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치동에서는 7세 고시가 끝나면 곧바로 엄마와 아이들은 황소 입시 준비로 돌입한다. 초등학교 2학년 11월에 첫 시험을 보는 황소는 그야말로 시험 날 대치동에서 장관을 이룬다. 몇천 명의 아이들과 부모가 황소 앞에서 줄을 지어 시험 장소로 향하는 그 모습, 신문기사에 매번 오르는 바로 그 모습이다. 엄마들은 시험장에 들어가는 아이에게 천천히, 문제를 끝까지 읽고, 계산 실수를 하지 말라는 당부를 전한다. 시험장에 들어가는 아이보다 밖에서 들여보내는 엄마가 더 긴장돼 보이는 것은 비밀이다.
시험 당일보다 더 진기한 광경은 결과 발표날 벌어진다. 전국 동시에 치러진 황소 입학시험 결과는 1등부터 꼴찌까지 점수와 순위가 학원 블로그에 공개된다. 초등학교 2, 3학년 아이들의 수학 성적 순위가 정해지는 것이다. 수능도 등급으로 나오는데, 수능도 전국 등수로 나오지 않는데 정말 기괴하기 짝이 없다. 그 결과에 따라 황소 입학을 대수롭게 생각지 않았던 엄마들도 아이의 전국 등수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황소를 대비해 주는 학원은 소위 '송아지학원'이라 불린다. 대치동에서는 황소에 대비하기 위해 거쳐야 한다는 일종의 코스 학원들이 있고, 엄마들은 입학시험에 떨어졌을 때 황소 시험만 대비해 주는 송아지 학원들을 찾아 나선다. 그전까지 아이들의 황소 고시를 폄하하고,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야라고 확신에 차 있던 엄마들도 이때부터 조급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다른 엄마들처럼 발 빠르게 황소 준비를 시켜줬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내가 이미 늦은 건 아닌지, 나의 노력 부족 때문에 내 아이가 처음부터 뒤처지는 것은 아닌지. 엄마의 불안함과 아이에 대한 사랑, 학원의 상술이 서로 시너지가 나면서 소위 그 핫한 '황소 입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황소에 꼭 보내야 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이마다 다르다'이다. 그 학원에 못 가서 안달낼 필요도, 높은 반이라고 뿌듯할 필요도 없단 얘기다. 난 운이 좋게도(?) 두 아이가 모두 황소 시험에 붙었다. 수학을 더 잘한다고 생각했던 둘째 아들은 첫 번째 시험에서 떨어졌고, 두 번째 시험에 합격하였다. 수학에 흥미도 없고 잘 못한다고 생각했던 첫째 아들은 한 번에 붙었다.
첫째는 2월부터 황소를 가기 시작했는데, 첫날 학원에 갔다 오자마자 황소에 안 가겠다고 난리였다. 그래도 한 달만 다녀보자고 통사정을 해봤는데 우리 아이도 나날이 자기가 황소를 다니지 않아야 할 이유에 대해서 점점 논리적으로 말하였다.
먼저 황소는 너무 엄격하고, 시험 점수로 인해서 업그레이드될 확률보다 다운그레이드될 확률이 높아서 의욕이 안 생긴다는 것이었다. 또 벌점제도가 있어서 벌점이 쌓이면 아웃당하는 제도가 너무 힘들게 느껴진다고 했다. 자기는 뭔가 열심히 해서 성취를 해내는 그런 구조의 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나를 설득하기 위한 첫째의 수작이었겠지만 나도 아이의 말에 너무 납득이 되어서 한 달도 안 되어서 황소를 그만뒀다. 그리고 아이의 말처럼 수소문해서 열심히 했을 때 성취를 할 수 있는 학원, 숙제를 다 하거나 시험을 잘 치면 '스티커 주는 학원'을 찾아 보내기 시작했고 아이는 즐겁게 학원에 다니며 수학을 배웠다.
둘째는 2월 시험에 합격해서 비교적 높은 반에서 황소 생활을 시작했다. 지적 호기심이 높고, 체제에 순종하며 수학을 좋아하는 아이여서 황소를 너무 좋아했다. 나는 오히려 '황소가 재미있는 이유가 뭐가 있지?'라고 생각했으나 둘째가 황소를 좋아하는 이유는 의외로 다양했다. 선생님이 웃기고, 미션을 빨리 끝내고 나왔을 때 받게 되는 플러스 점수가 좋았으며, 미션 끝내고 학원 앞에서 엄마들을 기다리며 친구들과 떠는 수다가 즐겁다고 했다. 따로 선행을 준비하고 황소에 간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아이가 버겁게 느끼기도 했고, 단원평가 전날 잠을 못 자기도 했지만 둘째는 황소에 잘 다녔다.
황소 시스템을 버거워하는 아이도 있고, 잘 적응해서 수학문제를 끝까지 푸는 습관을 기르며 다니는 아이도 있다. 나는 황소에 들어가기 위한 송아지학원에 보내거나 과외를 하는 것에는 반대이다. 수학적 사고력이 부족한 아이가 힘들게 황소에 합격한다고 해도 그 이후 단원평가 점수를 유지하기 위한 엄마와 아이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으니까. 어느 학원이든, 어떤 이유에서건 아이가 수학을 꾸준히 배울 수 있다면 굳이 황소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나도 아이를 처음 키우기 때문에 다들 가는 황소에 안 보내도 될까 하는 걱정과 조바심에 둘 다 보내봤는데, 결론은 황소는 내가 보내고 싶다고 해서 보내는 곳이 아니란 것이다. 성향이 맞는 아이에게는 좋은 곳이지만 성향이 맞지 않는 아이에게는 그만큼 괴로운 곳이 없다. 황소에 보내는 엄마들을 굳이 아동 학대를 한다고 비난할 필요도, 절대 황소 근처에는 가지 않겠다고 선을 그을 필요도, 황소 높은 반에 반드시 보내야겠다고 전의를 불태울 필요도 없다.
중요한 것은 내 아이의 성향과 그 아이를 키우는 나의 성향을 잘 이해하는 것이고 아이와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의 성향과 아이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고 서로 한 편이 되어 아이가 인생을 앞으로 혼자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뒤에서 밀어주는 것. 비단 황소 입학이 문제가 아니라 황소 입시는 엄마들에게 육아의 방향성을 찾는 첫 단추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