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질은 엄마의 질을 넘을 수 없다

내가 반대하는 길을 아이가 가고자 한다면.

예비교사들을 가르칠 때마다 나는 한 가지 말을 늘 강조한다. “교육의 질은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다.” 초등학생 시기에 교사가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기 때문에, 이 말의 무게를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런데 아이를 직접 키우고 나니, 교육의 질이 교사의 질을 넘을 수 없듯이 교육의 질은 결국 엄마의 질을 넘을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담임교사를 하며 가장 많이 느낀 점은, 인성이 반듯한 아이의 뒤에는 언제나 따뜻하고 성숙한 부모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변화가 어려운 학생을 만난 뒤 그 부모님을 상담하면 이유가 선명히 보이기도 했다. 아이의 성품은 부모의 결을 참 신기하게 닮는다. 그러다 보니 결혼 전에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우리 반의 저런 인성과 저런 머리를 가진 아이는 어떤 부모님으로부터 왔을까?” 상담 자리에서 부모님들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은 늘 “이런 아이 저도 낳고 싶어요”였다.


하지만 막상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그런 ‘유니콘 같은 아이’를 키우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절감하게 된다. 아이에게 열어주는 길은 결국 내가 살아본 경험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걸어본 길만이 확실한 길처럼 느껴지고, 아이가 낯선 길을 가겠다고 할 때는 그 길에 놓여 있을 어려움이 먼저 떠올라 두려움이 앞선다. 내가 새로운 도전을 한다면 주저하지 않을 자신이 있지만, 우리 아이가 낯선 길에 서겠다고 할 때는 부모로서의 불안이 훨씬 더 커진다.


첫째 아이가 야구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다고 했을 때, 내 첫마디는 “절대 안 돼”였다. 머리로는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고 지지하는 것이 이상적인 부모의 모습이라는 것을 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야구 중학교라니. 양가를 통틀어 운동선수 출신이 한 명도 없다. 이정후에게 이종범이 있고, 오타니에게도 운동선수 부모가 있고, 손흥민에게 손웅정이 있지 않은가. 이미 시작선부터 다르다.


게다가 내가 아는 운동의 세계는 1등이 아니면 실패라는 냉혹한 구조를 갖고 있다. 명문 중학교를 거쳐 명문 고등학교로 진학해 프로 입단까지 간다면 그보다 좋은 스토리는 없겠지만, 그건 극소수의 이야기다. 설령 프로에 간다 해도 주전으로 뛰는 건 하늘의 별 따기이고, 프로 문턱에도 못 간다면 그다음부터 어떤 길이 있는지조차 모르겠다.


학교 야구부 아이들은 말 그대로 하루 종일 야구만 한다. 평일엔 밤 10시까지 훈련하고, 방학이면 원정 훈련을 한 달 동안 떠난다. 공부할 시간은 아예 없다. 유전적으로 운동 체질이 아닌 우리 아이가 혹시 실패한다면, 우리 부부에게는 물려줄 사업체도, 넉넉한 재산도 없다. 그러니 아이가 “좋아하니까”라는 이유만으로 쉽게 그 길을 허락하는 것이 두려웠다.


“공부가 아니면 뭘로 먹고살지?”


이게 나의 한계였다. 주변 부모들은 “요즘은 공부 안 해도 먹고살 길 많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 ‘많다’의 실체를 도무지 떠올릴 수가 없었다. 야구를 통해 알게 된 한 유명 가수는 자신이 운동하다 포기했어도 가수로 성공했듯이 다 길이 있다며 자신도 아들을 야구중학교에 보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공부만 해왔고, 공부로 먹고사는 삶만 알고 있는 사람이다. 내가 확신하지 못하는 길을 아이가 택한다고 할 때,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이론적으로는 아이의 인생은 아이의 것이고, 부모는 한 발 물러서 지켜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부모라는 존재는 결국 “우리 아이가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사회의 인정 속에서 평안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극성맘이 생기고, 나도 그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직도 아이는 야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가고 싶어 한다. 나 역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흔들린다. 야구를 좋아해 눈이 반짝이는 아이를 보면 밀어주고 싶다가도, 재능이 뚜렷하지 않은 아이가 그 힘든 길을 선택할 때 단호하게 “안 돼”라고 말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 같기도 하다.


교육자로서 스스로를 달래 보려 하지만, 정작 우리 아이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에서는 “교육자고 나발이고”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온다. 부모의 선택 앞에서는 우아한 이론도, 교육자의 논리도 힘을 잃는다. 결국 아이의 인생이라는 가장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나는 다시 질문한다.


과연 좋은 부모란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어디까지 아이의 길을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


교육자로서는 늘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라”라고 말해왔지만, 정작 내 아이 앞에서는 그 말이 쉽게 적용되지 않는다.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은 따라가지 않고, 아이가 말하는 새로운 길이 여전히 두렵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직 아이의 선택을 온전히 믿어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


부모가 된다는 건 이런 모순을 안고 사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아이를 위해 잡아두고 싶고, 또 아이를 위해 놓아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어느 쪽도 쉽게 선택하지 못한다. 그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이 흔들리고, “내가 틀린 건 아닐까”와 “그래도 말려야 하지 않을까” 사이를 계속 오간다.


아마 앞으로도 나는 흔들릴 것이다. 중요한 건, 이런 흔들림 자체가 부모로서 내가 지나가야 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아직 아이를 온전히 믿어주는 부모는 아니지만, 적어도 믿어보려고 애쓰는 부모이고 싶다. 지금으로서는 그게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솔직한 결론이다.