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 고시가 아동학대? 엄마가 더 아프다

대치동 7세 고시를 겪고 나서.

최근 7세 고시에 대해 여러 언론과 교육 전문가들이 비판을 하였고, 그 여파는 일파만파 퍼졌다. 대치동에서 7세 고시를 몇 년 전에 겪은 나로서는 '왜 이제야 호들갑이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쌍둥이들이 7세가 되고 나서 서울로 갑자기 이사를 오게 된 나는 두 아이가 동시에 갈 유치원이 없어 어쩔 수 없이 두 자리가 있었던 대치동 영어유치원에 등록하게 되었다. 지방에서 즐겁게 아이들이 유치원을 다니고 나서 본 대치동의 모습은 정말 처음부터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2월 같은 반 엄마들이 불러서 간 자리에서 엄마들이 좋은 외국인 선생님을 우리 반 선생님으로 뺏어와야 한다고 원장님께 따지러 가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나는 영혼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엄마들을 따라 원장님께 따졌던 현장이 기억이 난다. 대치동 엄마들의 '열성'과 '과격함'을 격렬하게 느끼며 우리 아이들의 대치동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상하다 느낀 건 여름이 좀 지나서였다. 친하게 지내던 아이 엄마가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아니 글쎄, 000이랑 000, 담임선생님께 매일 따로 숙제받아간 거 알고 있었어요? 우리 빼고 자기들만 영어학원 테스트 대비 따로 시키고 있었어요" 그때 정보에 발 빠른 엄마들이나 첫째를 대치동에서 키워본 둘째 엄마들은 소위 말하는 빅 3 영어학원에 합격하기 위해 일찍부터 아이들을 트레이닝시키고 있었던 것이었다. 000이라는 매우 유명한 독해문제집이 있고, 그걸 무조건 몇 단계까지 풀어야 학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육학 박사로서의 뚜렷한 교육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 나는 그 엄마의 말에 속상했겠다고 맞장구를 치면서도 '저건 아동 학대야, 저렇게까지 일찍 안 해도 돼'라는 생각을 확고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론적으로 피아제나 비고츠키의 아동발달단계에 기초해 보았을 때, 엄마들과 영어유치원은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나서 얼마 후 아이들이 다니던 영어유치원에서도 전체적으로 영어학원 대비 준비에 들어갔다.


한날한시에 내 배에서 똑같이 태어난 두 아이였지만, 성향을 너무나 반대였다. 한 명은 자유분방하고, 겁이 많으며, 앉아서 뭘 하는 걸 너무 싫어했다. 또 나머지 한 명은 앉아서 차분하게 과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했고 성취욕구와 지적 호기심이 높았다. 개성이 뚜렷하고 성향이 서로 다른 아이를 한 교육기관에 보낸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유치원에서 영어학원대비 훈련이 시작되자, 자유분방한 한 명은 유치원에 안 들어가겠다고 유치원 입구부터 도망 다니기 시작했다. 한 명은 가겠다고, 한 명은 가지 않겠다고 난리를 피는 통에 그해 여름은 정말 진땀을 많이 뺐던 것 같다. 담임 선생님께 우리 아이들은 빅 3 학원에 안 붙어도 되니 학원 대비 공부를 시키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고 나서야 그 모든 소동이 잠잠해졌다.


10월부터 본격적인 영어학원 입시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나는 그 모든 현실에서 한 발 떨어져 관망하는 엄마였지만, 나를 챙겨주던 단 한 명의 엄마가 테스트 예약부터 알려주어서 몇 개의 학원 테스트를 볼 수 있었다.


첫 테스트를 보러 갔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그 학원은 아이들이 테스트를 끝내면 바로 나갈 수 있게 해 주는 '인간적인' 학원이었다. 두 시간 동안 테스트가 끝나기 전까지 아이들을 못 나가게 하는 학원이 다수였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 테스트에 들어가고 친구 엄마와 커피숍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커피를 시키고 10분쯤 지났을 때였나 학원에서 첫째가 시험을 다 쳤다고 전화를 받았다.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면 그렇지, 2시간이 걸린다는 시험을 15분에 끝낸 첫째가 웃기고 귀여웠다.


