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의 불명확한 목적과 중복성(유사성) 검토
국방기술진흥연구소는 방사청의 국방 R&D사업과 비 R&D사업의 대부분을 전담하고 있다. 한 해의 사업 과제를 합하면 그 규모가 1조 원에 달한다. 이러한 R&D사업과 비 R&D사업의 혼재 속에서, 과제 선정을 위한 중복성(유사성) 검토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고 있다.
국방 R&D사업과 비 R&D사업
국방전력발전업무 훈령 등의 내용을 고려, 국방 R&D사업으로는 "무기체계연구개발", "핵심기술연구개발", "전력지원체계연구개발", "미래도전기술사업", "신속시범사업"이 있다. 그 외에도 핵심부품국산화, 민군기술협력사업도 국방 R&D 범주에 넣을 수 있다. 이 외의 사업은 방사청의 R&D예산으로 진행하지 않는 비 R&D사업이다. 국방벤처지원사업, 무기체계개조개발, 글로벌방산강소기업육성사업, 인큐베이팅사업 등등 많은 사업들이 있다. 그리고 국방 R&D(보안과제 제외)는 관련하여 적용할 수 있는 국가연구개발 혁신법이라는 상위 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비 R&D사업의 경우에는 상위 법이 없고, 오로지 내규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사업마다 내규가 달라 관리방법이 상이하다. 대부분의 국방 R&D사업은 전담기관에서 사전 기획을 한다. "결정소요"와 "수요조사"를 바탕으로 기획하여 지정과제로 공모하는 "Top-down" 형태의 사업이다. 반면에 비 R&D사업의 경우에는 자유공모를 통해 과제를 선정하는 "Bottom-up" 형태의 사업이다. 이 때문에 지정공모에 비해 자유공모로 응시하는 과제 수가 훨씬 많다.
국방 R&D사업의 성과물은 "NTIS"에 등록해야 한다. 그래서 국방 R&D과제 간 중복성 검토는 NTIS만을 활용하면 충분하다. 하지만 비 R&D 사업을 중복성 검토에 포함시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 R&D과제의 성과물 관리가 행정기관마다 다를 거라 생각이 드는데, 아마도 대부분은 NTIS와 같은 특정 연구개발 데이터 등록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관리체계가 미흡하다 보니 성과물의 중복성을 검토하는 게 힘들 수밖에 없다. 지정공모의 경우에는 사업에 따라 다르겠지만, 수요조사 때 제안한 업체 이외에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참여하지 못한다. 반면 자유공모의 경우에는 수십 개의 기업이 참여하므로, 경쟁률이 10대 1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더 문제는 실무부서에서 국방 R&D에는 심혈을 기울이지만 비 R&D는 약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과제 수도 많고 앞서의 중복성 검토 문제를 해결하려면 많은 인력과 노력, 시간이 투입되어야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비 R&D사업의 중복성은 NTIS 뿐 아니라, 관련 전담기관이나 부서에 검토요청을 하는 등 담당자가 직접 뛰어서 검토할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
국방 R&D사업과 비 R&D사업의 목적
그렇다면 국방 R&D사업과 비 R&D사업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단순히 예산편성만으로 이야기하기에는 부족하다. 발주하는 국가 행정부처에서 국가에 필요한 "자산"으로 활용할 것인지, 아니면 기업의 기술성장 "지원"의 목적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확실히 구분하는 게 필요하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 A라는 필요한 물건이 없어서, 돈을 주고 제작을 맡기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반면, 내 아들이 한번 배워서 A라는 물건을 만들고자 할 경우가 있다고 하자. 이때 필요한 경비를 위해 돈을 주는 것이다. 그 돈을 가지고 아들은 A라는 물건을 만들기 위해 A와 유사한 것도 만들어보고 하면서 기술을 배워나가게 된다. 전자의 경우 국방 R&D사업이고, 후자의 아들을 지원하는 경우는 비 R&D사업과 비슷하다.
이렇게 볼 때, 비 R&D사업에 중복성 검토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 만약 국가 R&D과제로 A라는 물건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기업이 기술성장을 위해 A라는 물건을 유사하게 만들어 보려고 하는 경우, 국가 "자산"이라는 목적에 비추면 불필요하지만, 업체의 기술성장 "지원" 측면에서 보면 필요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대부분의 비 R&D사업은 군 소요와 직접 연관이 없다. 합참의 결정소요가 아니며, 국방중기계획에 반영이 되었거나 앞으로 반영할 소요도 아니다. 따라서 구매자가 없는 물건을 만드는 것으로, 국가의 유형적 자산을 목적으로 할 게 아니라, 오로지 기업의 기술력 향상과 방산육성이라는 무형적 자산 관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국방 R&D와 비 R&D에 대한 명확한 초점이 없는 경우에는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과제 관리뿐 아니라 평가, 성과물 활용, 기술료 등 수많은 부분에서 아이러니한 점이 발견되며 과도하거나 불합리한 일들이 발생한다. 이 부분은 비단 전담기관에서만 고려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다. 과제를 제안하는 기업도 명확한 차이를 알고 접근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에서 비 R&D사업 성과물이 군에 바로 적용이 안 되는 부분에 대해 불만을 가지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렇게 전담기관뿐 아니라 기업에서도 동일하게 사업의 목적을 분명히 이해해야만 관리가 될 수 있다. 비 R&D사업을 하는 경우, 기업에서는 기술 성장 측면에서 생각하여 이후 국방 R&D사업을 통해 방산에 진입하겠다는 목표를 세워야 하고, 동시에 전담기관에서도 기술성장 측면과 미래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관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국방부 및 방위사업청에서 국방 R&D사업과 비 R&D사업에 대한 목적을 명확히 하고, 그에 맞는 관리체계를 정립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