작품집을 읽게 되었다. 다 똑같을 것이란 예측과 달리 현대 작가들의 작품은 재미있는 것도 있었고 생각할 지점을 주는 것들도 있었다. 비판을 하려면 다 보고 해야 된다, 그 지점을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은 그 깨달음을 얻은 후 두 해째 챙겨보는 것이었다. 올해는 이 외에도 <소설보다 봄 :2020>, <미니어처 하우스> 라는 두 권의 현대작가들의 단편집을 더 보았다. 세 권 중 내게 친절하게 다가오는 도서는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현대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단편집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향에 따라 맞추어보며 좋을 듯하다. 이 이야기는 다른 분들도 지금을 살고 있는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며 쓴다.



*개별 작품에 대한 감상입니다.


강화길의 <음복>을 읽고

하이퍼리얼리즘이 이런 건가 싶었다. 많은 분들이 이 작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던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제사의 하루를 그리고 있는 <음복>의 모습은 우리 집을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많은 제사를 지내는 집들을 닮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너무 소중한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집에 오란 말도 하지 못한다는 고모들은 유독 우리 남매의 거취에 관심이 많았다. 취직은? 결혼은? 여자는 꾸며야지. 남자는 더 좋은 곳에 가서 일해야지. 당신의 자식들은 데려오지도 않으며 우리에게 해대는 이야기들에 너덜너덜해졌고, 나는 더 이상 가족모임에 가지 않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가족들은 뭐 그런 걸로 신경 쓰냐고 하겠지만 그러기도 마음먹었다. 간섭에 끝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최근에 들었기 때문이다.

<음복>은 고모들이 왜 그럴까를 필두로 여성들이 가족에게 기대받는 역할에 대해 그리고 있다. 그러다 보면 나에게도 사랑스러운 우리 엄마도 누군가에겐 고모라는 이야기도 함께 그리고 있다. 읽으면서 동의는 했지만, 그렇다고 가족들이 내게 하는 걸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읽기 괴로웠던 작품이었다.

요즘 찾아 읽는 책들에 수록된 작품들은 재미있지만 괴롭다. 현실과 너무 붙어 있는 면모들이 많은 것 같다. 언젠가 이런 시류가 유행 같다고 말했지만, 이런 시류가 계속된다면 현실에서만큼 작품에서도 힘들어져서 다른 류의 책으로 독서를 옮기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도 현실에서도 힘든 날들이다.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고

은행원을 하다가 다시 대학으로 돌아온 희원을 보며 대학에서의 한때가 떠올랐다. 2010년대의 초반의 일이었다. 학기 초반 출석을 부를 때였는데, 교수님이 한 여자 선배를 부르면서 99학번이 맞냐고 했다. 벽 옆에 혼자 앉는 자리에 앉아 있던 선배는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목소리로 그렇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희원과 강사를 보며 왠지 모르게 그 선배의 모습이 떠올랐다. 조용하던 선배의 모습이.

오랜 기간 학교를 떠나 있다가 돌아왔다는 점이 내겐 공통점으로 느껴졌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무어라고 설명하긴 어렵지만 공부를 오래 했을 것 같은 그 느낌이 셋에게선 똑같이 느껴졌다. 진득하니 하나에 매달릴 수 있을 듯한 느낌이 닮아 있었다. 학교를 오래 다닌 편도 아니고 공부에 대한 미련도 없는 편이라 내게서는 그 느낌이 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또 내게선 일하는 사람의 느낌이 났으면 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오래 공부한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힘듦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젠가는 맞는 찬 바람 같은 것. 오래 열심히 한다고 교수의 자리가 나는 것일까, 학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들이었다. 희원의 강사는 시간이 지나 사라져버린 것 같다 했지만, 그녀도 희원도 어딘가 머물 자리를 찾기를 진심으로 바라본다.



김초엽의 <인지 공간>을 읽고 

작년과 올해, 틈틈이 작품을 읽기 위해 단편집을 선택했다. 대상 수상작이 맨 처음에 나왔고, 순서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후반부에 실린 작품들을 읽을 때 힘이 빠진 적도 더러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중간중간 끌리는 작품부터 읽기로 했다. 오늘 읽은 작품은 김초엽 작가의 <인지 공간>이었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이 워낙 인기였기에 작가의 이름과 과학적 성향이 가미된 작품을 쓴다는 건 알고 있었다. 글을 직접 읽으며 체감하는 성향은 예상보다 강렬했다. 이과적 성향이 확 드러났다. 은은한 맛 따위가 아니었다.

모두가 기억할 수 있는 인지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필요 없는 정보라고 생각될 때 '세 번째 달'처럼 잊히게 된다.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정보였다 할지라도 다수를 위한 게 아니면 소멸된다.

