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태 Jan 09. 2024

화학탐지 시험은 어디서?

feat. 화생방방어연구소


국방벤처지원사업을 통해 "화학작용제 탐지기"를 개발하는 업체였다. 과제 종료기간이 다가오고 큰 난관에 봉착하고 만다. 과제 성패를 좌우하는 시험평가를 수행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과제 수행 전에는 해외에서 인증을 받으려고 했으나, 해외 인증업체와 기간이 맞지 않아 결국 국내에서 시험평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화학작용제에 대한 시험을 진행하는 게 쉽지 않았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화학무기금지협약(CWC)에 따라 화학 무기를 만들 수 없다. 다만, 시험에 필요한 시료 정도만 허용되고 있다. 이런 금지 협약이 있기 때문에 화학작용제 시험을 위해 시료를 만들 수 있는 곳이 국내에는 거의 없다. 업체에서는 시험을 해 줄 기관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과제는 실패로 끝나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우선 과제 기간연장 신청을 하도록 하여 시간을 벌었고, 국내 화학작용제 생산이 가능한 곳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생각이 든 곳은 "화생방방호사령부"였다. 화생방방호사령부 예하에는 "화생방방어연구소"가 있다. 화생방방어연구소는 국제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서 공인한 실험실이며, 군내 화생방 관련 시험 인증을 전담하고 있다.(KOLAS인증기관) 하지만 홈페이지가 따로 없어, 민간에서 어떠한 절차로 접근해야 할지 알기가 힘들다. 다행히 나는 직업군인 시절에 화생방방호사령부에서 근무했었기 때문에 직접 연락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화생방방어연구소에서 민간업체의 시험평가도 해 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다.(물론, 유료다.) 다만, 절차가 화생방방호사령부의 해당부처를 통해서 가능했다. 해당부처에 담당자는 현역 군인이었고, 시험평가 의뢰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협의를 진행했다. 그리고 답을 주겠다던 그 친구는 일주일이 지나도 깜깜무소식이었다. 시간이 촉박한데, 마냥 기다릴 수는 없었다. 비록 전역하여 이제는 민간인이지만, 내게는 아직 사령부 지인들이 남아있었다. 


"시험평가 의뢰를 했는데, 이게 좀 진행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업체에서 좀 긴급한 상황이거든."

지인에게 정식적인 절차를 밟았음에도, 진행이 느린 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아, 그래? 내가 한번 확인해 볼게."

고맙게도 지인이 신경 써서 알아봐 줬고, 그 효과는 바로 나타났다. 이후 화생방방어연구소와 업체를 연결해 주었고, 다행히 시험이 잘 진행되었다. 그리고 과제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다. 이 사례는 군에서의 인적 네트워크를 사업관리에 활용한 첫 번째 경험이었다. 


군이나 방사청, 국과연이나 기품원 등에서의 고경력자들이 민간업체 고문으로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아마도 이렇게 (공개된) 인터넷으로 접근이 어려운 부분을 해결하고자 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군의 고경력자(예비역 대령 이상)가 있는 경우, 아무래도 군부대 방문이나 군 장비 장착시험 등에 대한 진행이 수월하게 이루어지곤 한다. 하지만 고경력자가 있다고 다 좋지는 않다. 군 고경력자라고 해도 평소 인간관계의 밀도에 따라 협조가 잘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다. 그리고 후배들에게 부탁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업체에서는 적시적소에 효율적으로 고경력자를 활용할 수 있어야만 기대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사업관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해결일 것이다. 사업의 진행 중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리고 그 실마리를 찾기 위해 보통 인적자산을 활용한다. 이것이 잘못 활용되면 부정부패로 연결될 소지도 분명 있다. 하지만 인지상정이라는 말이 통하는 게 현실이다. "법과 규정이 허용되는 범주 내"에서 누군가 조금만 더 신경 써주거나, 정보를 알려주는 정도만으로도 문제해결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정보획득이 어려운 국방분야에서는 이러한 인적자산의 중요도가 매우 높다. 앞으로도 사업관리에 있어 문제해결을 위해 다양한 기관과의 인적 네트워크를 넓혀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p.s.) 업체에서는 국방사업의 과제 중, 화생방 관련 시험은 화생방방어연구소에서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었으면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군에서 왜 안 써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