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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riterKS Jul 28. 2020

연극 처음 봐요?

연극 보러 간 런던


스무 살에 대학교에 들어갔고, 그해 3월 처음 대학로에 가서 소극장 연극을 보았다. 표를 예매하지 않고 갔음에도 앞줄에 배정되었을 정도로 운이 좋았는데, 그때 나는 무대 조명 때문인지 바로 앞에서 사람들이 연기를 하고 있다는 것 때문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눈물이 났다. 지금 생각하면 어수룩한 모습에 웃음이 나지만, 그때는 왜 눈물이 차오르는지도 모르고 가슴도 뻐근한 게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긴장은 잠시였고 연극은 좋아졌다. 


연극이나 뮤지컬 등의 무대 공연에서만 느껴지는 감동이 있었다. 사람들이 많은 영화관보다 덜 답답하다는 점 때문에 공연장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암전 상태에서 조명이 들어올 때 느껴지는 그때의 간질간질함이 좋았다. 소극장은 배우들의 호흡이 느껴져서 더 좋아한다.


연극 이야기를 이렇게 오래 하는 건, 런던을 떠올리면 '극장'이 가장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런던아이, 빅벤, 대영박물관…… 간 곳이 여러 곳인데, 내겐 그중 그곳에서의 연극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여, 런던에서의 사진을 아예 풀지 않으면 아쉬우니 아래에 몇 장 올려본다. 2014년 당시, 휴대전화로 찍은 데다가 필터까지 입혀서 아주 아련한 사진이지만 이해해주길 바란다.)

핑크색 필터 신봉자였던 2014년





영국이 첫 여행지였던 당시, 영국 일정 중 단연 기대되는 것은 당연히 관극이었다. 반 패키지 상품으로 출발했던 나는 자유 시간 선택지 중에서 관극을 택했다. 런던을 돌아다닐 때, 가이드님은 어디서 어떤 작품을 예매할 수 있는지 알려주었고 나는 무얼 볼지 고민했다. 비행기를 타고 올 때까지만 해도 '맘마미아'와 같은 밝은 작품을 봐야겠다 생각했었지만, 선택한 작품은 전혀 다른 작품이었다.



사진에서 정답을 찾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곳에서 '오페라의 유령'을 보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상연 중인 작품 중에서 내용을 알고 있는 게 이 작품밖에 없었다. 여행을 다니며 자연스럽게 영어를 듣게 되니 느껴졌다. 


내용을 모르는 작품을 보면 
이해는 무슨 즐길 수도 없겠구나!


그래서 결정이 쉬웠다. 오페라의 유령은 줄거리도 알고, 영화관에서 영화로도 본 적이 있는 작품이었다. 당일 예매여서 자리가 3층에 있었던 것 같은데, 절벽 같은 기울기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것보다 더 놀랐던 건, 공연장을 찍어도 된다고 이야기했던 것이었다. 함께 갔던 지인은 다들 아무 말 없이 사진을 찍는데, 나만 직원을 불러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었다며 웃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진 촬영이 자유롭지 않아서 그랬던 것인데, 지인이 보기엔 내가 촌스러워 보였던 것 같다.


그다음 놀랐던 건, 인터미션(intermission, 영화나 연극 중간의 휴식 시간)에 메밀떡장수마냥 아이스박스를 메고 들어와 아이스크림을 팔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공연장에 음료수를 들고 들어가는 것도 제한되는데, 여기는 휴식 시간이라고 아이스크림을 판다고?! 그런데 그것도 무리 중에서 나만 신기해했던 기억이 있다. 


다음으로 기억나는 건, 영어로 말장난하는 걸 이해하지 못해서 나는 영국인들과 함께 웃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때 처음으로 영어를 잘했으면 좋았겠다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 점이 유일하게 아쉬웠던 것이고, 다른 것들은 신세계를 보듯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그중 지하에서 배를 타고 가는 장면을 연출한 부분은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저렇게 무대를 만들 수 있구나, 이것만으로도 나는 여기 온 값만큼의 경험을 했다 싶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방방 뛰는 날 보며 함께 공연을 본 사람들은 신기하다고 했다. 들리지 않는 대사에 감격하는 내가 더 신기하다고 했다. 그만큼 신났던 그날의 기억을 나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만큼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고 열정 넘치게 분석하는 나는 이제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날처럼 순수하게 무언가를 좋아했던 건, 스물넷이어서 가능했다. 다시 오지 못할 열정적인 애정을 쏟았던 그날이 참 그립고, 그 열정을 품고 여행했던 런던이 내게는 참 소중한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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