이 부분을 보며 나의 인지 공간은 얼마나 많은 추억을 잊어가고 있을까 생각한다. 내 뇌에서도 같은 과정을 반복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몇몇의 기억은 내 마음대로, 내가 편한 대로 수정되었을 것이다. 그 과정을 탐구하고 있는 제인과 이브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김초엽 작가의 성향이 이러하다면, 단편 하나를 더 읽어보아야 할 것 같다. 나는 극도의 문과생이기 때문에 이과의 감성을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봉곤의 <그런 생활>을 읽고

2019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도 김봉곤 작가의 작품을 읽은 기억이 났다. 2년째 같은 시리즈에 실리다니, 대단한 작가님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다음 인상적이었던 건 제목이었다. '그런 생활'.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 건지는 몰라도, '그런'이 오히려 특성을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위기를 살리는 수식어였다.

작품을 읽으며, 김봉곤 작가에 대해 조금 더 세밀하게 알게 되었다. 자전적 소설을 적고 있다는 것도, 실화가 섞여 있다는 사실도. 그래서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보았다. 어렵지 않게 그가 커밍아웃을 했다는 이야기와 퀴어 소설을 쓰는 사람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보다 충격적인 건 글에 달린 댓글이었다. 작가들의 자전적 이야기임을 알게 되면 절로 대입해 보게 되는데, 작가의 프로필 사진이 공개되면 이러한 대입이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지 고민되는 댓글이었다. 내가 한 말도 아니건만 작가에게 미안해졌다.

작가와는 다른 '그런 생활'을 하고 있다. 부모님에게 미안해야 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나는 고개를 푹 수그리고 미안해하고 기죽어 있었다. 그런데 작가는 '그런 생활'을 하는 자신을 엄마에게 이해시키려고 하는 것 같았다. 상황은 거지 같았지만, 작가 자신은 자신이 있어 보였다. 작품을 읽으며 그런 작가가 참 부러웠다. 나도 힘을 내야지!



이현석의 <다른 세계에서도>를 읽고
<그런 생활>의 리뷰를 쓰면서 작가 사진에 관한 이야기를 했었다. 사진을 평가하는 댓글에 과도한 의견이라고 생각했으면서, 나는 <다른 세계에서도>를 읽고 '이 텍스트를 남자가 쓸 수 있는 것이라니!'라며 놀랐다. 반성해야지.
어디에선가 '여자들의 삶'에 대해 일반화하며 쓴 글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깊은 고찰이나 폭넓은 조사가 밑바탕 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에서였다. <다른 세계에서도>에 놀란 건 이런 얄팍함이 없는 텍스트였기 때문이고, 오히려 생각이 많아진 텍스트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임신과 여성의 일자리에 대한 생각은 따로 적지 않으려고 한다. 아직 내 속에서도 정리된 생각이 없어서. 아직은 더더 고민할 시간이다.



장류진의 <연수>를 읽고

얼마 전 읽었던 <펀펀 페스티벌>도 그렇고,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은 사람들에게 들리는 말도 그렇고, 이번 작품 <연수>도 그런데, 장류진 작가는 회사원이 쓴 일기를 읽는 느낌이 든다. 경영학과이거나 친한 경영학과생이 있다면 들어봤을 법한 CPA를 쓰는 등 사소한 것에서 회사원 느낌이 난다. 그게 신기하다. 

이야기의 중심은 출퇴근을 위해 장롱면허를 소유하던 엘리트 직장인이 운전 연수를 받는 것이다. 주인공처럼 엘리트는 아니지만, 실패를 두려워한다는 데에서는 공통된 감정을 느낀다. 나는 실기시험에서 한 번 떨어지고 난 후 다시 시도하지도 않았다. 바쁘디바쁜 현대인으로 살아야만 하는 우리는 사실 실패가 두려운 인간이 아닐까. 주인공과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게 아닐까. 

실패를 극복하자는 이야기들이 많은데, 나는 가끔 실패는 실패로 두어도 괜찮은 것 같다. 주인공이 9년 만에 운전을 할 수 있게 된 것처럼, 묵혀두면 언젠가 실패가 맛있게 삭여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실패를 꼭 바로 극복해야만 할 필요는 없는 게 아닐까 싶다.  



장희원의 <우리의 환대>를 읽고

스물일곱의 아들이 한국의 대학에 복학하지 않고 호주의 어느 대학에 들어간다는 이야기에 주인공 부부는 아들이 머무르고 있는 집으로 찾아간다. 그 하루도 아닌 기간 동안 주인공 부부가 느낀 불안함이 녹아나 있었다.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환경을 그리고 있었다. 아들에 대해 각각 다른 이유로 부부가 걱정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평론을 읽고 조금 더 확실하게 느껴졌다.

부모님이 자식에게 가질 수밖에 없는 마음을 알게 된 작품이었다. 김봉곤의 <그런 생활>에서도 그랬고 이번에도 그랬다. 걱정하지 말래도 걱정할 수밖에 없는 부모님의 마음을 작품 속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혼란한 느낌이었다. 이 안에서 작품을 선택하라고 한다면, 상위로 올라오긴 어려울 것 같다. 내가 현대소설을 이해하기 어려운 탓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친절한 소설이 좋다. <우리의 환대>는 찾아보는 맛이 있지만 친절함은 부족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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