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고 싶은 도시 암스테르담
2018년 유럽 여행에서 최고의 반전을 꼽으라면, 나는 여행을 시작했던 날을 말하고 싶다.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가장 인상적인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뜻밖의 무언가를 만났던, 2018년의 5월의 그날을 나는 잊지 못할 것이다.
네덜란드는 튤립으로 유명하다. 5월의 시작 네덜란드로 떠난 나는 튤립 축제의 끝물에 네덜란드에 입성했다. 그래서 원래도 비싸다는 네덜란드의 물가는 어마어마하게 비쌌다. 가장 크게 느낀 것은 숙소 가격이었다. 첫 도착지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암스테르담의 숙소를 쉬이 정하지 못할 정도로, 다른 곳들과의 가격 차이로 놀랐다. 그리고 또 한 번 놀랐다. 며칠 고민하는 사이에 더욱더 열악해진 방과 더 높아진 가격 때문이었다. 그러면 암스테르담을 빼면 되는 게 아니냐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암스테르담은 뺄 수 없는 선택이었다. 바로 고흐 미술관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대부분 사람들이 좋아하듯 나는 고흐의 그림을 좋아한다. 유화의 질감을 좋아하게 된 게 고흐 때문이라고 할 만큼, 그의 붓터치를 좋아했다. 이전의 여행지들이 네덜란드와 가까웠지만, 패키지여행인 탓에 그의 그림을 못 본 게 아쉬웠고, 이번 여행에서는 그를 절대 뒤로 미룰 수 없었다. 그래서 아주 사악한 가격에도 암스테르담은 포기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비싼 숙소에도 네덜란드를 빼지 못하고 유럽여행 일정을 짰다. 첫 여행지는 암스테르담으로 정해졌다. 도착지 중심으로 찾아보던 중 네덜란드 국적기인 KLM항공이 저렴한 가격으로 나와 있었다. 그것을 타고 나는 암스테르담으로 떠났다.
이른 새벽 암스테르담에 도착했다. 숙소 체크인까지 시간이 많이 남고, 새벽에 딱히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나는 관광 인포메이션이 열 때까지 공항에 있었다. 그곳에서 관광 할인 티켓인 시티카드를 사려고 그런 결정을 했었다. 면세점과 가게도 열지 않은 새벽에 공항을 서성이며 시간을 보내다 시티카드를 사고, 시내로 향했다.
캐리어를 라커에 넣고, 나는 바로 고흐 박물관으로 향했다. 일찍 온 김에 줄을 서서 당일 티켓을 사려고 했던 것이다. 아무리 인기가 있다 해도, 이렇게 아침에 기다리면 시티카드로 살 수 있겠지 싶은 마음이었다.
그게 가장 큰 오만이었다. 고흐 박물관은 예약제였고, 시티카드로 들어가는 건 불가했다. 티켓 부스가 열자 다른 동양인이 티켓 발행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친절한 그가 기다리던 사람들에게 이 방법은 불가하다고 알려주었다.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던 그날, 나는 그렇게 첫 행선지를 잃었다.
일단, 고흐 미술관 근처에 있는 국립미술관에 들어갔다. 다행히 그곳은 시티카드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곳 소파에 앉아 침착하게 다음 날 입장 가능한 고흐 미술관 시간을 예약했다. 다행히도 다음 날 오후 늦게는 고흐 미술관 입장이 가능했다. 문제는 당일이었다. 여기에 많은 시간을 쓰려고 해놓았는데, 입장이 불가해짐으로 시간이 많이 남아버린 것이다. 고흐 미술관만큼이나 좋은 국립미술관을 모든 힘을 다 써서 관람하지 못한 건 내가 다음에 어딜 가야 할지 고민되었기 때문이었다.
국립 미술관 관람을 마치고 다시 소파에 앉았다. 밖은 새벽 사이 내린 비로 추적추적했기에, 일단 보송보송한 이곳에 앉아서 무얼 할지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시티카드 구입 시, 인포메이션에서 주었던 종이를 꺼냈다. 그곳에는 시티카드로 이용할 수 있는 것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원래 가려고 했던 하이네켄 박물관 외에도 많은 것들이 있었다. 그중 시간이 모자라 포기하려고 했던 페리 승선이 있었고, 렘브란트 미술관이 있었다. 여행에서 미술관 가는 걸 좋아하기도 했고, 하나의 미술관이 취소되었으니 다른 미술관으로 채우기로 결정했다.
국립미술관, 하이네켄 박물관 견학을 끝내고 점심을 먹고, 초콜릿 쿠키도 하나 집어 먹고, 페리를 타며 해도 많이 보고, 모든 게 다 끝난 이후 렘브란트 미술관 앞으로 갔다. 13시간 비행 중 4시간은 잘까 말까 했을 정도로 조금 잤고, 시차 적응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네덜란드의 바람을 맞으며 하루 종일 걸었던 탓에 난 이미 그 앞에서 지쳐 있었다. '가지 말까?' 하는 마음이 슬슬 위로 떠오르고 있었으나, 이미 돌아가기엔 코앞에 와버린 상태였다.
입구로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계단에 아찔했다. 엘리베이터까지 없는데 가능할까 싶었지만, 힘들면 나가도 되니 보는 데까지만 보자 싶은 마음으로 티켓을 발부받았다. 그곳 점원이 나에게 티켓을 내어주며 "렘브란트의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고 말했다. 굉장히 밝은 얼굴로.
렘브란트의 집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내가 이곳을 오래 기억하는 건 그때의 미소 때문이다. 어딘가에서 일하면서 저렇게 자부심을 가진 미소를 짓다니 신기했다. 하루 종일 돌아다녔지만, 처음으로 내게 관심을 보였던 곳이라 나도 관심을 둔 이유도 있지만, 그곳 사람들에게는 그곳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이 엿보였다. 일을 그만두고 간 상태여서 그랬는지 그 자부심이 참 부러웠다. 렘브란트가 어떤 물감을 사용했는지 보여주는 사람도, 가게 점원도 모두 행복해 보였다. 렘브란트의 삶이 그리 행복했던 것 같지는 않지만, 지금의 그는 행복할 것이다. 자신의 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곳을 지켜주고 있으니까. 그래서 나도 언젠가 일을 시작하면, 저런 마음이 드는 곳에서 시작하면 좋겠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미소 때문인지, 피로를 이기고 구불구불한 계단을 모두 다 올라갔다 내려왔다.
좋은 서비스란 구매자들이 구매한 데에 대해 후회하지 않게 해주는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나는 관광 티켓을 그곳에 사용한 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곳에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러 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환영한다는 태도는 구매를 뿌듯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렘브란트가 누구였는지 다시 한 번 찾아보게 만들었다.
고흐 미술관이 나빴던 건 아니다. 최장 시간 머물렀고, 오디오 가이드, 엽서 등을 사느라 돈도 많이 썼다. 그곳에서 생각나는 건, 고흐의 그림들이다. 그걸 잘 이해하게 구성했다는 사실. 하지만 직원들의 얼굴까진 기억나지 않는다. 그 차이가 추억이 되는 차이를 만든 것 같다. 그래서 더 좋은 시스템이 없었던 곳이지만, 난 고흐 미술관보다 렘브란트 미술관을 더 오래 기억할 것 같다. 오랜 기억에는 그날의 감정이 방부제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언젠가 다시 한번 암스테르담에 가게 되는 날이 있다면 렘브란트 미술관에 다시 가고 싶다.
그곳에서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당신들의 미소가 생각나서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