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육성 업무에 대한 슬럼프가 찾아왔다. 해당 업무를 수행한 지 6년이 지났는데, 요즘에는 맥이 빠졌다고 해야 할까. 힘이 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생각하는 목표가 너무 높아서,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벌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스스로 고민에 빠졌고, 브런치에 글을 쓰는 횟수도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방산육성을 바라보는 두 관점
방산육성 업무에는 민간의 중소벤처기업 성장을 지원하는 일을 포함한다. 국방에 적용할 만한 좋은 기술을 가진 업체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 방산육성 업무의 한 줄기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존재한다. 방산육성 실무자로서, 누구보다 업체와의 교류가 많은 입장에서는 기업의 성장을 응원한다. 그리고 지원하는 기업이 성장하여, 국방에 발을 들여놓을 때 업무의 보람을 느낀다. 하지만 국가적 입장에서는 조금 다른 듯하다. 국가라는 큰 주체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떤 기업의 성장보다는 국방의 기술 발전이 우선일 수 있다. 이 관점 차이가 이상과 현실의 간극을 만든다. 국가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기업들의 기술을 발굴하고 가장 좋은 기술을 선택하는 것이 주된 입장이다. 이는 마치 자연선택을 연상시킨다. 자연선택은 냉정하게 수많은 경쟁을 유발한다. 경쟁이 많을수록 자연은 더욱 적합한 유전자를 찾을 수 있다. 자연은 인간의 성장만을 지지하지 않는다. 지구의 전 생명에 대해 경쟁하고 선택한다. 이처럼 수많은 기업 간의 경쟁과 기술개발이 난무하는 유전자 풀에서 좋은 인자를 선택하는 것이 국가적 입장이다. 따라서 국가에서 말하는 방산육성이란, 이러한 국가적 입장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업체를 지원하는 실무자는 단순히 이렇게 냉정하게 업무를 처리할 수 없다. 내가 지원하는 기업이 성장하길 원하는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두 가지 입장의 충돌이 일어날 때, 이상과 현실의 간극이 생기게 된다.
초심으로 돌아가자
방산육성을 위해 고유하게 하고 있는 일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기업의 연구를 지원하는 일이다. 기업의 연구를 위해 연구요소를 과제화하여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예전에는 이 연구과제가 국가 R&D도 아니며, 단순히 업체를 지원하는 비 R&D 과제이기 때문에 큰 비중을 두지는 않았다. 단순하게 행정 업무로만 치부하고, 좀 더 고상하고 있어 보이는 일을 하고자 했다. 기업에게 좀 더 있어 보이고, 뭔가 지원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한 일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과제관리에도 수많은 활동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비 R&D 과제의 중복성 검토를 어떻게 할 것인가, 과제선정 평가 기준은 어떻게 할 것인가, 평가 위원 선정은 어떻게 할 것인가, 성과물 활용은 어떻게 할 것인가 등등. 수많은 요소들을 연구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 현재로서 중소기업이 방산에 진출할 수 있는 경로는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다. 지금까지 해 왔던 일을 보면, 더 쉽고 빠른 길은 없는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답이 안 나오는 이러한 고민 속에서 점점 흥미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우선은 기업의 연구개발 지원하는 일에서부터 시작해야겠다. 연구개발 지원에 관심을 기울이고, 기업의 연구개발 성공이 보람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산육성 업무일지도 모르겠다.
연구개발 지원을 기술적 요소보다 행정적 요소 중심으로만 생각했을 때는 대체적으로 관리가 소홀했다. 예를 들어 과제 선정 평가를 할 때 위원 선정에 있어 비 전문가들로 구성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과제의 평가에 있어서도 옛날의 평가표를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해당 사업의 특수성과 목적에 맞는 평가가 이루어지기 힘들었다. 이와 같은 일은 아마도 다른 분야 사업에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일 것이다. 제일 큰 문제는 평가위원의 선정 부분이다. 해당 기술을 평가할 만한 전문가를 찾기가 어렵기도 한데, 특히나 신기술 개발에 있어서는 해당 위원 선정이 정말 어렵다. 하지만 이를 그냥 지나치고 아무 위원이나 섭외한다면 제대로 된 평가가 될 수 없다. 이 같은 일도 예전에는 문제로 삼지 않았다. 그저 해왔던 데로 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이러한 하나하나 요소도 제대로 될 수 있게 바꾸어 나갈 생각이다. 그 속에서 나름 보람을 찾아 슬럼프를 극복하고자 하는 심산이다.
지금까지는 기업 지원을 위해 어떻게 하면 방산에 진입할 수 있는 최적의 경로를 찾을 수 있는가에만 중점을 두고 고민해 왔다. 물론 이 말도 맞지만, 지금으로서는 한정된 경로밖에 없는데, 다른 길을 찾고자 하는 노력을 하는 일은 업무 슬럼프에 빠지게 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제는 목표를 조금 현실적으로 낮추어 기업에서 연구하고자 하는 기술을 함께 발굴하고, 기술개발을 성공적으로 해 낼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에 전념해야겠다. 물론 연구 성과물의 활용방법에 있어 고민하는 일도 병행해야 하겠지만, 방산진입이라는 거대한 목표보다 기업의 기술개발이라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야겠다. 이제부터는 지원하는 기업의 기술개발 성공을 목표로 하여 기업과 함께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기업의 과제 진행이 잘 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에 매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