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시범사업과 기술의 신속 적용
바람이 잠든 항구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배들이 묶여 있었다. 어떤 배는 출항 준비를 마쳤지만 돛을 올리지 않았고, 어떤 배는 아예 설계 단계에서 멈춰 있었다. 한구석에 작은 배 한 척이 흔들리고 있었고, 그 옆에서 한 노인이 조용히 지도를 펼치고 있었다.
“당신은 어디로 가려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그의 손에는 낡은 나침반과 갈색으로 변색된 해도가 들려 있었다.
“나는 이 배로 기술의 섬을 찾아 떠날 겁니다. 하지만 이 항구를 떠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아요.”
우리는 배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선실에는 항해일지와 무수한 서류들이 쌓여 있었다. 바닥에는 부서진 나침반이 흩어져 있었다.
“이 배는 ‘신속의 배’입니다. 빠르게 목적지에 도달해야 하는 배죠. 그러나 이 배는 출항도 하기 전에 너무 많은 짐을 실어야 합니다. 서류, 심사, 검토, 그리고 또 다른 서류들...”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에는 이 배가 빠르게 항해할 거라 믿었죠. 하지만 준비만으로 1년이 걸리고, 항해를 위한 연구가 2년, 검증이 또 1년… 그 시간이 지나면, 이 배는 더 이상 신속하지 않습니다.”
나는 서류 한 장을 들어 올렸다. 그 위에는 긴 절차와 멈춰버린 숫자들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우리는 다시 갑판으로 나왔다. 저 멀리, 큰 배들이 거대한 돛을 펼치고 있었다.
“저 배들은 체계기업의 배입니다. 튼튼하고 거대하죠. 하지만 이 작은 배는 가벼워야만 합니다. 처음부터 대륙으로 떠나는 항해는 이 배에게 너무 가혹합니다.”
나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이 배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는 해도를 펼쳤다. 그 위에는 작은 섬들이 그려져 있었다.
“신속의 배는 가까운 섬부터 찾아가야 합니다. 완벽한 항해를 꿈꾸기보다는, 작은 기술 하나라도 군에 도달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아야 합니다.”
그는 작은 섬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섬은 상용화된 기술이 필요한 섬입니다. 이 배가 직접 그곳에 기술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부품 단위로 체계기업에 공급할 수도 있고, 군에 상용제품을 납품할 수도 있습니다.”
부두 끝에는 관리인이 서류를 뒤적이고 있었다. 그는 배에 올라타더니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배는 아직 항해 준비가 끝나지 않았습니다. 절차를 더 거쳐야 합니다.”
노인은 관리인의 눈을 마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절차는 필요합니다. 하지만 절차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 배는 항해를 위해 만들어졌고, 이 배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기술도 함께 멈출 것입니다.”
관리인은 아무 말 없이 서류를 덮고 배에서 내려갔다.
그날 밤, 작은 폭풍이 항구를 덮쳤다. 신속의 배는 출항도 하지 못한 채 부두에 묶여 있었다.
“기술은 바람과 같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바람은 오래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기술은 빠르게 변화하고, 그 흐름을 잡지 못하면 사라져 버립니다.”
나는 그의 말에 깊은 무게를 느꼈다.
“그렇다면 이 배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는 작은 나침반을 나에게 건네주었다.
“이 나침반은 올바른 방향을 가리킬 것입니다. 이 배는 멀리 떠나기보다 가까운 섬부터 찾아가야 합니다. 기술이 군에 직접 도달할 수 있는 작은 통로를 찾아야 합니다.”
며칠 후, 신속의 배는 마침내 출항했다.
작고 가벼운 배는 거대한 체계기업의 배들 사이를 비집고 나아갔다. 작은 섬에 도착한 배는 상용화된 기술을 군에 전달했고, 부품은 체계기업의 손에 들려 더 큰 장비에 장착되었다.
그 과정에서 배는 여러 번 흔들리고, 폭풍우에 휩쓸리기도 했지만 결국 작은 기술들이 항구를 떠나 새로운 목적지에 도착했다.
몇 달 후, 나는 다시 항구를 찾았다. 신속의 배는 작은 항로를 따라 항해를 시작했고, 군의 작은 부대 몇 곳에 기술을 전달했다.
“당신의 항해는 성공했습니까?”
그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이 배는 이제 움직이고 있습니다. 큰 대륙을 찾기보다는 작은 섬들을 찾아다니며 기술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바다 저편에는 거대한 배들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신속의 배는 그들 사이를 가볍게 오가며 새로운 섬을 발견하고 있었다.
“신속은 속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방향의 문제입니다. 작은 기술이라도 올바른 항로를 따라간다면, 군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별들이 반짝이며 새로운 항로를 비추고 있었다.
“기술은 빛과 같습니다. 그리고 신속의 배는 그 빛을 따라갈 뿐입니다.”
바다는 잔잔했고, 신속의 배는 또 다른 섬을 향해 천천히 항해를 시작했다.
현재 민수기술을 빠르게 도입하기 위한 신속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방사청 주관의 신속시범사업뿐 아니라, 각 군에서도 필요에 따라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신속시범사업의 결과물이 군에 적용되기 위해서는 군 소요 결정과 국방중기계획에 반영되어야 하는 후속 절차가 남아있다. 이 절차 간의 간극을 좁혀야 하는데, 아직은 원활하지 않은 실정이다. 신속시범사업만이 신속하게 군에 도입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을 가진 기업이 적절한 사업을 통해 기회비용 손실 없이 군에 진입하게 되면, 그 역시 신속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