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를 담당하자마자 주어진 서류철 하나. 거기에는 7개 과제의 관리에 관한 서류들이 들어 있었다. 방산지원사업 중 하나인 "국방벤처지원사업"의 과제들이었다. 나는 당시에 무기체계 또는 전력지원체계의 획득구조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과제를 담당하며 한 업체를 방문하게 되었다. 인사도 드릴 겸, 과제 진행 현황을 파악하는 것을 겸해서였다. 업체에서는 성과물로서의 한 시제품을 보여주며 말했다.
"과제를 완료하면 군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과제 담당자는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고, 한 번만 도와달라는 듯한 처량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아, 네, 본부에 한번 물어보고 조치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나 또한 이런 대응이 처음이라, 본부 핑계를 대며 상황을 모면할 수밖에 없었다.
업체방문을 끝내고 돌아와서 본부에 이야기를 했다. 업체에서 군 적용을 요청한다고 하니, 본부에서 돌아오는 답변은 단호했다.
"아, 그거 과제 시작할 때 업체에 말했는데."
"국방벤처지원사업은 군 적용 의무가 아니라서 우리가 도와주지 못한다고."
업체가 알아서 해야죠.
결국, 본부에서의 답변을 업체에 전했고 무언가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 아쉬웠다. 하필이면 엎친데 덮친격으로 업체에서 개발기간 연장요청을 했는데, 규정상 2개월 전에 요청해야 했다. 하지만 1개월 남은 시점에 연장 요청을 하는 바람에 승인되지 못했다. 연장기간에 관해서는 관리자인 나도 체크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내 책임도 있었다. 여러모로 업체에게는 미안함과 아쉬움이 커져갔다.
과제는 결국 성공으로 끝났고, 이에 업체에서는 다시 한번 항변했다.
"아니, 과제를 성공시켰는데 왜 군에서 안 써줘요?"
이제는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이 아닌 불만과 억울함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국방벤처지원사업의 업체부담은 25%이고, 현물의 비중을 빼면 순수 현금은 1년에 500만 원 밖에 들지 않는 사업이다. 하지만 해당업체에서는 물건을 더 잘 만들기 위해서 업체 현금을 수천만 원 더 들인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수천만 원이나 더 투자하여 완성하였지만, 군에 적용을 해주지 않는 것에 불만이 들 수밖에 없었다.(그럼에도 기술료까지 납입해야 했다.) 하지만 나의 입장도 본원과 동일하게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단지 기업이 사업의 성격을 애초에 잘 못 알았기 때문에 발생한 불만일 뿐이라고.
지금 돌이켜보면, 업체에서 사업의 성격에 맞게 선택을 하고 수행을 해야 하는 것이 맞다. 다만, 방산이 처음인 업체에서는 잘 모를 수 있기 때문에, 방산육성 담당자가 업체 면담을 통해 이런 부분들을 같이 고민했으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기업에서는 불필요한 투자를 하지 않을 수도 있었고, 보다 효율적인 향후계획을 수립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아있다.
특히 국방 R&D사업이 아닌, 지원사업(비 R&D)의 성과물 활용에 있어 이러한 사례들이 빈번히 발생한다. 이는 기업에서 해당사업의 성과물이 향후 어떻게 활용되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업에 따라 성과물의 활용이 달라지기 때문에, 방산육성 담당자는 그런 부분을 기업과 면밀하게 이야기하여 가장 효과적인 사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당연히 기업의 사업구상에 따라 국방벤처지원사업도 기업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그런 사례들도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