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장수, 짚신장수의 엄마

쌍둥이 엄마의 숙명이란.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우산장수 아들과 짚신장수 아들을 둔 엄마는 날씨가 어떻든 늘 걱정 속에 산다는 이야기다. 해가 쨍쨍하면 우산장수 아들이, 비가 내리면 짚신장수 아들이 걱정되는 것이다. 어릴 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땐 그저 옛날이야기쯤으로 넘겼다. 그런데 쌍둥이 엄마가 되고 보니, 그 엄마의 마음이 어찌나 가슴 절절하게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쌍둥이를 키우며 걱정은 늘 한쪽을 향해 있었다. 먼저 한 아이가 걸으면 아직 걷지 못하는 아이가 걱정됐고, 한 아이가 말을 시작하면 아직 입을 떼지 못한 아이가 안쓰러웠다. 유치원에서는 한 아이가 친구를 잘 사귀면, 반대로 숫기 없는 아이가 눈에 밟혔다. 초등학교에 올라와서는 비교의 무게가 더욱 또렷해졌다. 학년이 같으니 시험이나 학원 테스트 결과가 자연스레 나란히 놓일 수밖에 없었다.


2학년 때 두 아이를 같은 반에 넣었던 어느 날, 첫째가 울먹이며 말했다.
“엄마, 반 친구들이 쌍둥이 형제는 수학 잘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고 물었어.”
상처받은 아이에게 나는 ‘쌍둥이라도 너희는 서로 다른 꽃’이라며, 누가 더 아름다운지 비교할 수 없는 존재라고, 첫째의 장점을 몇 번이고 되뇌어 주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내가 아이들의 이름을 다르게 지어주고, 둘을 비교하지 않으려 아무리 애를 써도 세상은 그들을 ‘쌍둥이’라는 틀 속에서 바라본다는 사실을. 친구도, 선생님도, 때로는 지나가는 말들조차 두 아이를 한 세트로 묶어 비교했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와 학원은 반드시 다른 반, 다른 원으로 신청하기 시작했다. 실력은 비슷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기준이 되지 않도록 환경을 떼어놓는 것이 최선이라 여겼다.


그럼에도 마음은 늘 한쪽으로 기울었다. 같은 날 받아오는 성적표를 보며 나는 잘한 아이를 칭찬하는 시간보다, 잘하지 못한 아이를 다독이는 시간이 더 길었다. 잘한 아이는 이미 스스로 만족해했기에 내 마음이 덜 쓰였고, 남들이 말하던 ‘아픈 손가락’이라는 표현이 왜 존재하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우리 집의 아픈 손가락은 한쪽에 고정되지 않고 돌아가며 아프다는 점일까.


앞으로도 두 아이는 계속 비교당할 것이고, 나는 또 그 사이에서 마음이 들썩이겠지만… 뭐 어떠랴. 그래도 나는 두 아이의 가장 든든한 편이니까. 우산장수도, 짚신장수도 결국 다 내 아들이다. 두 아들이 나중에 다 컸을 때, "다른 사람들이 우리 둘을 다 비교했지만 엄마 덕분에 우린 서로 다른 꽃이 될 수 있었어"라고 말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쌍둥이 엄마의 삶은 매일이 균형을 맞추는 일이다. 한쪽으로 기울면 다시 반대쪽을 세워주고, 흔들리면 잠시 멈춰 바라보는 일. 하지만 이 복잡한 마음속에는 단 하나의 진심만 남는다.
“너희 둘 다,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
그 마음 하나로 나는 오늘도 쌍둥이의 엄마로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