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들은 야구선수

야구선수의 엄마로 살아가는 법

첫째 아들은 어릴 때부터 유난히 겁이 많고 예민했다. 한참 걸음마를 배울 때는 땅이 꺼질까 항상 땅을 두드려보고 조심스레 일어나서 걸음마를 뗐던 아이였고, 새로운 유아교육기관을 갈 때마다 너무 울어서 6살 때에는 카봇이 너를 지켜줄 거라며 제일 아끼는 카봇을 가방에 넣어줬다. 예민한 아들을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시각, 청각, 촉각 모든 감각이 열려있어 모든 자극이 너무 무섭다고 울던 아이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땐 선생님이 무서워 학교 가기 싫다며 자신의 꿈이 바위에 붙어있는 따개비가 되는 거라고 했다. 따개비가 바위에 붙어있는 것처럼 집에 딱 붙어있고 싶다고.


그래서였을까. 4학년이 되자마자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를 리틀야구단에 과감히 등록했다. 집과 학교, 학원만 다니게 하면 이 아이는 평생 여리고 연약하게 자라날 것 같았다. 운동을 하면서 남자들과의 관계에서 씩씩함을 배웠으면 했다. 아이는 한 달 내내 형이 무섭고, 코치님이 무섭다며 안 가겠다고 난리였다. 그전까지 학원들은 아이가 가기 싫다면 칼같이 안 보냈지만 내가 처음으로 아이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내 고집대로 밀고 나갔다.


몇 달이 지나고 형들과 야구코치님께 '다나까'체를 배우더니 점점 아이가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형들한테 한마디만 들어도 울었던 아이가 점차 씩씩해져 갔다. 특히 합숙훈련을 가면서 아이는 급격히 달라졌다. 내가 대학원 수업으로 저녁에 와도 싫어하던 아이가 속초, 양구, 태백 등 전국에 가서 엄마 없이도 선수들과 함께 자고 새벽 훈련, 낮훈련, 야간 훈련을 씩씩하게 해냈다. 그런 아이의 변화가 대견하기도 하면서 갑자기 어른이 되는 것 같아 서운하기도 했다.


그런데 야구는 실패의 운동이라 했던가. 10번 중 3번만 쳐도 잘한다고 칭찬받는 운동인데, 반대로 생각하면 아무리 잘하는 선수도 10번 중 7번은 실패한다는 뜻이다. 투수는 또 어떤가. 야구는 투수놀음이라 하듯이 투수로 올라가면 우리 아들 때문에 질까 봐 마음을 졸이기 일쑤였고, 안타라도 계속 맞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특히 난 승부욕이 강한 엄마였다. 우리 가족이 응원하는 키움이 포스트시즌에서 지기라도 하면 며칠 잠을 못 잘 정도였으니 우리 아들이 안타를 못 치거나 투수로 올라가서 안타를 연거푸 맞을 때에는 오죽했을까.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도대체 김연아 엄마와 손흥민 아빠는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 건가. 소심하고, 무던하지 못한 나 같은 엄마는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독함과 강함이 있는 위대한 부모였기 때문에 그들은 위대한 선수를 만들어낸 거다. 운동에서는 위대한 부모가 위대한 선수를 키워낼 수 있다.


운동의 세계는 참으로 신기했다. 첫째, 부모의 헌신을 필요로 한다. 원정경기는 전국 각지에서 이루어졌고, 그때마다 우리 팀 부모들은 버스를 빌리고, 그 지역 숙소와 밥집을 예약하고, 간식을 준비하며, 같이 합숙하며 빨래도 하였다. 또 야외구장을 메인 훈련장으로 사용하는 팀이었기에 비가 오면 밤에 급하게 부모들이 호출되어 장비들이 젖을까 실내로 옮겨야 했고, 눈이 오면 또 급하게 호출되어 야구장에 쌓이는 눈들을 삽으로 밀어야 했다. 2023, 2024년 왜 이렇게 눈은 많이 오던지. 비가 내리지 않고, 눈이 내리지 않게 기도하며 잠드는 날이 많았다. 속으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또 아들이 투수에서 밀릴까, 좋은 수비자리에서 밀릴까 봐 감독님께 건의할 수도 없었다. 야구를 시키는 부모들이 다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야구팀 감독님은 하느님처럼 모셔졌다.


둘째, 부모들의 시기 질투가 심하다. 사실 나는 그동안 대치동 엄마들이 그동안 너무 유별나다고 욕했으나 야구선수 부모들에 비하면 그들은 정말 양반이었다. 야구는 훈련도, 시합도 부모 눈앞에서 바로 이루어진다. 또 팀 스포츠라 우리 아이가 좋은 타순에 섰다는 건 다른 아이가 밀렸다는 뜻이 된다. 부모가 계속 따라다니면서 모든 과정을 보고 있기 때문에 타순이 올라가거나 제일 선호하는 수비 자리를 맡으면 다른 부모들의 견제를 받는다. 물론 좋은 분들도 계시지만 아들이 투수를 잘하기 시작하자 감독님에게 돈을 줬는지, 레슨을 따로 받았는지 대놓고 묻는 엄마도 있었다. 야구는 공부로 치면 아이가 문제를 풀고 답을 쓰는 그 모든 과정을 엄마가 지켜보고 있는 거랑 같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부모는 자연스레 아이의 상황과 감정에 더 이입하게 되고 아이에게 더 기대하게 된다.


3년 동안 아이를 야구선수를 시키면서 나 또한 많이 성장하였다. 상대하기 불편한 사람도 아이 때문에 계속 만나야 하기 때문에 잘 지내는 연습을 할 수밖에 없었고 팀을 옮길 때도 앞으로 어떻게 엮일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리 억울해도 관계를 좋게 유지하고 나와야 했다. 야구선수의 엄마로 사는 것이 처음이었기에 모든 것이 어렵고 낯설었지만 야구선수의 엄마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던 경험을 하면서 나 역시 아이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 팀을 옮기고 나는 여전히 야구선수의 엄마로 살고 있는 중이다. 여전히 매번 기대하고, 매번 속상하고, 매번 힘들지만 그래도 아들이 하고 싶다고 하면 계속 시키고 싶다.


3년간의 야구선수의 엄마 생활은 쉽지 않았다. 기대와 실망, 경쟁과 연대, 자부심과 무력감이 뒤섞인 나날이었다. 하지만 그 속에서 나는 아이를 바꾸려 하기보다, 아이의 속도에 맞춰 함께 걸어가는 법을 배웠다. 이제는 경기 결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 매번 넘어지고 일어서는 아이의 뒷모습을 믿어주려 한다. 어쩌면 그것이 야구가 내게 가르쳐준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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