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실패했지만 그래서 다행이다

많이 넘어져 본 내가 아이에게 들려주는 성장의 기록

나는 어릴 때 유난히 열심히 사는 아이였다. 욕심이 많았고, 공부도 꽤나 열심히 했다. 특목고에 진학한 뒤에도 나는 당연히 1등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세상에는 생각보다 똑똑한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하루 종일 기숙사에서 함께 생활하며 친구들의 모습을 지켜보면, 공부는 안 하고 늘 자던 아이가 시험을 너무 잘 보는 일이 다반사였다. 어린 마음에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더 열심히 하는데, 왜 저 아이가 나보다 점수가 높을까.’ 그렇게 끝없는 비교와 자책 속에서 방황했다. 지금 돌아보면, 나는 이미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내고 있었지만 스스로를 인정하지 못한 채 괴롭히며 살았던 것 같다.


그 시절의 연장선에서, 나는 마치 인생을 포기하듯 교대를 선택했다. “이렇게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걸 보면, 어차피 내가 원하는 길엔 도달할 수 없을지도 몰라”라는 체념, 그리고 “여자는 교사가 최고”라는 아버지의 강요가 맞물리며 나는 도망치듯 교대로 들어왔다. 그러나 그것이 도착점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 안에서 다시 도망치고 싶었다. 안정된 길 속에서도 나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고, 그래서 공부의 끈을 놓지 않았다. 20년 전, 나에게 ‘다른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길은 오직 대학원뿐이었다.


교사로 일하며 대학원 공부를 병행한 시간은 극기훈련이나 다름없었다. 오후 네 시 반에 퇴근하면, 다섯 시 반에는 연구실에 앉아 있었다. 풀타임으로 공부하는 대학원 동기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직 ‘엉덩이로 버티는 법’밖에 없었다. 피곤해도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고, 졸린 눈꺼풀을 억지로 버티며 밤늦게까지 논문을 썼다. 기말 페이퍼를 제출할 때면, 퇴근 후 두 시간 눈을 붙이고 밤새 연구실에 앉아 다시 출근하곤 했다. 지금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일이다.


대학에 임용되기까지도 수많은 도전과 실패가 있었다. 내 30대는 쌍둥이 육아, 논문, 프로젝트로 쏜살같이 지나갔다. 논문을 아무리 써도 출신 학부의 한계로 번번이 탈락했고, 탈락의 통보가 익숙해질 만큼 실패를 경험했다. 남들은 내가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것을 두고 ‘성공’이라 말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늘이 “이 사람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구나” 하고 결국 포기하며 선물로 내게 내린 결과라고 믿는다.


그 힘든 시간들을 지나오며, 나는 깨달았다. 실패가 꼭 불행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 수많은 좌절의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아이를 키우는 데 누구보다 큰 자산이 되어주고 있다.


먼저, 나는 아이의 성향을 세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 가장 큰 실수는 ‘특목고 진학’이었다. 승부욕이 강하고 꾸준히 노력하는 내 성향은 경쟁이 치열한 환경과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좋은 학교 진학을 강요하지 않는다. 남편을 닮은 첫째는 욕심이 적고, 남과 비교하지 않으며, “1등보다 쫓기지 않는 2등이 좋다”라고 말한다. 반면 나를 닮은 둘째는 지는 걸 싫어하고, 성취 욕구가 강하다. 아이들이 어떤 고등학교를 선택하든, 그 시점의 성향에 맞는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조언할 생각이다.


두 번째는 언어 학습이다. 나는 어릴 때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말하기’에만 특화된 불균형한 실력이었다. 언어의 기본은 ‘듣기’와 ‘꾸준함’이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래서 내 아이들에게만큼은 언어를 공부가 아닌 생활로 익히게 하고 싶었다. 아기 때부터 영어 영상을 보여주며 자연스럽게 노출을 늘렸고, 아이들은 영어를 놀이처럼 받아들였다. 덕분에 영어유치원에서도 스트레스 없이 즐겁게 지냈고, 지금도 한국어와 영어를 자유롭게 오간다.


세 번째는 책 읽기다. 고3 시절, 아무리 공부해도 늘지 않던 과목은 언어였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은 친구는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아도 언어와 탐구 과목에서 늘 만점을 받았다. 그때 깨달았다. 책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의 틀을 넓히는 힘이라는 것을. 또한 책으로 습득한 다양한 분야의 지식은 공부를 할 때 스키마로 작용한다는 것을. 그래서 우리 집에는 언제나 책이 널려 있다. 읽지 않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사 모았다. 그렇게 쌓인 책들로 집 안은 작은 도서관이 되었고, 아이들은 그 속에서 자기 취향에 맞는 책을 반복해 읽었다.


물론 이런 노력들이 다 우리 아이들의 성적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적어도 내가 겪었던 실패를 아이들이 겪지 않도록 나도 모르게 그런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내가 나의 인생에서 실패하지 않았다면 나는 오히려 아이를 깊이 이해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생각한다. 나의 실패는 끝이 아니라 육아의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이었다고. 나는 실패했지만, 그래서 다행이다. 그 모든 실패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나를 통해 또 다른 삶이 자라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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