아이를 데리러 가던 그때 엘리베이터에서 또 다른 엄마도 함께 탔다. 속으로 저 엄마도 전화받았나 보다 하고 생각했는데, 학원에 내리자마자 소리치는 그 엄마를 보았다. "내가 뭐랬어? 천천히 글을 끝까지 읽으라고 했지? 15분 만에 나오면 어떡해?" 학원 문을 열자마자 자신의 아이를 보며 소리치는 그 엄마를 보며 첫째와 나는 눈치를 보며 쭈뼛쭈뼛 학원을 나왔던 기억이 난다. 나는 웃으며 너무 고생했다고 말해줬고, 첫째는 자랑스럽게 시험 문제를 다 읽고 잘 풀었다고 말했다. 문제를 그림보듯 보고 나왔단 얘기인가... 뿌듯해하는 우리 첫째의 모습에 그냥 웃음이 나왔다.


10월부터 시작된 입시테스트는 2월이 되어도 끝이 나지 않았다. 내 주위의 엄마들은 학원이 하나하나 떨어질수록 피폐해 갔고, 그녀들은 아이들을 점점 옥죄어갔다. 그즈음 내가 제일 많이 들었던 말은 "붙을 때까지 시험 보는 거야. 네가 붙을 때까지 시험 봐야 해"였다. 우리 반 어떤 엄마가 아이가 영어학원에 계속 떨어지자 영어유치원에 가서 "내가 여기 3년 동안 돈을 얼마를 썼어요? 이렇게 다 떨어지는 게 말이 돼요?"라고 대차게 따지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린다. 영어학원에 계속 떨어지자, 영어유치원을 끝내고 바로 영어학원 대비를 해주는 서브 학원으로 보내기 시작하는 엄마들도 많았다.


그 아이들도 불쌍했지만 사실 더 불행해 보이는 건 엄마들이었다. 그녀들도 처음 엄마를 해 보고, 처음 겪는 아이의 좌절이었기에 허둥지둥, 아등바등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나도 그런 걸 겪기 전에 아이들을 지나치게 공부시키는 부모들을 보고 어릴 때 공부를 안 했거나, 못했던 사람들일 거라 단정 지었었다. 하지만 내가 대치동 7세 고시를 겪어보니 그렇게 시키는 엄마들도 다 고학력자나 전문직이었다. 자신들이 열심히 살아온 만큼, 그 방식 그대로 아이들도 열심히 양육하려는 모습이 결국에는 좋은 학원에 넣기 위한 노력으로 나타나는 것 같았다. 아이들은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지만, 엄마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나 때문에 아이가 뒤쳐지는 건 아닌지, 다른 발 빠른 엄마들처럼 7세 초부터 영어학원 준비를 했어야 하는 건 아닌지 끊임없는 후회와 방황을 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은 외부 사람들이라면 '미친 엄마들' '아동 학대하는 엄마들'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나도 대치동에 들어오기 전까지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처음 엄마가 되고, 대치동이라는 분위기를 처음 겪어보니, 나보다 더 잘난 것 같은 사람들이 아이들을 좋은 학원에 넣기 위한 모습을 보고 엄마들이 느끼는 혼란과 좌절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결국 정말 아픈 건 엄마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나는 교육학을 전공했고, 교사를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교육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 역시 흔들리고 불안했던 게 사실이다. 아이가 고통스럽지만 이것을 잘 견뎌야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는 엄마들, 아이와 관계가 나빠지더라도 우리 아이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하는 엄마의 마음. 누가 그 엄마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위한 영어유치원, 빅 3 영어학원이 아니라 처음 엄마하는 그녀들을 위한 마음유치원이 더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